이소룡 기품·이연걸 날렵함 혼합
한여름 무더위 화려한 액션으로 싹~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17년 중국은 15만 명 노동자를 연합군에 파병시킨다. 진진(견자단)도 그에 휩쓸려 프랑스까지 가 전쟁에 참여하고 그 와중에 동료인 기천원을 잃는다.
1918년 전쟁은 끝나고 중국은 승전국임에도 연합군의 냉대로 따돌림을 받고, 일본은 중국 침략의 야욕을 드러낸다. 1925년 상해에서 유유천(황추생)이 운영하는 사교클럽 카사블랑카에 진진은 기천원이란 이름으로 유 사장의 신임을 얻는다.
그는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동료들과 함께 일본과 싸우기 위해 항일운동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나라는 일본의 뒷배를 이용하는 동북군과 동북 국민군이 나뉘고, 일본에서 살생부가 넘어와 암살극이 최악으로 치닫는 등 혼란스럽기만 하다.
진진은 검은 가면을 쓰고 천산흑협으로 일본놈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암살을 모두 막을 수 없어 안타깝다. 진진은 홍구도장의 대좌 동생을 죽이기에 이르고, 대좌는 기천원의 원래 이름이 진진이란 걸 알아낸다.

‘정무문’하면 이소룡 세대는 이소룡을, 이연걸 세대는 이연걸을 추억한다. 두 편의 ‘정무문’을 본 자라면 기품 있게 쌍절곤을 휘두르는 이소룡과 이연걸 영화 중 가장 액션이 많고 가벼웠던 몸놀림을 잊지 못할 것이다. 견자단은 이 둘을 합쳐 놓은 진진을 연기하며 옛 것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종합격투기와 파쿠르를 더해 21세기적 액션으로 ‘정무문’을 새롭게 해석한다.
이소룡의 쌍절곤과 하얀 도복 그리고 ‘그린 호넷’을 오마주한 ‘천산흑협’까지 이소룡 팬들을 위한 서비스는 물론, 진가상 감독이 각본을 맡아 ‘이연걸의 정무문’ 이후 이어지는 내용과 당시 영화에도 출연했던 ‘쿠라타 야스아키’의 까메오 출연으로 마치 하나의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줘 이야기 연계성에도 힘을 쏟는다.
영화는 초반부터 견자단의 활동력으로 물꼬를 트며, 이소룡과 이연걸을 잊고 보라는 듯 강하게 나간다. 제목이 나오기도 전에, 칼 하나로 전쟁통을 휘저으며 총의 효용성을 무색케 하는 날렵한 동작과 상대를 제압하다 못해 억합하는 견자단은 내일모레 50줄에 접어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힘과 열기를 뿜어낸다.

솔직히 100명이란 숫자는 수치상으로 다가오는 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매트릭스2-리로디드’의 네오와 스미스처럼 만화같은 움직임을 걱정했는데, 주인공이 무자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발차기와 쌍절곤으로 분위기를 장악해 이런 우려를 해소시킨다.
특히 이번 영화는 액션도 액션이지만, 주인공이 발산하는 기운으로 영화를 휘어잡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다. 아마도 견자단은 본인이 이소룡에게 느꼈던 감정을 자기도 마음껏 드러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웃통까지 벗어던지는데, 군살 하나 없는 찰진 근육은 앞으로 10년은 더 액션을 해도 될 것 같은 묵직한 기대를 가져온다. 역시 견자단이다.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일본의 지배를 받은 수치스러운 기억이 있다. 어쩌면 당시 국민들이 겪었을 한과 억울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정무문 : 100대 1의 전설’이 나왔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일본에 맞서는 상징으로 정무문의 ‘진진’을 내세우고 일본 홍구도장을 깨며 본국의 자존심을 살리는 부분에서 쉽게 짐작 가능하다.
그동안 무겁고 비장하기만 했던 중국 역사를 일본 스파이와의 미묘한 로맨스를 섞어 힘을 빼고, 처음부터 일본과 대립구도를 확실히 잡고 항쟁이란 큰 의미를 둬 진중한 울림을 전한다. 여기서 영화가 실화를 다룬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당시 중국인들을 동아병부(東亞病夫)라 부른 적과, 그들을 물리친 영웅의 이야기를 중국인들이 바라는 내용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말이다.
사실 같은 상황을 겪은 대한민국 사람이어서 공감하는 정서가 컸다. 진진이 민족의 아픔에 대해 각성하고 홍구도장 일파에 도전하는 장면에선 진진과 대좌가 각각 김두한과 하야시로 묘하게 겹치며 나도 모르게 진진을 응원하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항일운동을 하는 사람이자,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을 부각시켜 민족의 단결심을 도모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국치를 잊지 말자는 정신과 진진의 스승(곽원갑)이 말하는 가정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정무문을 세운다는 대사로 가슴에 새길 다짐까지 얻고 가니 마음도 풍성해진다. 두 가지만 지켜도 더 이상 나라가 위기에 빠지는 순간은 없을 테니, 공책에 따로 적어 가끔 꺼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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