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국 총괄국장

도로 무단횡단은 대개 차가 지나간 뒤에 서둘러 건너거나 차가 저 멀리 오고 있을 때 아주 미안한 표정과 함께 잽싸게 이루어진다. 교통법규 하나 위반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어서 무단 횡단 정도는 애교로 봐주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잘못하고 있는 사람의 태도이다. 그나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엿보일 때 애교도 통하는 법이며, 미안한 마음이라도 있어야 다음에 교통법규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차가 지척에 와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보무도 당당히, 달팽이 뒷짐 지고 걷듯 느릿느릿 도로를 건너가는 개념 없는 행동은 의아함을 넘어 정신적 장애를 지닌 것이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게 한다.

뜻밖에 우리 사회는 잘못을 하면서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탈법과 불법, 위법을 저지르면서도 잘못을 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회 전반의 지각(知覺) 능력 부재와 상실은 참으로 큰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지각(知覺)장애인’은 잘못을 하면서도 잘못을 모르니 그릇된 행동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으며, 무감각한 탓에 그 짓거리는 더욱 다양한 형태로 확대될 것이 뻔하다.

더욱 큰 문제는 자라나는 초중고 학생에게서 이런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데 있다. ‘이대로 성장하면 우리 사회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갑자기 심각해진다.

바른생활 따위는 머릿속에서 들어내고 대신 그 공간에 열심히 얄팍한 지식을 우겨넣고, 어린 시절부터 친구를 짓밟고 일어서야 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을 지나치게 열심히 배우고 익히다 보니 자신의 행동이 그릇됨을 인지할 수 없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고 하지만 나만 편한 세상이면 그만이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남의 불행은 문제될 게 없는 것이라 여기는지도 모른다. 이기(利己)가 존재할 뿐 이타(利他)는 없으며, 협동(協同)은 나의 행복을 위해 남의 불행을 딛고 일어설 때나 순간 필요한 도구일 뿐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청소년들을 이렇게 그릇된 행위를 하면서도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지각장애인으로 만든 것은 분명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집단 괴롭힘이 빚어낸 피해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가해 학생, 그들은 친구에게 행한 그들의 폭행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깨닫지 못했다. 끊임없이 괴롭히면서도 당하는 친구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지 못했다. 한 인간이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큰 고통을 안겨주면서도 잘못인지 모른 채 끝내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아이들이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지각능력을 갖게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공부만이 능사가 아니다. 나의 행동에 대한 잘잘못조차 구분할 수 없는 치명적인 장애인이 득실대는 사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잘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잘못된 것은 단호히 “너 이거 잘못한 거야!”라고 분명히 지도하는 엄한 가정교육이 절실하다. 더불어 학교에서도 영어 단어, 수학 공식 하나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잘못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는 인간교육을 해야 한다.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른의 모범이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 끊임없이 잘못된 행동을 일삼는 부모가 자식의 잘못을 나무라는 것은 모순이다. 어른들의 흉측한 모습을 답습하는 아이들의 잔인한 폭력을 멈추게 하는 길은 우리가 먼저 그들의 사표(師表)가 되는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에 대한 집단교육, 처벌강화 등 학교폭력 예방 대책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우선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삼가는 반성과 절제의 생활태도를 솔선수범하고, 그 다음 아이들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순서다.

2012년은 “이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야!” “너 이거 잘못한 거야!”라는 큰소리를 많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