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같은모양 건물 세운 이유는

대전 둔산동의 한 복판에는 정부대전청사가 자리잡고 있다.
정부대전청사는 그 모양이 독특할뿐더러 주변 녹지공간으로 인해 대전시민들의 관심이 지대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정부대전청사가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때로는 분단의 상징이자, 또 때로는 평화의 상징으로 그 역할을 대변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특히 정부대전청사가 둔산(屯山)에 자리잡은 이유가 풍수지리적 역학관계로 인한 것이라는 내용은 일부를 통해서만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제 정부대전청사가 그동안 품고 있었던 비밀 보따리를 풀어보도록 하자.
정부대전청사는 노태우 정부가 1989년 1월 수도권대책실무기획단을 발족하고 1990년 9월 국토의 균형발전과 중앙행정기관의 지방이전을 통해 균등한 지역발전을 실천한다는 목표로 대전시 일대에 정부기관 이전을 결정한 것으로 시작됐다.
1991년 6월 설계 공모를 거쳐 1991년 11월 설계 공모작품을 선정하고 이후 1993년 9월 대지면적 51만 8338㎡(15만 6797평), 연면적 22만 6502㎡(6만 8517평) 규모로 기공해 1997년 12월 준공됐다.
같은 해 6월부터 당시 총무처가 실시한 설계공모에서 김창수 씨(삼우종합건축)가 제출한 설계를 대학교수와 전문가 9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최종 선정했다.
설계가 확정된 이 건물의 특색은 지상 20층의 고층건물 4개 동을 마름모꼴로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동서남북 어느 쪽에서도 같은 모양이 되도록 한 설계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우선 4개 건물이 대전 북쪽의 우성이산과 서쪽 계룡산, 동쪽의 계족산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
또 둔산이 연화부수(蓮花浮水, 물위에 떠 있는 연꽃)라는 지형이어서 4개 건물을 마치 연꽃처럼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게끔한 풍수지리 철학을 감안했다는 게 당시 총무처의 설명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이다.
한 층 더 파고 들어가보자.
대전 둔산(屯山)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대둔산의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명당을 가리키는 ‘둔지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정항리(井項里)·행정리(杏亭里)·신대리(新垈里)와 서면 정두리(井頭里)를 병합해 대전군 유천면 둔산리가 되면서 공식문서에 정식으로 등장했다.
여기서 둔의 의미는 군(軍)의 진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첨예하게 대립하던 남북관계 등의 상황을 고려해 정부대전청사가 둔산에 주둔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지만 둔산의 지형은 여성 둔부(엉덩이)와 닮은 구릉지대로 강한 음기가 작용하는 땅이어서 정부건물이 들어서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속설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당시 총무처는 남성 성기를 의미하는 말뚝을 네 개나 세워야 그 음기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풍수지리학자의 의견을 참고했다고 한다.
이에 정부건물이 입주하려면 현재 4개 건물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같은 설계가 필요했다라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온다.

이 같은 이유에서 일까.
지난 2007년 10월 당시 남북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4일 북한의 평양식물원에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남측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과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남한에서 공수된 반송(盤松, 접시를 엎어놓은 모습의 최고 소나무)을 함께 기념식수 한 것.
그러나 이 반송이 정부대전청사에서 가져간 것이란 사실은 당시 극소수 공무원들에게만 알려진 비밀이었다.
남한 정부에서 길러진 소나무가 북한에서 기념식수로 된다는 것이 미리 알려지기라도 하면 오랜만에 해빙무드로 접어든 남북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을뿐더러 자칫 남북정상회담 일정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전 산림청 식물원에서 반송을 가져온 것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상 대전에는 산림청 식물원은 없다.
당시 이 소나무를 북한으로 보냈던 관계자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재에도 정부대전청사 입주기관에 근무 중인 이 관계자는 “이 소나무는 높이가 3m, 굵기가 28㎝, 너비가 4m의 40년 된 것으로,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였다”며 “북한에 기념식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부과천청사, 중앙공무원교육원 등 전국을 다녔지만 대전청사 내 반송처럼 훌륭한 수종은 보지 못했다. 가지가 동서남북으로 곧게 뻗어있고 배열도 가지런한 것이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남북관계에 주역이었던 정부대전청사.
앞으로 통일시대에 또 다른 주역이 될 지 대전시민들의 각별한 관심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