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윤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아홉 명의 아이들이 중앙의 한 아이를 응시하고 있다. 8명은 댕기머리를 했는데, 개중에 한명은 갓을 쓴 어른의 행색이다. 이들은 모두 중앙의 학동을 바라보고 있으며, 앞에 놓인 책들은 『천자문』이나 『동몽선습』정도 되었음직하다. 학동은 무엇이 서러운지 왼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고, 소년의 뒤에서 조금은 난처한 얼굴빛을 띤 훈장님의 모습이 보인다. 왼편에 놓인 회초리를 통해서 분위기가 대략 짐작이 간다. 학동이 훈장님께 혼나는 상황인데도, 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아이들의 익살스러운 얼굴 표정이 그림에 그대로 전해지면서 서당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이면에 감춰진 사제의 정까지 오롯이 전달되는 듯하다. 이는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18세기 김홍도의 <서당>이란 풍속화이다.

이처럼 조선의 교육은 보통 어린 시절에 가정을 벗어나 서당교육을 시작하는데, 이것이 스승과의 첫 만남의 시작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스승과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이다. 스승은 부모와 동격이기 때문에 임금과 더불어 ‘군사부(君師父)’가 대등한 자격으로 부여받던 시절이다. 공자의 제자 안회는 “선생님께서 걸으시면 저도 걷고, 선생님께서 빨리 걸으시면 저도 빨리 걷고, 선생님께서 뛰시면 저도 뜁니다”라고 하였다. 안회는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으며, 스승은 우러러볼수록 높아지고 헤아려볼수록 견고한 대상으로 여기면서 사제동행을 실천한 제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어떠한가. 스승의 날이 조선시대의 고리타분한 봉건적 개념으로 치부되는 현실은 차치하고, 추락한 교권과 무너진 사제관계를 개탄해야만 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20세기에는 교수님이 감히 어려운 ‘경외(敬畏)’의 대상이었기에 연구실의 문턱을 어렵게 느꼈다면, 지금은 ‘경계(境界)’의 대상으로 불신하는 마음이 커져서 문턱 넘는 것을 꺼리는 현실이 되었다. 더욱 씁쓸한 것은 이 경계의 벽이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갈수록 높아진다는 것이다. 학점과 권위로 ‘갑질’하는 교수들이 문제라는 지적과 익명성에 가려져서 도를 넘는 ‘평가질’을 하는 학생들이 문제라는 지탄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기념일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도내 교육청에서는 올해도 ‘스승 존경, 제자 사랑’ 운동을 전개한다고 하는데, 기대보다는 의구심이 앞선다. 매년 되풀이되는 선심성 캠페인은 사제 관계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가 없는데도,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언제까지 되풀이될지가 의문이다.

어제는 제37회 스승의 날이었다. 또한 621년 이 날은 우리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의 생일이기도 하다. 두 날이 겹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존경하고 추앙하는 세종대왕처럼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그런 대상이 되라는 깊은 뜻을 담아 정한 것이다. 하지만 1982년부터 시작된 스승의 날은 한 세대를 훌쩍 넘기는 동안 사제의 풍속이 많이 문란해졌다. 선생님들의 교권수호와 학생들의 인권보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우려되는 것은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 현장은 지식전달을 주고받는 관계로만 전락했기에 사제 간의 교류와 소통의 정도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이런 시대에 스승의 그림자 운운하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도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스승의 상(像)을 정립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공자가 먼저 뛰어야 안회가 뛰었듯이, 선생님이 변해야 학생들이 변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세상의 많은 인연의 얼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이의 스승이 되기도 하고 제자가 되기도 하는데, 사제관계는 수많은 인연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인연이 된다. 그리고 우연한 만남이 아닌 필연적으로 주어진 운명이기에, 사제지애(師弟之愛)는 언제나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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