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사회부장

이기준 사회부장

한 쪽에선 적다고 아우성, 또 다른 한 쪽에선 많다고 아우성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최저임금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2020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연초부터 삐걱거렸다.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추진과 맞물려 잡음이 일더니 위원장을 포함한 공익위원 전원이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임위가 다시 구성된 건 지난달 30일의 일이다. 최임위의 최저임금 결정 법정시한은 90일, 정부가 지난 3월 29일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했으니 최임위는 오는 27일까지 정부에 전달할 최저임금안을 심의·의결해야 한다. 이제 한 달도 안 남은 셈이다. 물론 강제력은 없다. 그래서 최저임금 의결이 법정시한 내 이뤄진 건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하는 날짜는 8월 5일, 여기에 이의 제기 등에 소요되는 기간이 고시 전 20일로 정해져 있어 7월 16일까진 의결이 이뤄져야 효력이 발생하는데 지난해엔 14일, 그 전 해엔 15일, 또 그 전 해엔 16일 최저임금안이 의결됐다. 그만큼 노사간 입장차가 첨예하다는 방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저임금 결정은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흥정’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 한다. 노사간 기 싸움과 실력행사로 소모적 논쟁만 벌이다 결정 시한이 다가오면 각자의 요구안을 제시하고 공익위원이 노사 요구안의 차이를 좁혀가며 최저임금안을 결정하는 식이다.
올해도 이 같은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문재인정부 임기 내 최저임금(시급) 1만 원 달성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고 경영계는 소상공인을 앞세워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에 힘을 싣고 있다. 이 같은 입장 차는 지난 5일 열린 2020년도 최저임금 공청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 편의점 업주는 “2∼3%만 인상해도 사약을 내리는 것”이라고 했고 알바 경험이 있다는 한 청년단체 관계자는 “노동강도에 비해 임금이 여전히 낮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반론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가령 자영업주 경영난에 대해선 최저임금 때문이라기보다 동종업체간 과당경쟁,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갑질, 비싼 임대료 등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맞선다. 여전히 부족한 최저임금 주장에 대해선 ‘이럴 바엔 차라리 점주보다 알바 하는 편이 나은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최임위는 오는 10일과 14일에도 공청회를 열 예정인데 마찬가지로 입장 차만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에 따른 부작용이나 지역별·규모별·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이슈 등 넘어야 할 산도 첩첩산중이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길어야 한 달. 골치 아픈 이슈들은 이렇게 시간에 묻히고 내년도 최저임금은 또다시 흥정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노사는 단돈 1원이라도 더 받기 위해, 덜 주기 위해 아우성인데 민생을 강조해 온 정치권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모양새다. 방법론의 잘잘못을 떠나 정부가 이 같은 소모적 논쟁의 악순환을 조금이라도 완화해 보겠다며 올해 초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제시하고 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국회는 국회의원 밥그릇과 직결된 선거제 개편안 등 패스트트랙 논쟁에 휩싸여 개점휴업 상태다.
2016년 5월 30일 임기가 시작된 제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최저임금법 개정안만 80여 건, 이 중 두 차례에 걸쳐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등 핵심적인 논제는 모두 빗겨갔다. 그만큼 의견 대립이 첨예하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공전의 고리를 끊기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 역할을 게을리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새로운 체계에서의 내년도 최저임금 도출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 여기에 더해 자유한국당의 장외 대정부투쟁으로 정치권의 시계는 벌써 내년 총선을 향해 뛰기 시작한 상황에서 최저임금과 관련한 생산적 논쟁은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표밭에선 이성보단 감성에 기대는 전략이 여전히 통용되기 때문이다.
2020년도 최저임금은 물론이고 2021년도 최저임금 역시 ‘흥정’으로 시작해 막판 표결로 결정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커 보인다. 1986년 12월 31일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이후 지나온 시간은 30년 남짓, 법이 개정된 건 모두 14차례였지만 모두 일부개정이었다. 물론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들은 피곤하다. 최저임금을 노사간 덧셈·뺄셈의 문제로 국한해 보지 말고 인권의 관점에서 폭넓게 이해하면서 법을 전부개정할 수 있는 정치권의 생산적 노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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