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평생 배운다. 그래서 평생교육이란 말을 한다. 평생교육이란 용어는 교육이란 용어와 동의어이다. 교육활동이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유초등교육과 중등교육, 고등교육을 거쳐도 배움은 끝나지 않는다.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배움은 계속된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수명이 연장되면서 인간의 배움에 대한 필요성 인식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지식에 대한 갈망도 점차 커지고 있다. 아무리 배워도 끝이 없다.

공부를 안 하면 스스로 무엇이 부족한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배우면 배울수록 궁금증은 늘어가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실제로 공부에 매달리게 되는 것은 음식을 많이 먹으면 위가 늘어나 더 많은 음식을 먹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많지만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겪는 부작용은 거의 없다.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교육의 수혜범위도 대폭 확대됐다. 국민 대다수가 겨우 초등교육만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중등교육이 일반화 됐고, 이제는 대부분의 국민이 고등교육에 참여하는 시대가 됐다. 대학 진학은 물론이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인구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고등교육의 희소성이 없어졌다. 반세기 전만해도 대학 졸업자는 극소수였지만 이제는 고교 졸업생의 80% 가까이 대학에 진학하는 시대이다. 돈이 없거나 마음이 없어서 선택하지 않을 뿐이지 실력이 없어 대학에 못 가는 일은 없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가 동반됐다. 대학생이라고 하지만 사회에서 기대하는 대학생다운 실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많다. 설상가상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놀 궁리만 하는 ‘무늬만 대학생’도 참 많다. 그러니 “대학 나와 봐야 소용없다.”는 푸념이 만연하다. 대학생과 더불어 대학교육을 무시하는 풍토도 확산되고 있다. 뭔가 단단히 꼬여있는 것이 분명하다.

최근 한 대학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강연 내내 “배우는 법을 배워라”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궤변처럼 들렸지만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자 수강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 교수의 주장을 압축하면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거쳐 하는 것이니 대학에서 실증적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생 배우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공부하는 방법을 배워서 나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읽기와 쓰기 훈련을 강조했다. 지식인이란 결국 읽기와 쓰기가 생활화 돼 있어 능숙한 자라고 정의하고 대학 재학 중 읽기와 쓰기의 방법만 제대로 배워 나가도 큰 소득이라고 설명했다. 대학교육을 통해 완벽한 지식을 얻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평생 공부한다는 생각을 갖고 대학에서 배우는 법을 배워가라고 역설했다. 읽고 쓰는 일이 생활화 돼 있는 학자들의 습관을 배워가는 것만으로도 대학교육은 의미 있다는 것이다.

대학은 과거처럼 졸업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대학졸업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상류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던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평생 배우지 않으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갈 수 없는 구조가 됐다. 배움이 학교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살아있는 한 계속 배울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됐다. 이 같은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배우는 법을 배워라’는 말은 백번 옳다. 대학교육은 더 이상 완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생 배우려면 배우는 법을 알아야 한다. 바로 그 ‘배우는 법’을 배우는 곳이 대학이다. 배우는 법을 알지 못하면 배울 수 없다. 대학은 배움을 마무리 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배움의 시작점 같은 곳이다. 대학은 ‘배워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배우는 법을 배우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배우는 법을 배우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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