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룰 주제는 도발적이라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아마도 처음 듣는 해괴한 이야기처럼 들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아테네는 이성의 도시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실제로 유럽문명의 발생지인 아테네는 르네상스 이래로 근현대의 지성인들이 이상적인 사회의 모델로 간주되어 왔다. 그 이유는 아테네가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주의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아테네는 인류사에서 우주의 원리와 자연의 비밀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물음이 던져진 곳이며 논쟁술과 수사학, 인간학적 담론과 공론의 장(場)이 꽃을 피웠던 사회이다. 한마디로 아테네는 이성의 도시였다. 거칠게 말하면 지성사적 측면에서 아테네=소크라테스=철학=로고스 중심주의로 등식화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아테네의 한 모습에 불과하다. 아테네의 또 다른 모습은 광란적 춤과 노래의 주인공, 감정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도시였다. 먼저 아테네를 포함해 그리스 전역은 수천의 신들이 거주하는 신들의 나라였다는 것이며, 신이 많아서 이름조차 다 알 수 없을 정도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us)는 한 동안 배척되었다가 올림포스의 12신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테네 시민들의 정신과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신이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제우스와 테베의 왕 카드모스의 딸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진 디오니소스는 원래 이집트의 트라키아에서 온 이방신이다. 초기에는 별 영향력 없는 여러 신 중의 하나였다가 훗날 올림포스의 주신이 된다. 디오니소스가 그리스의 신들과 다른 특별한 점은 인간인 세멜레의 뱃속에서 6개월 제우스의 허벅지에 싸여 달수를 채우고 태어났다는 것과 인간과 신 사이에 태어난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신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이다.

그가 포도주의 신이라는 사실은 역사학자 헤시오도스가 말해준다. 그는 그의 책에서 ‘디오니소스의 선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기원전 2세기에 활동한 학자인 아폴로도로스는 그의 그리스 신화집에서 디오니소스가 그리스에 와서 아카리오스라는 인물에게 포도주 나무를 주고 재배방법과 포도주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고 말한다. 디오니소스가 그리스인들에게 포도주라는 선물을 준 셈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 시대에 술이라는 것이 포도주가 거의 유일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야말로 선물인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각종연회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식사시간 심지어 군대생활에서도 포도주를 즐겼다고 한다. 플라톤의 대화편 중에 심포지온(symposion)이 있는데 ‘향연’으로 번역되는 이 말은 ‘함께 마신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대화를 할 때 술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으며 일단 술을 한 바퀴 돌리고 나서 철학적 토론을 하는 경우가 결코 낯선 경우가 아니다. 이렇듯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인들에게 술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줌으로써 그들의 일상을 지배했으며 라이프 스타일의 혁신을 가져왔기 때문에 올림포스의 주신이 될 수 있었다.

술이 막 취하기 시작할 때의 그 알딸딸한 기분, 굳게 닫힌 가슴과 머리가 열려 몸과 영혼이 작은 해방감을 느끼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왜 디오니소스가 주신이 되었는지를 알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 그가 준 포도주는 이성의 건조함과 팍팍한 삶을 적시는 축복의 비와 같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오니소스가 단순히 술의 신이고 그를 위한 제의를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술로 대표되는 삶의 열정과 여유, 타자와 벽의 허물기를 통한 공동체적 삶의 가능성, 삶의 놀이적 성격, 즐거움의 추구하려는 삶의 태도가 그리스인들에게 중요한 가치가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디오니소스 신을 추종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비공식으로 이루어졌던 축제가 공식적인 제의와 함께 전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가 되었다. 이 축제는 비단 아테네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거행되었다. 도시국가의 가장 큰 축제이자 조직화된 형태가 바로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이다. 아테네에서 이 축제는 일 년에 몇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고 대략 일주일간 진행되었다. 특히 3월말과 4월초의 축제가 가장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중요한 축제에서 볼 수 있는 가장행렬이 이 축제에서 시작되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축제 참여자는 단순히 아테네 시민만이 아니라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 노예, 전쟁고아, 시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방문외국인, 축제에 초대받은 다른 도시국가의 사절단도 포함된다. 축제프로그램은 신상을 옮기고 나서 희생제물을 바치며 제의를 지내고 누구나 함께 어울려 춤과 노래를 즐기고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공동의 식사를 나누는 전야제와 본행사의 메인이벤트인 디오니소스 극장에서의 연극경연으로 구성되었다. 한마디로 디오니소스 축제는 전 시민들이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감정을 해방시키는 공간이자 삶의 쾌락을 맛보는 장이었다. 디오니소스의 극장에서의 연극경연은 주로 디오니소스의 고통을 다룬 비극이었고 3-4일 동안 거행되었다. 관객은 소리를 지르고 야유를 보내는 등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했다고 한다. 이 극장의 수용인원이 만 오천 명 내외이며 관객이 전부 대사를 듣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이다.

사람들에게 이성의 도시, 아폴론 적인 것이 지배하는 합리적인 문화의 도시 아테네에서 벌어진 축제는 광란의 춤과 음악, 신과 아테네 시민의 합일, 흥분감정의 공유를 통한 독특한 합일감의 공유, 자유로운 성적표현의 공간이었다. 니체는 이 축제의 분위기를 삶의 긍정과 감정의 정점에서 느끼는 환희의 체험, 소크라테스적 다이몬으로부터의 해방, 광기, 자기도취적 황홀경, 감정의 해방, 창조적 감흥으로 표방되는 삶의 에너지의 완전한 분출로서의 진정한 놀이의 장으로 이해했으며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삶을 지배해야 한다고 믿었다. 자세히 보면 니체는 이성과 대적하는 자신의 철학을 구축하기 위해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이상화하였다.

니체의 생각과 달리 디오니소스적인 것, 디오니소스의 축제문화는 아테네인들의 몸속에 흐르는 감정의 지속적인 순환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이 이성의 목소리에 따라 삶을 사는 것만큼 감정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체화하면 살았다는 사실은 알고 보면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며 도발적인 주장도 아니다.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고 감정을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곡해된 아테네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하준 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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