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임씨의 자랑스러운 인물 최영장군과 탐라 정발한 임난수

김진우
(사)뿌리문화 이사장
금강변 세종특별자치시 권역내 부안임씨(扶安林氏)는 임씨(林氏)의 도시조 임팔급(林八及)의 후손으로 평택임씨에서 분관해 임숙(林淑)을 시조로 받들고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부안임씨(扶安林氏)의 시조는 고려초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고려때의 문산계 29계중 제3계이며 1275년에는 종2품 상(上)계였고 1361년에는 정2품 대부로 바뀜)로 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의 정2품 부총리)를 역임하고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에 봉해진 임계미(林季美)의 9세손 임숙(林淑)이다.

시조 임숙(林淑)은 고려 때 공을 세워 순성보절좌리공신(純誠輔絶佐理功臣)에 녹훈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정2품, 문산계 제3계)의 품계로 보안백(保安伯: 보안은 부안의 옛지명)에 봉해졌기에, 후손들이 그를 중흥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봉작지(封爵地)인 부안(扶安)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고려때 제주안무사(濟州按撫使: 왕명을 받들어 백성을 위무하던 임시벼슬)를 역임한 임희재(林熙載)는 시조 임숙의 아들이고, 임대선(林大先)은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錄大夫: 정1품 문.무관의 품계)에 올라 명성을 떨쳤고, 손자 임창무(林昌茂)가 상서(尙書: 고려 6조의 정3품 장관)를 지냈으며 임득귀(林得貴)가 판서(判書:정2품 장관)를 역임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이외에도 임효생(林孝生)은 병조참판(兵曹參判: 종2품 국방차관)을 지냈으며, 경상도관찰사(觀察使:종2품감사.도지사)에 오른 임유(林宥)와 공조전서(工曹典書: 정3품 장관)를 역임한 임난수(林蘭秀) 등과 함께 덕망높은 학자로 가문을 빛냈다.

연기군 남면 양화리 88-5번지 양화리 은행나무(기념물 제157호)
특히 임난수(林蘭秀:1342~1407.6.21)는 부안임씨가 자랑하는 인물이다.
그는 1342년(충혜왕 복위3)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임숙(林淑), 어머니는 유씨(劉氏)이다. 부인은 용성부원군 최유의 딸로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임난수는 고려 말기에 충남 공주(세종시 건설지역인 연기 남면)에 낙향하여 살던 충신이다.
임난수는 32세의 나이로 1374년(공민왕 23) 최영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여 공을 세웠다. 당시 오른쪽 팔이 적에게 잘리자 잘린 팔을 화살통에 넣고 싸워 전승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고 한다. 흥복도감(興福都監),녹사(錄事;의정부.중추원에 딸렸던 서리.기록과 문서를 맡음), 낭장(郎將:고려때 무관의 정6품으로 별장의 위 계급), 호군(護軍:고려말에 장군을 고쳐부르던 이름)등을 거쳐 공조전서에 올랐으나,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자 한 하늘 아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충남 공주(연기군남면 양화리 세종시 건설지역)으로 낙향하였다. 1407년 향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묘는 연기군 동면 합당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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