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난징루 보행자거리

오늘날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자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상하이는 2415만 명이 사는 세계 8위의 대도시이다. 대륙을 흘러내려 온 양쯔강과 쑤저우(蘇州)의 타이후 호수(太湖)에서 발원한 우쑹 강(呉淞江 또는 蘇州河)이 합류하는 황푸강(黃浦江) 하류인 이곳은 BC 200년경 춘추 5패의 하나인 초(楚)의 장왕(莊王)이 지배하던 땅이었다. 

당시 초의 재상 황헐(黃歇)이 강을 최초로 정비하여 황헐의 이름에서 황푸강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황푸강에는 상하이푸(上海浦)와 샤하이푸(下海浦)라는 두 개의 포구가 있었는데, 상하이푸 지역이 오늘날의 상하이시다. 상하이의 도심을 흐르는 폭 400m의 황푸강의 동쪽을 푸둥 지구(浦东), 서쪽을 푸시 지구(浦西)라고 하며, 푸시 지구는 구도심이고 푸둥 지구는 1992년부터 개발된 신도심이다. 

예원상성거리

상하이에는 구도심의 홍차오 공항과 신도심에 푸둥 공항 등 2개의 국제공항이 있다. 홍차오 공항에서 상하이 시내 와이탄까지 11.5㎞이지만, 푸동공항에서는 약 40㎞ 거리로 1시간 이상 걸린다. 그렇지만, 푸둥 공항에서 지하철 2호선 양류 역까지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자기부상열차가 운행되고 있는데, 시속 430㎞의 자기부상열차는 31㎞를 약 8분 만에 주파한다.

물론, 공항버스는 시내까지 직행버스와 각 정류장을 거치는 일반버스가 있다. 인천에서 상하이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리지만, 북경 표준시가 서울보다 1시간 늦어서 출국할 때에는 1시간 만에 도착하게 되고 귀국할 때에는 3시간이 걸린다. 상하이는 북위 31도로서 제주도보다 남쪽으로서 기후는 일본 오키나와와 비슷하다. 2019년 12월 상하이여행은 상하이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A 사장이 항공권과 호텔숙박 등 일체를 제공한 덕택이었다.

예원상성

티켓은 비즈니스석이었고,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 후 귀국할 때까지 회사직원이 운전하는 승용차로 편안한 여행을 했다. 반면에 우리 가족끼리 여행할 때처럼 직접 걸으면서 이곳저곳을 골고루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런데, 북경올림픽을 준비하던 2005년 이래 네 차례 중국여행을 하면서 점점 발전된 모습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언짢음을 많이 겪었다. 푸동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밟을 때, 얼굴인식 카메라며 두 손 지문을 찍는 것은 그동안 발달한 전자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라 치부했지만, 호텔에서 체크인할 때조차 얼굴인식 사진을 찍는 불쾌함과 곳곳마다 까다로운 제약에 당분간 중국여행은 접기로 했다. 

중국은 본토 면적만 959만㎢로 러시아, 캐나다, 미국에 이어 세계 제4위의 대국으로서 한반도의 44배이자 남한 면적의 약 100배에 상당한 영토에 15억의 인구가 살고 있다. 그러나 평균 해발 4000m가 넘는 티베트 고원이 전 국토의 1/4 이상이다.(중국에 관하여는 1월 8일 자 '중국의 개요' 참조) 

예원의 문동

티베트 고원의 칭하이성(靑海省)은 중국에서 가장 큰 호수인 칭하이호(靑海湖)에서 지명이 유래했는데, 칭하이호는 황하와 양쯔강의 발원지일 뿐만 아니라 창강, 메콩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황허는 친링산맥(秦嶺山脈) 북쪽에서 내몽고자치구 방향으로 북진하다가 남하하여 친링산맥에 가로막혀 90도로 꺾여서 발해만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일대가 관중(關中) 지역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주(周)의 수도 호경(鎬京)이 있었으며, 그 후 진의 도읍지가 된 이래 한, 수, 당 등 12개 왕조의 수도가 된 관중 지역은 북쪽의 소관(蕭關), 동쪽의 함곡관, 남쪽의 무관(武關), 서쪽의 대산관(大散關) 사이로서 장안, 시안, 북경 등의 도시가 있다.

