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볼 만한 해외드라마] 1. 체르노빌

설 연휴에 볼 만한 해외드라마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체르노빌'은 2019년 5월 6일 부터 6월 3일까지 HBO에서 방영한 5부작 미니시리즈로, 1986년 4월 26일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9년 8월 14일 왓챠플레이를 통해 국내 최초로 공개되었다.

제71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6개 주요 부문 노미네이션, 그 중 3개 부문(미니시리즈 작품상/감독상/각본상)에서 수상을 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방대한 자료 조사를 기반으로 고증을 상당히 신경 쓴 드라마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실제 기록 영상과 비교해보면 구별조차 힘든 경우도 있다. 실제 구소련 출신 인물들이나 현재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소한 고증들을 극찬하는 경우가 많다.

10대 시절에 체르노빌 사태를 겪었던 키에프 출신 유튜버(USHANKA SHOW)에 의하면 아주 상세한 고증이 보인다.

차량 면에선 당대 널리 사용되었던 URAL,카마즈,GAZ,ZiL,UAZ 등의 차량을 구하여 시대적 배경과 디테일에 신경썼으며, 물론 번호판도 군용, 민간용에 따라 정확하다고 한다. 복장에선 특히 안경의 경우 미군의 GI 안경처럼 못생긴 소련 시대의 안경이 잘 고증되었다고 한다. 특히 해당 유튜버가 어린 시절 어떻게든 흉하지 않은 안경을 구하려 했던 고생을 이야기한다. 다만 복장 고증엔 몇몇 오류가 보이는데 내무군 준사관의 정복 칼라탭이 사병/장교용의 금테 달린 칼라탭이 달려있거나, 장교가 사병 정복을 입은 장면도 존재한다. 그 밖에 헬기가 출동하는 장면들을 자세히 보면 비슷한 비행기로 대체한 것이 아닌, CG와 실제 항공기로 촬영된 러시아제 Mi-8 계열, Mi-6 계열 헬기들이 보인다. 특히 초반에 헬기로 레가소프, 셰르비나등이 이동할때 보면 일반 병력수송용이 아니라 그래도 VIP가 탑승한다고 나름 방음제를 설치하고 나무로 된 테이블과 쇼파형 의자등을 설치한 VIP 운송용 헬기다. 셰르비나가 장관급 정치가인만큼 일반적인 수송헬기 뒷칸에 탑승해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부상자들을 후송하는 장면에서는 일반적인 화물칸을 장비한 헬기에 실려나가는 모습들이 보인다.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 현실의 사건을 최대한 그대로 재현한 다큐드라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사건과 의도적으로 다르게 묘사된 부분이 꽤 있다. 특히 진실 은폐라는 주제에 맞춰 등장인물들을 변경한 부분 때문에 아래의 러시아쪽에서 발끈하는 반응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제작진이 마지막 화에서 밝혔듯, 바람에 실려온 방사능을 감지한 뒤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는 과학자 울라나 호뮤크는 창작된 인물이다. 당시 소련에는 레가소프 외에도 체르노빌의 진실을 알아내고 알리기 위해 노력한 많은 과학자들이 있었으며, 호뮤크는 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상징적 인물이라고 한다.

광부들과 대립하는 석탄산업부 장관인 미하일 샤도프(Михаил И. Щадов)가 작중에서는 양복을 빼 입고 비교적 젊은 이질적인 당 간부로 묘사되었으나, 이 역시 실제와 다르다. 샤도프는 1927년생(사고 당시 59세)으로 이미 노년이었고, 빈농 집안 출신으로 체렘홉스키 광업전문학교를 나와 젊은 나이부터 탄광 현장 업무 경험도 풍부했다. 그리고 광산 업무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톰스크 공과대학까지 졸업하고 기술전문 관료로 발탁, 채탄기술 혁신을 주도하며 승승장구해온 베테랑이라 현장 광부들과의 이질감이 있을리가 만무했다. 작중에서는 자원한 광부들을 더 영웅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책상물림으로 묘사했고, 총을 든 병사들과 같이 온 설정을 한 것이다.

