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이놈 괴수야, 어디 있느냐? 썩 나오지 못할까.’
입속말로 뇌이며 야서산 골짜기를 헤매기 시작했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넘어서 푸른 대숲을 지나 시내물이 흐르는 밀림지대를 들어갔다.
‘이 부근에 도사리고 있겠지.’
공장이 구신거리며 사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요사스런 기운이 감돌았다. 공장이 잠시 머뭇거리며 마음을 진정하고 사위를 살펴보니 괴수가 머물러 지낼 듯한 천연동굴이 보였다. 공장이 귀를 쫑긋하여 정신을 모아 신경을 곧추 세우니 그곳에서 뼈다귀를 깨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괴수가 저기서 군것질을 하는 모양이구나!’
공장은 발소리를 죽여서 살금살금 약간 튀어나온 바위 뒤로 가서 동굴 안을 살펴보았다.
“이크, 이놈이 노루를 잡아 뜯어먹는구나!”
입가에 피를 흘리며 먹고 있는 것은 분명 노루로 보였다. 공장은 온몸에 닭살이 돋으며 소름이 짝 끼쳐왔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이를 깨물며 철추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일이 공장의 생각과 다르게 발전하였다. 사실 공장은 괴수가 눈치 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다가가 공격하려고 했는데 그만 괴수가 알고 뛰쳐나와 날래게 공격해 온 것이다.
“이얏! 이런 놈을 봤나.”
공장은 기압을 주어 철추를 괴수를 향하여 휘둘렀다. 머리통을 노렸다. 그러나 괴수는 간단히 철추를 피하고 긴팔을 뻗어 철추를 덥석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곧장 다른 손으로 공장을 잡아 손쉽게 넘어뜨리고 그 위로 올라탔다. 이제 공장을 노루를 뜯어먹듯이 뜯어 먹으면 공장은 죽을 판세였다. 죽는다는 것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인데 다행인 것은 괴수는 공장을 당장 먹지 아니 하고 올라타고 앉아서 공장을 노려보기만 했다. 조금 전에 노루를 너무 많이 먹어서 식욕이 없어진 모양이다. 이런 괴수를 향하여 공장은 누운 채로 허리에 찬칼을 뽑아 힘껏 괴수의 허리를 찔렀다. 괴수는 허리에 칼이 꽂히니 굉음을 내어 지르기를
“푸이 익~”
코끼리 소리도 아닌 것이 산골짜기가 들썩하게 컸다. 옆구리에 칼이 꽂혀 너무 아파 낸 비명일 것이다. 괴수는 그런 비명을 계속 지르며 날카롭기 짝이 없는 손톱으로 공장이 입은 갑옷을 마구 쥐어뜯었다. 손톱 힘이 어찌 강한지 강철 갑옷이 찢어지고 속에 입은 유경갑도 찢어졌으니 다음에는 공장의 살점이 뜯어질 판세였다. 괴수가 공장을 향하여 찢어진 유경갑 속에 공장의 살점을 뜯으려 하자 공장은 남은 칼로 잽싸게 괴수의 배꼽 밑을 힘껏 찔렀다. 배를 통과하여 등 쪽으로 깊숙이 칼이 들어가자 괴수는 너무 아픔이 컸든지 당장 공장을 버리고 마구잡이로 뛰기 시작했다. 천리마가 평지를 달리듯이 벼랑도 바위도 숲도 가리지 않고 마구 달렸다.
“푸이 히힝~”
괴수가 괴상망측한 신음을 토하는 소리였다. 흉내마저 낼 수 없는 기묘한 소리를 내지르며 괴수는 고통을 못 이겨 날뛰었다. 괴수의 사납고 처절한 신음소리에 야서산의 나무도 바위도 떨게 하였다. 진실로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공장은 생각 없이 일어나서 덜덜 떨리는 발을 움직여 울부짖으며 달아나는 괴수의 뒤를 차근차근 밟기 시작했다. 몇 개의 등과 골짜기를 지나 으슥한 곳에 이르자 큰 동굴이 나타났다. 그 동굴 어구에 다가가자 신음하는 괴수의 모습이 보였다. 괴수는 피를 많이 흘려서 힘이 떨어진지라 동굴 속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 그저 자빠져 있었다.
‘네놈이 나를 이기지 못했다.’
공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신음하고 있는 괴수에게로 다가가 철추를 높게 들어 대가리를 박살을 내어 죽였다. 괴수는 마지막 비명을 다 지르지 못하고 두 다리를 쭉쭉 뻗는가 싶더니 이내 숨이 끊어졌다. 공장은 괴수의 목을 잘라 들고 현청으로 가져다 바쳤다. 괴수의 목을 본 현령이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현령은 방에 쓴 대로 상금을 내리자 공장이 이를 거절하고 말하기를
“저도 한사람의 고을 백성으로 고을의 근심거리를 제거한 것인데 어찌 상금을 받겠습니까.”
공장은 대장부답게 상금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현의 백성들이 모두 칭송하였다. 그의 용맹과 담력과 장한 뜻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이런 공장을 현청에서는 상빈으로 대접하고 공경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