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리지(擇里地)에 나타나는 충남 공주는 충청감사가 머무는 곳이다. 한양에서 삼백리 떨어져 있으며 영역이 대단히 넓어 금강의 남쪽과 북쪽에 걸쳐 있다. 또 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첫째가 유성(儒城)이요, 둘째가 경천(敬天), 셋째가 이인(利仁), 넷째가 유구(維鳩)로 모두가 살 만한 곳이다”라고 했다. 유성은 현재 대전 유성구이며, 경천과 이인, 유구는 공주에 해당된다. 이 네 곳이 계룡산(鷄龍山)의 동서남북에 속함을 알 수 있다.
계룡산은 공주 동남쪽 40리 지점에 치솟아 있으며 전라도 마이산 줄기의 끝인 동시에 금강 남쪽에 위치했다. 금강은 동쪽에서 공주의 북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남쪽으로 구부러져 웅진과 백마강, 강경강이 되고, 또 서쪽으로 구부러져 진강(鎭江)이 돼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다. 계룡산 남쪽 마을은 조선초에 서울로 정하고자 했으나 이뤄지진 못했다. 이 동네의 물은 들판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지금의 두계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데 진산(지금의 금산군)의 옥계(玉溪·지금의 유등천)와 합쳐 북쪽으로 흘러 갑천(甲川)을 이룬다. 갑천의 동쪽은 회덕현(지금의 대덕구)이고 서쪽은 유성촌과 진잠현이다. 동서의 두 산이 남쪽에서 평야를 끼고 돌아 북쪽에 이르러 합쳤고 높게 사방을 산으로 막아 가운데를 둘러쌌다. 들판 가운데는 평평한 언덕이 구불구불 뻗었고, 산기슭은 맑고 깨끗하다. 구봉산과 보문산이 남쪽에 높이 솟아 그 맑고 깨끗한 기상이 한양의 동쪽 인근 지방보다 좋다. 또 논밭은 대단히 좋고 넓으나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 강경을 통해 교역하고 있다고 했다.
계룡산의 동쪽은 대장촌이고(유성), 서쪽은 이산(논산)과 석성(부여)의 두 현이며 남쪽에는 연산과 은진의 두 현이 있다. 이산과 연산은 산이 가까우나 땅이 기름지고 은진과 석성은 평야는 있으나 토지가 메마를 뿐만 아니라 자주 가뭄의 재해를 입는다. 이 네 고을은 경천과 통하면서 들판이 되었고, 바다의 조수가 강경에서 드나들어 들 가운데의 여러 냇물과 골짜기에 배가 통행하는 이익이 있다고 오늘날 물류 유통을 얘기하고 있다.
이처럼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300여 년 전 충청도의 공주와 계룡산 인근 지역의 지세와 산세를 소상히 설명하고 있으며 사람이 살아갈 곳과 피해야 할 곳을 일러주고 있다. 비록 실사구시의 학문인 실학자였으나 우리민족의 전통사상인 풍수를 통해 더 많은 지리정보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풍수지리가 단순히 ‘묘터 잡기’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미래 우리가 사용할 터전을 마련하는 학문으로 발전돼야 할 것이다.
- 기자명 금강일보 기자
- 입력 2019.04.1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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