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일 정치부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지난 4일 공개한 박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 연합뉴스

‘사상 초유’라는 수식어가 붙은 뉴스가 줄을 잇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를 목전에 두고 온 나라가 전염병으로 요동치는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 말이다.

중국 우한발 변종 바이러스인 코로나19로 인해 대한민국이 휘청거리며 제21대 국회를 구성할 선거의 승패를 바로 이 코로나19가 좌우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19가 모든 걸 덮어버리는 블랙홀이 된 마당에 자고 깨면 늘어나는 확진자·사망자 수를 보면서 재난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더 이상 픽션이 아닌 현실이 됐음을 체감한다. ‘개발’과 ‘성장’이란 미명 하에 자연환경과 생명의 순리를 무참하게 짓밟고 파괴해 온 인간에게 닥친 업보(業報)일까?

극과 극은 통하는 것일까?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하는 기적을 연출하더니 그 직후 봉준호 감독의 고향 대구에서 코로나19라는 이상한 기생충이 급속도로 퍼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됐다. 청와대에 계신 높은 분들이 짜파구리를 먹으며 파안대소를 하는 동안 대구에선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의 공포가 급속히 드리웠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대통령 탄핵 촉구 청원에는 동의자 수가 5일 현재 146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맞서 뒤늦게 오른 대통령 응원 청원 동의자도 125만 명을 돌파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으면 마치 죄인인 된 듯한 주변의 시선을 받고, 다중이용시설과 대중교통 이용이 꺼려진다. 이른 아침부터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공산품이 차고 넘치는 풍요의 시대, 클릭 몇 번으로 재화와 용역을 사고파는 전자상거래가 일상이 된 시대, 제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풍경이기 때문이다. 전쟁통에 마치 구호물품을 타러 몰려든 난민들이 된 듯한 우리 이웃들의 모습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이런 것이었나?’ 하는 덧없는 반문에 쓴웃음이 지어진다.

4·15 총선이 6일을 기해 정확히 4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이슈가 코로나19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에 발이 묶인 예비후보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방역통을 어깨에 둘러메고 어색하게 방역 퍼포먼스를 하는 사진을 찍어 언론사에 보내와 홍보를 해달라고 한다. 저녁 약속, 회식 자리가 크게 줄어든 직장인들 중에는 “이제서야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았다”라며 반색(?)을 하는 이들도 있다.

최 일 정치부장

지난해엔 죽창을 들고 싸우자며 일본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 정부가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속에 중국 혐오를 야기하는 형국이 됐다.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가 어긋나는 건 국익 차원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데, 3대 세습 독재정권인 북한으로부터도 조롱의 대상이 된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야말로 ‘웃픈’ 현실이 됐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이 공개됐다. 신천지 교주의 ‘시계 소동’에 이어 국회 정론관에서 난세를 구할 메시아의 목소리인 것처럼 그의 자필 편지 내용이 대리인을 통해 발표됐다.

박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발 친필 서한을 통해 현 집권세력을 ‘오만하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세력으로 규정하고, 보수 진영을 향해 분열하지 말고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뭉칠 것을 호소했다. 국정 농단으로 탄핵을 당해 역사의 뒤안길로 초라하게 사라진 전직 대통령이 영어(囹圄) 생활 3년 만에 확고한 정치적 목소리를 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민생당, 정의당 등 범여권 정당들은 즉각 “국민의 탄핵 결정을 부인하는 옥중 선동정치”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또한 “미래통합당이 박 전 대통령의 정당이고, 적극적으로 총선에 개입하겠다는 것을 스스로 선언한 셈”, “자신의 추종 세력을 규합해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고도로 기획된 정치공작성 발언”이라고 몰아세웠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의 지지에 감명을 받은 듯 미래통합당은 “천금 같은 말씀”이라며 “이 나라, 이 국민을 지켜달라는 애국심이 우리의 가슴을 깊이 울린다”고 큰 의미를 부여하며 통합 완수를 다짐했다.

보혁(保革) 간의 갈등을 격화시키고, 대결 정치를 한층 첨예하게 만들 수도 있는 그의 ‘옥중 정치’는 과연 40일 뒤 어떤 결과를 낳을까? 코로나19의 종식 여부와 함께 옥중서신이 이번 총선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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