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대전방문의 해를 맞아 대전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대전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노력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문학과 놀자, 대전을 읽자’를 기치로 내건 ‘전국문학인대회’도 그런 노력의 하나로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여러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 첫 행사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대전지역 문학과 역사 순례’는 4월 첫 주일에 대전예술가의집을 출발해 산내 뼈잿골로 이어지는 ‘대전문학 순례길’ 행사를 가졌다. 그 중 대전문학관의 뜰에 세워진 이재복의 ‘꽃밭’ 시비 앞에서 그 시에 곡을 붙이고 부른 지강훈의 노래를 음원으로 들으며, 우리 민족의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입체적으로 느껴본 것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대전문학 순례길’이 알려지면서 충남교육연수원에서 기획한 ‘평화통일교육관리자직무연수’에 산내 골령골에서 옛 충남도청을 거쳐 대전형무소 터를 잇는 평화답사 안내를 맡게 됐다. 6월 5일 산내 골령골 학살 현장에서 만나 답사를 시작하기로 하고, 관련 자료의 맨 마지막에 화합과 하나됨을 위한 시 노래로 이재복의 시 ‘꽃밭’의 악보를 싣고 현장에서 음원으로 지강훈의 노래를 들려주며 평화통일교육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재복의 시 ‘꽃밭’은 민족의 화합을 위해 남북이 한 민족의 뿌리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꽃을 피운 것을 인정하자고 전제한다. 나아가 ‘나는 맞고 너는 그르다’라는 분별을 여의고, 저마다 다른 자신의 본성을 꽃피우고 나름대로 애써 이룩해온 보람을 서로 도와 가꿔가자고 호소한다. 마침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힘겹게 답사를 마친 뒤, 버스 안에서 자료집에 실린 ‘꽃밭’의 악보를 보며 지강훈의 노래를 음원으로 들었는데, 금세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우리 민족의 하나됨에 대한 비원(悲願)을 공감했다.

지강훈과 처음 대면한 것은 우리 지역이 낳은 뛰어난 승려이자 교육자이고, 또 시인인 금당 이재복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2014년 9월 대전문학관 야외에서 열린 ‘제1회 금당문학축전’에서였다. 헐렁한 검은 옷에 콧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며 ‘꽃밭’을 열창해 관객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은 지강훈은, 목소리가 탁하면서도 유장한 가락으로 이어져 판소리 창을 듣는 듯 따라 부르기는 어려워도 푹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가 판소리를 공부했고 태고종 스님들과 널리 교유하며 전북 장수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 나름 실력 있으면서도 은거하는 비주류 예술인으로 여겼다.

그러다 금년 봄에 갈마동 지장사에 있는 지보살이, 지강훈 가수가 음반을 내는 데 대전민예총의 박홍순이 노래한 이재복 시인의 ‘목척교’를 불러 보겠다며 곡 사용을 허락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마침 그즈음 고교 동창들과 주고받는 단톡방에서 8월 말경 지리산 주변을 방랑하자는 공지가 떴는데, 방문할 곳으로 지강훈의 아내 명창 유영애 판소리전수관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 뒤 지보살을 통해 지강훈의 음반을 받고 이재복 시인의 ‘꽃밭’과 ‘목척교’ 외 다른 노래들도 들으며 새로운 민중가수를 발견한 설렘을 느꼈다.

특히 고려말 나옹 선사의 ‘청산가’는, 세속적 욕심을 버린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유장한 가락으로 아주 간곡하게 노래한 게 아주 매혹적이었다. 마침 21일 지강훈의 거처를 찾기로 한 지보살 일행과 함께 ‘청산가’의 주인을 찾기로 하고 지장사 옆에 주차를 하고 카톡을 확인하니, 지강훈이 우리와 고교 동창이니 잘 다녀오라는 친구들의 전갈이 있어 깜짝 놀랐다. 이런 진한 인연이 있었는데 깜깜하게 몰랐다니 놀라웠다.

장수군청 옆에서 지강훈과 점심을 먹고 그와 아내가 생활하는 유영애 판소리전수관으로 옮겨, 지강훈이 내린 커피와 보이차를 마시며 오랜만에 동창의 회포를 나눴다. 그의 ‘꽃밭’을 두루 알린 얘기를 하며, 친구들은 ‘청산가’를 더 좋아한다며 유튜브에 올린 노래를 즉석에서 함께 들었다. 마침 다음 날부터 열리는 ‘장수논개전국판소리경연대회’ 준비로 바쁜 지강훈 부부와 8월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장수 번암골을 떠났다. 전통 가락의 현대적 변용을 꾀하는 지강훈과 판소리의 교과서로 불리며 전통을 고수하는 그의 아내, 그들의 뒤를 잇는 신세대 국악인 아들이 함께 이뤄내는 국악가족의 향연이 국악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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