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성 전 둔산여고 교장
7월이 시작되면 7~8일경이 대략 절기상으로 소서(小暑)가 된다. 무더위가 시작되고, 장마철로 각종 채소들이 맛을 돋우는 계절이다.
1960년에서 70년대에는 여름 때가 되면 냉장고가 보편화돼 있지 않아 집집마다 염장음식인 장아찌 계통의 반찬이 많았다. 장아찌 계통의 음식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오이 장아찌다. 그것도 간장과 된장에 담아서 만드는 두 종류가 있다. 간장에 담근 것은 담백하면서 물밥에 잘 어울리는 반찬이다.
그리고 된장에 담근 것은 구수한 맛이 나며 그 집의 된장에 따라 맛의 차이가 집집마다 특징이 있었다. 마늘 장아찌도 간장과 고추장에 담근 것들이 있었다. 간장에 담근 것은 매운 맛이 없고 식초를 곁들여서 새콤한 맛이 밥맛을 돋운다. 고추장에 담근 것은 매운 맛이 남아 있지만 생마늘이 가지고 있는 매서운 매운 맛이 아니라 넉넉한 인심 좋은 매운맛이라 먹기가 좋다. 또 양파 장아찌가 있었다. 양파 장아찌는 간장에 담갔는데 단맛이 많고 냄새가 강했다.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 이용됐는데 국물을 흘리면 김치냄새와 더불어 냄새가 오래가고 강했다.
겨울김장을 이용한 장아찌가 있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묵은지다. 묵은지에는 배추와 무가 있었다. 가을 김장때부터 묵은지 용으로 담는 김치는 양념을 별로 하지 않고 소금으로 염장처리만을 한다. 그리고 다음해 봄에서 여름 될 때면 꺼내서 배추 묵은지는 물에 담가서 소금기를 뺀 후, 집집마다 서로 다른 양념으로 맛을 내서 밥상에 올린다. 무 묵은지도 물로 짠맛을 뺀 후, 간단한 양념을 곁들여 먹는다. 또 배추와 무 묵은지들은 된장을 풀어 찌개를 만들어 먹기도 했었다. 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서 최근에 묵은지를 이용한 많은 종류들의 음식들이 개발되고 있는데 이 맛들은 옛날 집집마다 고유의 그 음식맛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묵은지를 이용해서 개발한 음식들은 대부분의 맛들이 달고 기름진 맛으로 대동소이하다. 묵은지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대량으로 만들기 때문에 맛의 평준화가 된 것 같다.
여름에는 상추쌈을 많이 먹었다. 그런데 상추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쌈장이다. 70~80년대에는 집집마다 쌈장에 맛이 다 달랐다. 쌈장을 만드는 기본은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집집마다 레시피가 달랐다. 고추를 곁들이는 집, 마늘을 다져서 넣거나 마늘쫑과 마늘잎을 잘게 다져서 넣는 집도 있었다. 젓갈류를 좋아하는 집에서는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곤쟁이 젓 같은 것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산골에 사는 사람들과 해변가에 사람들이 각각 그들이 흔히 얻을 수 있는 것들로 만들었던 것 같다. 나는 마늘잎을 다져넣은 쌈장을 싼 상추 쌈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씹고 난 후, 특유의 마늘 향이 알싸하게 퍼져 입안에 남는 여운이 지금도 그립다. 또 호박 잎 쌈이 있었다. 호박잎은 부드러운 잎은 밥에 쪄서 쌈으로 먹고 억센 잎은 항아리뚜껑 같은 곳에 강하게 비벼서 호박잎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호박잎 국을 끓였다. 호박 잎 쌈에 쌈장은 상추 쌈장과 다르다.
호박잎 쌈장은 날된장으로 하는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강된장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용했다. 강된장은 쌀뜨물에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다진 마늘 등 다양한 양념 그리고 기호에 맞는 조개류나 또는 육류를 다져넣어서 만든다. 호박 잎 쌈은 상추 쌈과 다른 깊은 맛이 있다. 호박 잎 쌈을 씹고 나면 약간 쓴 맛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향이 느껴진다. 여름 저녁상에 많이 먹던 그 때 그 모습이 그립다. 그 옛날에는 집집마다 간장, 된장 그리고 고추장 맛이 달랐다. 그래서 같은 종류의 음식이라도 집집마다 서로 다른 맛을 냈다. 지금처럼 정형화 되어가는 맛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느낌을 주었으며 맛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맛을 오래도록 느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