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 중앙대학교 부설 문화예술경영연구소 전문위원, 예술경영학박사(Ph.D.)

이창근 중앙대학교 부설 문화예술경영연구소 전문위원, 예술경영학박사(Ph.D.)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아리랑이 있다. 아리랑은 2012년 12월에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돼 올해 6주년을 맞았다. 때마침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한국의집 민속극장에서 아리랑을 소재로 한 공연이 열려 필자는 지난 19일 공연을 참관했다.

공연의 제목이 명료하다. 판아리랑. 스토리는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경복궁을 재건하기 시작한 1865년 황장목(黃腸木)을 옮기던 정선지역 목도꾼들의 이야기다. 강원도의 낙랑장송이 어명을 받아 정선아우라지에서 마포나루까지 물길 천리를 흘러 경복궁의 기둥과 들보가 되고, 경복궁 중건공사에 수많은 인부가 모여 일할 때,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팔도의 광대들이 놀이판을 벌이는 내용으로 전개됐다. 정선아리랑의 연대기를 한편의 다큐연희극으로 엮은 공연작품이다.

아리랑의 기원과 발생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아리랑은 태백산맥 주변 지역에서 불리기 시작해 점차 전국으로 퍼진 것이 정설이다. 그중에서도 강원 정선, 전남 진도, 경남 밀양 등지에서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아리랑으로 남아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판아리랑 공연은 경복궁 중건공사의 황장목 공수과정과 전국 연희패와의 교류를 통해 각 지역으로 흘러갔고, 지역에 맞는 아리랑이 생겨나고 오늘에 이르게 된 과정을 노래와 연기, 무용, 음악 그리고 영상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표현했다.

아리랑에 대한 역사 기록으로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에 전국 각지에서 징발된 노동자들에 의해 불렸다는 내용이 전한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소식을 듣자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자결한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1900)에는 “고종은 밤만 되면 전등을 켜놓고 배우들을 불러 새로운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이번 곡은 ‘아리랑타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렇게 아리랑은 시작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인 아리랑을 누구나 다 알지만, 그 역사와 배경이 담긴 공연작품 창작이 절실한 가운데, 진옥섭 현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이 전통공연연출가로 활동하던 당시 예술감독을 맡아 「MBC 2014 대한민국 아리랑 대축제」에서 선보인 공연, 직접 발로 뛰어 조사한 『아리랑 로드』 발굴내용과 평창동계올림픽 계기 연희극으로 초연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경국 감독이 연출하고 김운태 국악인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또 무형유산 공연기획 전문가인 박성호 한국문화재재단 팀장이 융화롭게 제작을 총괄했다. 이번 판아리랑 공연에는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이 노래를, 한국의집 예술단이 무용을, 연희단 팔산대가 연희를 맡아 3개 예술단의 컬래버레이션이 빛난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작품은 역사교육과 공연관광 관점에서 수작(秀作)이라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랑은 1926년 나운규에 의해 제작된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이다. 영화 <아리랑>은 1926년 10월 1일에 단성사에서 첫 상영이 되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상영되던 1926년은 여러 사건이 일어난 해이기도 했다.

1926년 영화 <아리랑>의 흥행 이후에 노래 아리랑은 민족정체성의 상징이 됐다. 일제강점기 하에서의 고달픈 삶 속에서도, 아리랑 선율은 우리 민족에게 정신적 힘이 됐다. 이제 2018년이 얼마 안 남았다. 2019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과거 100년의 성찰을 통해 미래 100년의 희망을 결집하는 역사적 계기다. 강원도 정선에서 시작되어 서울 경복궁으로 이어지고 전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간 아리랑이 이제 다시 울려 퍼져야 할 시점이다. 아리랑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대한민국과 세계를 잇는 한국의 DNA인 동시에 문화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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