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민주의거 기념사업회 이정희 부의장

이정희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부의장

“재현행사를 보니 그때 생각이 납니다.

고등학생인 우리가 그렇게 했어요. 투쟁하고, 쟁취해서 어렵게 이뤄냈어요. 앞으로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민주시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후 첫 3·8민주의거 기념식을 지켜본 이정희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부의장은 누구보다 이날 행사를 감격스러워했다. 4·19의 전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3·8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인정받기까지 그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59년 만에 국가기념일 첫 번째 행사를 치르게 돼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거든요. 우리끼리 모여서 행사를 치르고 3·8을 기억하기 위해 백일장, 책자 등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외롭기도 했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기쁜 날이 왔네요.”

보문고 출신인 그는 아직도 당시 외쳤던 구호가 생생하다. 그때 당시 고등학생들을 거리로 내몰았던 현실은 정말 ‘혹독했다’고 술회했다.

“‘3·15 선거 공정하게 하라’, ‘학원 자율화’를 외쳤는데 자유당 독재정권이 말도 못하게 탄압했어요. 엄청난 감시 속에서 선생님들도 말을 못했죠. 젊은 학생들이 이뤄낸 민주화예요. 혹독했죠.”

민주화를 열망하던 소년이 백발노인이 되기까지 한 평생 민주화의 역사 한 가운데서 살아온 그는 이념과 정치에 남다른 신념이 있다.

“교육자로서 한 평생 살아오면서 신념이 생겼죠. 세상을 공정하게 봐줘야 한다는 거예요. 야당이 잘못하면 야당에게, 여당이 잘못하면 여당에게 따끔히 지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민주화의 열망을 그 시대로 끝낼 것이 아니라 정부가 잘못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억압한다면 언제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민주시민이 되길 소망했다.

“어느 당을 지지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민주집단은 여와 야가 바뀌기 마련이죠.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죠. 소중하게 이뤄낸 자유인만큼 어느 정권이든 시민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한다면 단호하게 지적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춘 활발한 시민들이 되길 바랍니다.”

 

글·사진=강선영 기자 kkang@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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