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일 정치부장

 

광역의회의 수장은 광역단체장과 동격 내지 의전 서열 2위의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대전시의회의 경우 스스로 자신들의 위상을 급전직하로 ‘확’ 깎아내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임기 1년차부터 4년차까지 매년 지난 1년간의 의정활동을 결산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이러한 ‘자기 폄훼’(?)의 모습을 여실히 목도(目睹)할 수 있다.

수년간 대전시의회를 출입하면서 매번 참석하게 되는 결산 기자회견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점심시간과 가까운 오전 11시 30분 시작해 인사말 몇 마디를 하고는, 의례적인 1년간의 소회 등을 묻는 1~2개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밥 먹으러 갑시다!”로 서둘러 마무리되는 것이 365일의 의정활동을 지역언론 앞에서 되돌아보고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자회견의 적나라하고 부끄러운 실상이다. 뭔가 까칠한 질문이라도 나올라치면 “밥 먹으면서 얘기합시다”라며 얼버무리곤, 의장과 상임위원장들, 기자들이 우르르 무리를 지어 출출해진 배를 채우러 간다.

40대 이상 중년들은, 지금은 고인이 된 개그맨 김형곤(1957~2006)이 열연한 1980년대 말 인기 개그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을 기억할 것이다. 비룡그룹 회장과 이사진의 중역회의 장면을 보여주면서 민주화의 과도기에 있던 당시 정국을 신랄하게 풍자한 이 코너에선 심각한 현안을 놓고 엄숙한 회의를 진행하던 중 분위기를 깨는 양 이사(이 역을 맡았던 양종철 역시 안타깝게도 2001년 39세로 요절했다)의 실없는 외침 “밥 먹고 합시다!”가 웃음을 자아내곤 했다.

바로 이 “밥 먹고 합시다!”라는 유행어를 연상케 하는 대전시의회 기자회견장의 씁쓸한 이면은 시정 전반에 걸쳐 시장과 지역언론인들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콘셉트로 80분을 할애해 ‘민선 7기 1년, 기자단과의 대화’를 진행한 대전시와는 너무나 대비가 되는 모습이다.

사실상 기자들과의 회식 자리가 대전시의회의 1년을 결산하는 기자회견으로 포장돼 있는 셈이다. 풀뿌리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며 지역민의 대표를 자처하는 광역의회가 자신들의 공과(功過)를 평가받는 기회를 애써 회피하는 것이다. 시정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본연의 역할로 하는 시의회가 ‘서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라는 식으로 정작 자신들을 견제·감시하는 지역언론으로부터의 냉엄한 평가를 외면하는 데 급급한 것이다.

그러면서 제 스스로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쾅쾅 찍어주듯 자화자찬식의 결산 보도자료를 쏟아내고, “자세한 사항은 배포한 보도자료를 참고해 달라”고 기자들에게 당부한다. ‘셀프 평가’로 합격점을 매긴 의정 성과를 내세우는 지방의회가 지역언론을 통해 지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치 기업들이 분식회계(粉飾會計)로 재무 상태와 경영 성과를 조작하듯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두각을 나타냈다”, “큰 호응을 얻었다” 등 온갖 미사여구로 작성된 보도자료를 손에 들고 밥 한 끼를 단단히 얻어먹으려는 듯 기자회견장을 나서는 기자들(물론 필자를 포함해) 역시 지역민들을 대신해 지방의회를 견제·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방기(放棄)한 것은 매한가지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관계의 공범자가 되는 듯한 결산 기자회견장의 지방의회와 지방언론. 필자도 그 일원으로서 이 지면을 빌려 차마 내놓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기레기’로서의 행태를 고백하고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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