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 트로이로 - 1편

▲매 순간 역사를 바꿔놓은 에게 해.

◆억울한 여행

기원전 1250년의 실제 사건으로 믿어지고 있는 트로이(Troy) 전쟁은 긴 시간 이어진 신화의 결정판이었다. 모든 게 들어있었다. 서사 구조로 봤을 때도 가히 교과서 감이었다.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영웅을 털어내기 위해 벌인 전쟁이라는데 트로이 전쟁에는 정말 유명한 사람 총출동이었다. 여기 나와서 유명해 진 것일 수도 있다.

호메로스(Homeros)의 역작(B.C 750)은 할리우드(Hollywood)와 함께 꽃이 폈다. 막장, 불륜, 배신, 사랑, 질투, 죽음, 귀향, 인간애(愛), 영웅, 모험, 여행 등 인간을 흥분하게 만드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1871년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의 집요한 추적으로 유적 발견과 함께 이야기는 실제가 돼 활화산이 됐다. 1930년 미국의 블레겐이 재차 발굴한 것은 트로이의 실존 여부를 확고히 해줬다.

▲트로이에 있던 우물의 흔적. 지금은 형태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야기가 팩트를 입으면 이제부턴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아마추어 유물사냥꾼이던 쉴리만의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최초 발굴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석연찮은 과정이 너무 많았다. 트로이층을 찾기 위해 트로이 위에 살아가던 유적층을 모두 파괴했던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청동기, 초기 철기 유적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만큼 전 세계를 흥분에 빠지게 한 것이 있었을까? 물 속 깊이 가보니 용궁이 있고 인어공주가 별주부랑 간 빼먹기 놀이를 하고 있다는 걸 방송에 담아왔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실제 트로이를 찾아가며 느낀 부풀어 오른 나의 기대는 여행 사상 최고였다. 이 바다를 건너면, 이 강을 건너면, 이 언덕을 오르면 브래드 피트(Brad Pitt)가 마중이라도 나와 줄 거라는 확신은 왜 가졌는지…이상하게 2004년 영화 ‘트로이’에 감명 받은 나는 그 곳으로 가는 생생한 흥분을 지금도 기억한다. 헥토르(Hector)의 황금빛 갈기같은 머리칼은 여전한지, 트로이 목마의 얼기설기 올렸으나 거대한 조각상은 멀쩡한지…그 떨림을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에게 해로 펼쳐지는 팔라미디요새. 이 바다만 건너면 트로이다.

그러다 오른 이즈미르(Izmir)의 언덕. 가는 길도 뭐가 있어 보이지 않더니만 정말 신기하게 아무것도 없었다. 과거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9단계에 걸쳐 유적층을 이루고 있다하며 그 중 5번이라나, 7번이라나? 그 층위가 트로이라는데 내 눈엔 팬 케잌 같이 쌓인 요란한 흙더미와 천막뿐이었다. 하도 말이 많으니 목마를 급하게 하나 세워놨는데 그 화상이(?) 더욱 나를 슬프게 했다.

‘가만히 보아도 모르겠다. 오래보아도 모르겠다. 너도 그러냐? 이것이 여행의 맛이라지? 웃기지 마라. 내 돈 내놔라. 그리스 신화가 터키에 있어서 그게 하나 신기했을 뿐이었던 억울한 여행이다.’

▲유적지에 있는 트로이 목마의 모형.

◆왕따 에리스(Eris)의 복수와 전쟁의 서막

물의 여신 테티스(Thetis)와 장군 펠레우스(Peleus)가 결혼하는 날이었다. 신과 인간의 결혼이었기에 여기저기에서 손님들이 찾아왔다. 인심 좋은 테티스였기에 앞 다퉈 많은 하객들이 찾아왔다. 손님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사고가 날까 걱정돼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초대하지 않았다. 꼭 중요한 날 찾아와 초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 오는 게 돕는 것이다.

하지만 에리스는 자신만 초대 받지 못한 것을 알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가는 곳마다 싸움을 일으키는 에리스를 반기는 곳은 없었다. 너무나 약이 올라 에리스는 결혼식장에 사과 한 알을 던져놓았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 드립니다.’

헤라(Hera), 아프로디테(Aphrodite), 아테나(Athena)가 사과의 소유권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헤라는 ‘바람둥이 제우스(Zeus)’가 최종 선택한 자신이 최고 미인이라고 주장했다. 설득력 있었다. 그러자 아프로디테가 어디서 예쁜 걸로 미의 여신에게 덤비냐며 따졌다. 이 또한 말이 된다. 이 말을 받아 아테나는 “생긴 것만 반반하면 되냐? 지적이면서 중성적인 내가 차세대 미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또한 인정한다. 세 여신은 싸우다가 제우스에게 선택을 맡긴다. 제우스는 이제 부인을 버릴지, 딸을 버릴지, 진짜 예쁜이를 버릴지 선택해야하는 기로에 섰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답이 없다. 이럴 때만 신은 인간에게 책임을 돌려버린다. 이번에도 트로이 왕자 파리스(Paris)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세 여신은 파리스를 찾아와 자신을 선택할 경우 누리게 될 혜택을 제시했다. 이젠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헤라는 돈과 권력, 아테네는 지혜와 승리,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인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어이없게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돈, 권력, 지혜도 필요 없다. 예쁜 여자였다. ‘아~ 남자들~’

▲트로이 목마에 달리 꼬리. 생긴 모습이 특이한 게 특징이다.

‘10대도 예쁘냐, 20대도 예쁘냐, 30대도 예쁘냐? 40대도 예쁘냐? 50대도 예쁘냐? 60대는 철들어서 곱냐?’고 묻는 올곧은 수컷들이었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헬레네(Helene)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헬레네는 하필 스파르타 메넬라오스(Menelaus)의 부인이었고 헤라와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부추겨 전쟁에 이르게 한다. 이렇게 트로이 전쟁은 시작된다.

저 사진은 트로이에 설치된 목마였다. 아주 성질을 불러오게 하는 쌩뚱 목마였다. 오디세우스(Odysseus)가 저렇게 만들었을리 없다. 터키 나빠요~

글·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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