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EBS

17일 EBS 세계의 명화에서는 영화 ‘제로법칙의 비밀’을 방영한다.

맨컴 회장의 '제로법칙'은 무한히 팽창한 거대한 우주도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뿐이며, 결국 그 우주조차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제로가 된다는 법칙이다. 코언은 수많은 연산으로 이루어진 가상 세계에서 제로법칙에 수렴하는 연산들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

어차피 우주도, 삶도 끝내 0에 수렴하고 말 것이라면 현재의 모든 행위에 무슨 의미를 담을 수 있을까. 코언의 고뇌도 이러한 것이다. 영화 ‘제로 법칙의 비밀’ 감독 테리 길리엄은 화려한 미술적 혼돈으로 관객의 눈을 현혹하지만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생의 무상함이다.

하지만 삶의 비밀, 생의 의미는 법칙을 풀어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완성하는 것임을 밥과 베인슬리가 일깨운다. 밥은 정신적 혼돈과 육체의 고통 가운데서도 본인의 취향과 의지를 고수하며, 베인슬리는 비천한 자리에 있지만 일말의 인간성과 교감하려 노력하다 마침내 자의로 도시를 벗어난다.

어차피 모든 인간의 삶은 죽음을 향해가는 것, '제로법칙'을 통해 은유하는 바다. 하지만 테리 길리엄은 생의 존재론적 허무를 채우는 것은 그 여정에서 스스로 아름다움과 활력을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임을 말하고 있다.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였던 테리 길리엄에게 ‘제로법칙의 비밀’과 같은 망상 가득한 SF는 무척 자연스러운 행보다. 기괴한 수공예의 달인이었던 그가 한동안 CG 특수효과의 세계를 유랑하다 다시 아날로그 미술로 돌아온 점이 눈에 띈다.

누군가는 조악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시각효과는 그의 초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적 모티프를 일부 사용했다. 시각효과에서 드러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강박도 여전하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테리 길리엄은 그의 미술팀에게 독일의 화가 네오 라우흐의 커리어를 참고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구 동독에서 성장한 네오 라우흐는 사회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에 깊이 영향 받았으며 그가 자라는 동안 숱하게 접했을, 실패한 공산체제의 어둠 그리고 냉전 종식으로 인한 서구 자본주의의 혼란을 작품에 담았다.

테리 길리엄이 창조한 비틀린 세계의 비주얼은 네오 라우흐로부터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펑키한 도시 비주얼은 루마니아 거리에서 촬영됐다. 영화 속에 스쳐 지나가는 숱한 인물들이 대중이 충분히 알 법한 배우들이란 사실도 재미있다.

틸다 스윈튼은 그의 여타 필모그래피에서 그래왔듯 영화 ‘제로 법칙의 비밀’에서도 괴이쩍은 분장을 하고선 코언의 모니터 속 상담사로 출연한다. 벤 위쇼는 무심하고도 성실한 의사로 반짝 등장한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거리의 광고판에선 TV시리즈 ‘왕좌의 게임’ 시리즈로 얼굴을 알린 그웬돌린 크리스티, 패션모델 릴리 콜, TV시리즈 ‘홈랜드’의 루퍼트 프렌드, 뮤지션 레이 쿠퍼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틸다 스윈튼과 벤 위쇼는 그들의 출연 장면을 단 하루 만에 모두 찍고 갔다고 한다.

EBS 영화 ‘제로 법칙의 비밀’은 17일 밤 10시 55분에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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