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만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하나 있으니” 하며
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찬성하여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함석헌 詩 ‘그 사람을 가졌는가’

사회 운동가, 언론인, 종교인, 작가, 수필가셨던 다재다능한 선생님을 혹시 알고 계십니까? 1901년 태어나신 선생님께서는 1989년 돌아가셨습니다. 이분은 바로 함석헌 선생님이십니다.
함석헌 선생님께서는 당숙 함일형이 세우신 한학 서당인 삼천재에서 한학을 공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1923년 오산학교를 졸업 하시고 1928년 동경고등사법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일본을 도울 마음이 없었던 선생님은 좋은 직업을 마다하시고 오산학교에서 교사로 있다가 일제의 강요로 사임 하시고 말았습니다.
해방 후에는 반공 시위인 신의주 학생시위의 배후로 지목되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에 의해 투옥 되었다가 풀려난 후에 1947년 3월 17일 월남 하셨습니다.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대전을 거쳐서 부산으로 피난을 가셨다가 휴전 후 다시 상경 하셨습니다.
1970년에는 정치, 시사평론을 실은 월간잡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셨지만 정권의 탄압을 받고 만든 첫 달에 폐간되었습니다. 그 후 1989년 2월 4일 돌아가시는 날까지 선생님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변호사 같으셨습니다. 함석헌 선생님과 관련된 글을 써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선생님께서 만드신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 시를 읽고 난 후 저는 많은 생각이 밀려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결에 저는 함석헌 선생님의 인생과 저의 인생을 곰곰이 살피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속에선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함석헌 선생님의 무덤이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는 것도 무척 신기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전에 함석헌 선생님의 무덤이 있는 것이 영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한번 국립대전현충원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함석헌 선생님의 주제로 글을 작성하니 여태껏 모르던 영웅 함석헌 선생님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아주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함석헌 선생님을 절대로 못 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선생님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