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샘추위가 지나는 세월이 못내 아쉬운 듯 마지막 발버둥을 쳐 보지만 따스한 햇살이 흩뿌리는 봄기운은 이미 창 너머 앞산에도 완연하다. 어느새 피할 수 없는 봄의 유혹이 시작됐나 보다.
산야의 생것들이 대지 위로 앞 다퉈 고개를 내밀어 온 산이 연녹색 물감을 쏟아 부은 듯하다. 나뭇가지에는 꽃망울이 주저리주저리 매달려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로 터뜨릴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성질 급한 몇몇은 살포시 수줍은 얼굴을 내민다. 산골 동장군 기세에 발목이 잡혀 얼어붙은 골짜기 이곳저곳의 물은 이때다 싶은 듯 힘차게 줄달음질로 소리 지르며 흘러내린다. 산속 황톳길도 겨우내 추위가 담금질한 딱딱한 몸뚱이를 어느새 휙 뒤집어 보드라운 속살로 입산객의 발길을 부드럽게 감싼다.
봄바람이 겨울잠에 고개 숙인 솔잎을 건드리며 봄소식을 전하는가 싶더니 벌써 산마다 인파가 넘실거린다. 그러나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산행과는 달리 청소년의 모습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모두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그들에게 등산은 생각조차 하기 힘든 호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주 5일제 수업이 시작되나 싶더니 벌써 금요일이면 아예 기숙사로 들어가 일요일 밤에 귀가하는 스파르타식 학습이 시작되는 지경이고 보니 더더욱 그러하다.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의 심각성도 모두 이러한 경쟁지상주의에서 비롯된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이를 시급히 시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학교폭력의 일렁이는 물결은 결코 잠잠해지지 않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우리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주 5일제 수업에 맞춘 각종 방과후학교 과정이 등장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 육성에 초점을 맞춘 과정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돈을 좇는 사회는 관련 교육 상품 만들기에 한창이다. 인간미 없는 황폐한 정신 구조를 안고, 평생을 살아갈 기계 같은 인간을 양성하는 일에만 온 사회가 목숨을 거는 것 같다.
매일 와도 달리 보이는 것이 산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늘 맑은 공기와 사시사철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산은 그래서 청량제(淸涼劑)라고도 불린다. 열매와 화사한 꽃에서부터 맑은 공기, 아름다운 낙엽, 땔감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나무, 잠깐이지만 열심히 푸른 빛깔로 녹음에 색을 더하다 스러져가는 이름 모를 들풀까지, 산속 자연의 섭리(攝理)는 조용히 우리에게 교훈을 던진다.
1박2일 일정이면 좋다. 이런 저런 부담이 장애가 된다면 계족산, 보문산, 식장산, 구봉산 등 도심 주변의 산으로 당일치기도 좋고, 반나절 산행이라도 그저 족하다. 산 정상까지 땀 흠뻑 쏟으며 올라서는 것도 좋지만 그저 산길 흙과 바람에 몸을 맡기는 나들이만으로도 삶에 부대끼고,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잠시, 아주 잠시라도 우리 아이들이 경쟁을 잊어버리고, 청정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어울리게 하자. 도시에서는 맛보기 힘든 소중한 것들이 말없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맑은 공기는 도심의 묵은 때를 한방에 날려버리고, 옥구슬 구르는 목청을 맘껏 뽐내는 새들의 합창은 언제든 귀를 즐겁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간혹 펼쳐지는 새의 군무(群舞)는 덤이다.
생동감 넘치는 봄의 향연은 이내 짙푸른 녹음의 여름으로 이어지고,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가을, 수묵 담채로 빛나는 동양화 넘쳐나는 겨울을 차례로 선사하니 무궁무진한 산의 변화는 언제든지 찾을 가치가 충분한 산 교육장이다.
일주일에 한 번. 무리라면 2주일에 한 번 정도, 이마저도 힘들다면 한 달에 한 번은 자연의 품으로 우리 아이들을 내보내야 한다. 정신과 육체가 함께 건강해지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가족이 함께 손잡고, 떠나는 기회를 갖는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걷다 보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작은 땀방울처럼 행복이 피어난다. 행복이 별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