와이탄 황소상

한편, 티베트 고원 남쪽 칭하이호에서 발원한 양쯔강은 쿤룬산맥(崑崙山脈)을 거쳐서 쓰촨성, 시짱(티베트), 윈난성, 충칭, 후베이성, 이창(宜昌), 우한(武漢), 산시성, 장시성, 안후이성, 장쑤성, 난징(南京) 등 12개 성을 지나 상하이에서 동중국해로 빠져나간다. 장장 6300㎞에 이르는 긴 양쯔강은 나일강, 아마존강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 큰 강인데, 양쯔라는 이름은 당(唐)이 양자진(揚子津) 포구에 양자현(揚子縣)을 설치한 것에서 유래한다. 중국인들은 양쯔강을 ‘긴 강’이라는 뜻으로 창장(長江)이라고만 한다. 양쯔강 유역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절반 정도를 생산하는 곡창지대이고, 상하이·난징·우한·충칭 등 대도시가 발달했다. 

홀리데이인호텔

또, 허난성의 동백산 로아차에서 발원한 화이허(淮水)는 허난성, 안후이성, 장쑤성 등 3개 성을 지나 발해만으로 빠져나가는 1078㎞의 긴 강인데, 하류는 평탄한 저지대여서 매년 범람하여 홍수를 일으켜서 '괴하'(壊河)라고도 불린다. 중국이 오늘날처럼 통일제국을 이루기 전에는 이 강을 기준으로 화베이(华北)와 화난(华南)으로 나눴다.

특히 황허 북쪽 관중 지역과 구별하여 화이허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중원(中原)이라고 했다. 중원이란 공자가 '시경'에서 세상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이(四夷: 변방 오랑캐)로 나눌 때, 그 중심지역으로 처음 사용된 지명으로서 중국인들은 주 왕조의 수도가 있었으며, 주 왕조가 지배했던 지역인 중원과 중국을 동일한 의미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역대 중국 왕조는 중원을 지배하면 전국을 통일할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했는데, 오늘날 허난성 대부분과 산둥성 서부 및 허베이·산시성 남부가 이에 해당한다. 

동파육

청 말 제국주의 세력이 밀려오자, 이에 저항하여 홍수전(洪秀全)을 중심으로 백련교도들이 태평천국의 난(1851~1864)을 일으켰다. 또, 영국이 공식 무역창구인 공행(公行)을 통하지 않고, 인도산 아편의 밀매매로 많은 아편 중독자가 생겨나고 막대한 은의 유출로 공황을 겪자 영국과 아편전쟁을 벌였으나 패함으로써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즉, 1842년 난징조약으로 홍콩이 할양되고, 광둥·푸저우·닝보·샤먼과 함께 상하이를 개항하게 되었는데, 영국은 1845년 와이탄에, 1848년 미국이 와이탄 북쪽 훙커우에, 1849년 프랑스 조계를 설정했다. 와이탄(外灘)이란 황푸강을 따라 약 1.5㎞가량 이어지는 강가로서 이곳은 청의 행정구역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 지역을 마지 못해 내준 지역이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개발한 조계(租界)는 이후 숱한 크고 작은 전쟁을 거치면서 가장 안전지대로 알려지면서 외국인은 물론 많은 중국인이 밀려들어 쑤저우(蘇州) 등이 쇠퇴하고 상하이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상해임시정부 유적지

이런 개화의 영향을 받아 1911년 5월, 쑨원(孫文: 1866~1925)이 만주족을 타도하고 한족에 의한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민족주의, 민권 주의, 민생주의 등 삼민주의를 내세우고 신해혁명을 일으켰다. 대만 정부에서는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 10월 10일을 중화민국 건국일(雙十節)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벌인다. 1921년 7월 자유의 물결이 깊숙이 스며든 상하이에서 마오쩌둥, 진독수 등도 공산당을 창당했으며, 1924년 쑨원은 일제를 격퇴하기 위하여 1차 국공합작을 했다.

그러나 이듬해 쑨원이 북경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죽자, 장제스가 쑨원을 계승하여 군벌을 일소하는 북벌에 나서 1928년 베이징 입성했다.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으로 일본군 격퇴와 공산당 척결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놓고 고민하던 장제스는 장학량(張學良: 1898~2001)이 국공합작을 요구하며 가둔 시안 사건으로 국공합작을 하게 된다.

홍커우공원 매정 입구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재개된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는 1949년 대만으로 쫓겨 가고, 대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섰다. 쑨원의 삼민주의는 대만 정부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오늘날 중국 정부는 삼민주의를 계승하고, 건국기념일에는 천안문광장에 그의 초상화를 내걸고 있다.

황푸강과 푸동의 동방명주

중국은 공산당을 세운 마오쩌둥을 국부(國父)라고 하지만, 대만 정부와 사상, 이념이 다른 중국공산당조차 쑨원을 '현대 중국의 아버지'로 부를 만큼 모든 중국인이 그를 존중하고 있다. 상하이에는 근대 중국의 영욕이 어우러져 있는 거대도시이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