발레리 레가소프(Валерий А. Легасов)의 행동도 실제와 다르게 묘사된 부분이 많다. 특히 재판에서 KGB와 대립하는 부분은 창작이다. 1화 첫 장면에서 레가소프가 혼자서(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상당히 궁핍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사망 시까지 아내와 딸과 함께 살았으며 모스크바 국립대 원자화학부 의장이자 쿠르챠토프 원자 에너지 연구소의 부소장으로 (바지사장이 아닌 실무자로) 바쁘게 일했다(때문에 가난하지도 않았다.). 드라마의 마지막에서는 KGB가 레가소프를 한직으로 내쫓아 매장시키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 오히려 체르노빌 RBMK 원자로의 설계자였던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의 비호 하에서 정치적 후견을 받아 공식석상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소련 핵공학계 내에서는 정치 끄나풀로 투입된 외부인사로 취급되어 외면당하고 고립되면서 그의 우울증을 심화시켰다. 또한 자살 직전에도 건강 상태가 그럭저럭 괜찮은 것으로 나오는 드라마와 달리 실제로는 해가 갈수록 방사선 피폭 증세로 몸이 쇠약해졌으며, 자살 1년 전에도 수면제 복용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체르노빌 폭발 이후에 셰르비나와 레가소프가 처음 헬기로 체르노빌에 도착했을때 대낮인데도 뻔히 보이는 이 체렌코프 현상을 레가소프가 손가락질하면서 저기로 들어가면 방사능 때문에 일주일도 못 지나서 죽는다며 극구 말린다.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셰르비나가 고집을 부리며 원자로 위로 비행하라고 조종사에게 명령하는데 대경실색한 레가소프가 "노심 위로 가면 다들(헬기에 탄 사람들) 일주일 안에 죽습니다!"라며 막으려 들지만 똥고집을 계속 부리며 조종사에게 원자로 위로 가지 않으면 총살이라고 협박한다. 그러자 레가소프는 조종사에게 "장담하는데 저 노심 위로 비행했다간 다음날 총살을 구걸하게 될 거예요!"라고 최후통첩을 놓고 기겁한 조종사가 헬기를 옆으로 꺾는다. 그 말을 옆에서 들은 셰르비나 또한 더 이상 고집부리는 걸 포기하고 얼이 빠진 채 앉아있기만 한다. 이후 발전소 위에서 흙을 뿌리러 온 헬기들이 결국 이 위로 비행해야 함을 깨닫고 그마저도 사고로 추락하는 장면 등을 보며 이 사고가 사람들의 희생 없이는 수습이 불가능함을 깨닫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 역시 실제와는 약간 다르다. 작중에서 헬기가 연기를 통과하자마자 방사선에 의해서 전자 회로 손상으로인한 통제 불능으로 크레인에 걸린 케이블에 로터가 걸려서 추락하는데, 실제로도 동일한 원인으로 추락한 헬기가 있지만 사고 6주 뒤에 일어난 일이다.

앞서 말한 레가소프가 목격한 시점을 비롯해서 방사선 누출로 인해 체르노빌 원자로에서 지속적으로 체렌코프 현상이 발생하고 그 강도도 빛이 대낮에도 보일 정도로 강하게 묘사하는데 실제로는 대기 중에서 이런 식으로 체렌코프 현상이 일어나긴 힘들다.

셰르비나와 레가소프가 마치 크렘린에서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체르노빌까지 헬기를 타고가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도 실제와는 다르다. 모스크바와 체르노빌은 헬기를 타고 갈만한 거리도 아니고, 실제로는 비행기로 키예프까지 간 후 차량으로 이동했다. 그러니 레가소프를 헬기에서 떨군다고 셰르비나가 위협한것도, 사고 현장 바로 위로 가라고 지시한 것도 전부 드라마를 위한 창작인 셈이다. 게다가 소비에트가 아무리 1당 독재 국가였지만 1980년대에는 나름 상식을 갖추고 있는 사회였다. 하급자에 대하여 총살이나 목숨을 담보로한 협박은 지금만큼이나 터부시되었다. 실제로 레가소프에게 선을 지키라는 협박을 위해 세게 나가 보았자 작중에서 댜틀로프가 했던 것처럼 직장을 담보로 한 협박이 다였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소방관 바실리와 아내 류드밀라가 만날 당시의 상황도 실제와는 다른데, 드라마에서는 방사능 피폭자의 잠복기-증상 발현의 연출 차원에서 바실리가 류드밀라와 만날 당시에는 아직 멀쩡해서 동료들과 카드 게임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으나 실제로는 류드밀라가 병원에 찾아왔을 때 이미 바실리는 산송장 신세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자잘한 디테일 등을 다르게 묘사한 경우가 많다. 가령 발전소 지하 탱크의 물을 빼지 않으면 증기로 인해 메가톤급의 폭발이 일어날 거라는 것 역시 말이 되지 않는 대사이다. 그리고 진압 초기 이 지하 탱크에 물이 차도록 뿌려댄 물들이 증기화하여 가연성 물질로 바뀌어 일어났던 2차 폭발에 대해서도 묘사되고 있지 않다. 이 물을 빼러 간 3명의 직원들 역시 자원자가 아니었고, 손전등이 고장난 건 맞지만 드라마에서 충전식 손전등을 꺼내서 쓴 것과 달리 어둠 속에서 파이프를 잡고 길을 찾아서 펌프까지 갔다. 게다가 이 물로 인한 증기 폭발과 이를 저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4호 원자로 화재에 진정으로 결정적인 역할이었던 3호 원자로의 건재 확인-이를 통한 액체 질소 투입에 대해서도 생략되어 있다. 또 작중에 작업인원들이 가이거 계수기를 사용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계수기 특유의 효과음을 넣기 위한 영상적 연출이고 실제로는 더 저렴한 필름 뱃지 등의 방사선량계가 더 많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체르노빌 사고 당시에 의사로서 활동했던 사람이 진행한 체르노빌의 팩트체크 영상 방사능 피폭 직후에 바로 피를 흘리고 피폭환자의 피부가 화상 입은 것처럼 보이는 등의 비현실적인 묘사를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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