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에서 이어진 기이한 인연

논산 반야산 중턱에 유서 깊은 천년고찰이 있다.은진미륵으로 더 알려진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218호)을 품은 관촉사(灌燭寺)다.

968년 혜명스님이 불사를 시작해 1006년에 완공된 절이고 이후 여러 고승들에 의해 중수됐다. 중국 지안(智安)스님이 미륵보살입상을 보고 ‘미간의 옥호에서 발생한 빛 때문에 마치 촛불을 보는 것 같이 미륵이 빛난다’고 해서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유서 깊은 천년고찰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미륵전 옆에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이 있는데 관촉사는 30년 넘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을 명부전 한 켠에 모셔놓고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다. 박 대통령 내외가 자주 찾았다고 전해지는 서울 도선사와 박 대통령 친필 현판이 있는 경북 직지사 등을 제외하고 박 대통령 내외의 영정을 모신 사찰은 그리 많지 않아 관촉사에 얽힌 인연은 특별함을 더한다.

 

#. 기이한 인연

1974년 8월 15일, 국립중앙극장엔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몇 발의 총성이 적막을 깼다. 박 대통령을 향한 총알은 박 대통령을 빗겨가 육영수 여사에게 꽂히고 말았다.

그 시각 관촉사에서 총무로 있었던 우성스님(현 대전 보문산 학림사 주지)은 라디오를 통해 영부인 서거 소식을 접했다.

‘무슨 인연이 이렇게 기이할까.’

우성스님은 전날 꿈에 나타난 영부인의 모습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서거 소식을 접하기 전에 꿈에서 영부인의 모습을 봤어요. 큰 바다에서 같이 고기를 잡고 있었고 고기가 안 잡혀 그물을 끌어 올렸는데 그물에 구멍이 나 있더라구. 그랬는데 영부인이 저격을 당한거야. 비운에 간 영부인을 그냥 보낼 수 있나. 그래서 남몰래 영정을 모셔놓고 49재를 지냈지.”

#. 기이한 인연의 연속

49재가 끝나고 며칠 뒤(10월 17일), 관촉사 천왕문 앞에 검은색 승용차 3대가 멈춰섰다. 한 무리의 경호원이 누군가를 호위하면서 관촉사로 오르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근혜 양, 지만 군이었다.

“대통령이 관촉사를 다 찾고 그래서 깜짝 놀랐지.”

당시 천왕문 앞에서 일심상회(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면서 사진사로 일하고 있었던 조한익 씨는 그 때를 회고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고 한다.

“반야교를 건너 석문(해탈문)으로 들어오셨지. 당시 동진 스님이 주지셨는데 그날 마침 마곡사에 일이 있어 출장을 갔어요. 그래서 우성 스님이 대신 박 대통령을 안내한 거예요. 30여 분간 관촉사 곳곳을 살펴보셨는데 지금 석문 앞에 있는 거북바위에 관심을 보이더라고. 그 바위에 얽힌 설화를 듣더니 ‘태바위’라는 이름까지 다시 지어주고 갔죠.”

우성 스님은 박 대통령 일행을 배웅한 뒤 기이한 인연에 또 한 번 놀랐다. 박 대통령 방문 며칠 전 아미타경을 나눠주는 박 대통령과 자신을 꿈에서 봤기 때문이다. 어쨌든 먼저 간 부인을 위해 49재를 지내 준 게 고마웠는지 박 대통령은 “꼭 원하는 게 있으면 하나만 말해보라”고 물었고 우성스님은 한 가지를 건의했다고 한다.

그날 유성호텔에 묵었던 박 대통령은 서정화 당시 충남지사를 불렀고 며칠 뒤 논산에 450만 원의 사업비가 전달되자마자 먼지 날리던 관촉사 앞 도로가 깔끔하게 포장됐다. 관촉사와 박 대통령의 인연이 회자되면서 1979년 박 대통령이 서거한 뒤 관촉사는 육영수 여사 영정 옆에 나란히 박 대통령의 영정도 함께 모셨다.  글·사진=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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