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출신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생가지 성역화 통해 1999년 복원

단재 신채호 생가 [금강일보]

대전시 중구에 위치한 명소 오월드를 지나는 산서로를 따라가면 국사책에서 봤던 ‘단재’와 같은 이름인 단재로를 만나게 된다. 이 단재로와 함께 흐르는 답적골천이 끝나는 지점에 이 호의 주인인 신채호 생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역사사학자이자 ‘조선상고사’의 저자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1.7~1936.2.21)는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림마을(현재 대전시 중구 어남동)에서 유생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8살 때까지 이 곳에서 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충북 청원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단재로 229번길에 위치한 단재교의 중간에서 ‘독립유공자 단재신채호선생유허비’와 ‘단재 신채호선생 홍보관’을 볼 수 있다. 홍보관에서 그의 일대기를 알 수 있으며 유허비 옆 좁은 길을 따라가면 생가지가 나온다.

생가지 앞에는 잔디광장이 있고, 생가지와 생가지를 바라보는 단재 신채호 동상을 볼 수 있다. 현재도 많은 이들이 신채호 정신을 기리고자 생가지를 찾고 있다.

단재 신채호 동상 [금강일보]

1991년 7월 10일 대전광역시기념물 제 26호로 지정된 신채호 생가터는 대전시가 신채호를 기리고자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진행한 성역화 작업의 일환으로 생가지로 복원됐다.

생가는 마을주민과 신채호의 8촌인 신이호 여사의 증언에 의한 고증으로 지어진 집으로 ‘ㄱ’자 초가집과 창고채가 딸려있다. 집은 안방과 건넌방을 내당공간으로 하고 동쪽으로 툇마루를 냈다. 왼쪽에 들인 앞면 2칸, 옆면 2칸의 날개집은 따로 남쪽으로 툇마루를 내어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하고 있다.

해당 부지는 안동권씨 사포공파 종중의 땅이었으나 신이호 여사의 아들인 권용민 씨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종중으로부터 기부 받았다.

단재 신채호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공]

생가 대문 앞에는 생가지를 알리는 표석과 대전시 지정 문화재임을 알리는 비석이 있으며, 생가지 일대 조성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감사비가 함께한다. 집 내부는 신채호의 유년시절을 엿볼 수 있는 디오라마와 유년시절 그가 지은 시를 함께 하고 있다.

또한 방에는 서대문 형무소의 일부였던 붉은 벽돌이 전시돼있다. 이는 벽돌을 통해 순국선열들의 독립정신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단재 신채호 생가지는 대전서남부 터미널에서 외곽버스 32번을 타고 갈 수 있고 입장료는 무료이다.

김경훈 인턴기자 admi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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