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상하이~쑤저우 고속도로 휴게소

대륙을 가로지르는 양쯔강과 커다란 호수 타이후(太湖)를 북쪽에 둔 삼각주 지대인 쑤저우(蘇州, 苏州)는 오늘날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인구 580만 명의 도시이다. 

티벳 고원의 칭하이호(靑海湖) 남쪽에서 발원한 양쯔강은 6300㎞를 흘러 상하이에서 동중국해로 빠져나가는데, 양쯔라는 이름은 당나라 때 양자진(揚子津) 포구에 양자현(揚子縣)을 설치한 데서 유래한다. 중국인들은 양쯔강을 ‘긴 강’이라는 뜻으로 창장(長江)이라고 한다. 양쯔강 유역은 중국의 농산물의 절반 정도를 생산하는 곡창지대이고, 상하이·난징·우한(武漢)·충칭과 같은 대도시들이 발달해 있다.

쑤저우 운하

한편, 저장성과 장쑤성 사이에 있는 호수 타이후는 남북 약 70㎞, 동서 약 59㎞에 이르는 초승달 모양의 거대한 호수로서 면적은 약 2200㎢라고 한다. 타이후 서쪽에서 유입된 물은 이곳에 머물렀다가 쑤저우강(蘇州江), 튀장강(婁江), 황푸강(黃浦江)을 통해서 상해를 거쳐 동해로 흘러간다.(강남지방에 관하여는 2월 26일 자 상하이 개요 참조) 

쑤저우 산탕제

쑤저우는 BC 6~4세기에 춘추 5패 중 하나였던 오(吳)의 수도였다. 월(越)과 오랫동안 패권을 다투던 고대도시 쑤저우 시내에는 오왕 부차(夫差)가 쌓았다고 하는 성벽이 남아있다. 물론 옛날보다 도시가 커진 지금 성안은 문화유적이 밀집한 구도심이고, 성 밖은 IT 기업이 밀집해 있는 신시가지이다. 오왕 부차는 아버지의 합려(阖闾)의 원수를 갚고자 가시덤불 섶에 누워 잠을 자면서 복수를 노리다가 월(越)의 구천(句踐)을 항복시켰고, 또 부차에 패한 월왕 구천은 쓰디쓴 쓸개를 맛보며 복수를 꾀하여 다시 오를 패배시켰다고 하는 고사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을 비롯하여 각주구검(刻舟求劍) 등 수많은 고사를 만들어낸 나라들이었다. 

호구탑

오를 세운 합려는 BC 496년 쑤저우의 서북쪽 나지막한 산 호구(虎丘)에 묻혔는데, 호구란 합려를 매장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어디선가 흰 호랑이(虎) 한 마리가 나타나서 무덤 앞에 엎드려 무덤을 지켰다고 하여 붙은 지명이다. 호구에 올라가면 쑤저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또 목탑과 전각들이 있는 공원이지만, 터무니없이 입장료를 1인당 60위안(한화 약 1만 원)이나 받는다. 한눈에 보아도 약간 기울어진 것을 알 수 있는 높이 36m인 호구탑(虎丘塔)을 ‘동방의 피사탑’이라고 하지만, 구태여 비싼 입장료를 내고 구경할 실익은 거의 없다. 

너른 평야와 풍부한 물,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쑤저우는 수(581~618)가 중국을 통일한 후 북경에서 쑤저우를 거쳐 항주(杭州)까지 대운하(京杭大運河)를 개통한 이후 더욱 풍요로운 도시가 되었다. 한편, 쑤저우와 이웃한 저장성의 성도(省都) 항저우는 인구 760만 명의 대도시로서 이 두 지역을 중국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서 강남(江南)이라고도 말한다. ‘강남’이란 수가 대륙을 통일하기 전까지 이민족이 난무하던 화북지방과 달리 오(吳)를 비롯하여 동진(東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 등 양쯔강 이남에 한족(漢族)이 이룩한 문화를 육조문화(六朝文化)라고 하여 높게 평가하는 말이다. 

전통시장 핑장루

오랫동안 한족의 육조 귀족문화가 발달한 쑤저우는 타이후와 크고 작은 호수와 강· 연못이 많아서 ‘정원의 도시’라고도 하고, 또 운하가 많아서 ‘물의 도시’라고도 한다. 쑤저우 시내 성 밖의 운하는 쑤저우 성곽을 보호하는 해자(垓字)처럼 성을 둘러싸고 있고, 서쪽 외각에 수나라 때 만든 대운하가 그대로 남아있다. 

원나라 때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71~1295)가 원나라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 뒤 여행기 동방견문록에서 쑤저우를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격찬했다고 하지만, 베네치아를 세 번 여행한 내 눈으로는 넓은 아드리아해의 리알토(Rialto) 섬을 중심으로 116개의 섬이 409개의 다리로 옹기종기 연결하여 형성한 베네치아와 비교한다는 것은 턱도 없다. 어쩌면 최근 몇 년 전부터 주목을 받는 베트남의 중부 고대도시 호이안(會安)을 떠오르게 해줄 정도이다.

전통시장 기념품점

명(1368~1644)~청(1644~1911) 시대에 강남지방은 “하늘에 천국이 있다면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天上有天堂 地上有苏杭)”고 말할 정도로 모든 귀족과 부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던 도시였다. 또, 청의 강희제도 황후를 비롯한 문무 대신 3000여 명을 대동하고, 그가 재위하던 1684~1707년 사이에 전후 6회나 강남을 순행하기도 한 도시였다. 오늘날 쑤저우의 동부는 신도심이고, 남부와 북부는 주거지와 소규모 공업지대이고, 서부는 첨단기술단지이다. 이곳에 우리의 삼성전자의 대규모 공장이 있으며, 교민도 많이 살고 있다.

시내는 지하철과 시내버스도 운행되고 있지만, 도시가 온통 호수와 연못인 물의 도시여서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물길을 이용한 교통과 운송이 활발하다. 

중국 정부는 1961년 3월 국무원령으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를 발표했는데, 전국의 명승지와 관광지를 5A(AAAAA)~1A까지 다섯 등급을 매겼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국보와 보물, 기타 지정문화재를 나누는 기준과 비슷한데, 그중 베이징의 이화원(颐和园), 청도의 피서 산장(避暑山庄), 쑤저우의 유원(留园)과 졸정원(拙政园)을 ‘중국 4대 명원(名园)’이라고 한다. 명원이란 유명한 정원으로서 중국의 4대 명원은 모두 5A급이다. 

쑤저우에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150개가 넘는데, ‘중국의 4대 정원’ 중 쑤저우에서만 2개나 뽑힐 만큼 아름다운 정원의 도시이다. 특히 송(960~1278), 원(1271~1368), 명(1368~1644), 청(1644~1911) 등 4왕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창랑정(沧浪亭=송), 사자림(狮子林=원), 졸정원(명), 유원(청)을 ‘쑤저우 4대 명원’이라고 하는데, ‘쑤저우 4대 정원’은 199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일괄 지정되었다. 

국내에서는 쑤저우까지는 직항노선이 없어서 대부분 중국 남부 최대의 도시 상하이까지 간 뒤, 상하이에서 쑤저우로 이동하고 있다. 상하이에서 쑤저우까지는 106㎞ 거리로서 열차와 시외버스 등 대중교통이 매우 발달했다. 그러나 시외버스는 열차보다 느리고 요금도 비싸서 대부분 열차를 이용하고 있다. 쑤저우~상하이~난징(南京) 철도는 1908년 중국에서 최초로 개통된 철도로서 한 말 인천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 경인선이 최초로 개통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

고속도로휴게소 식당
고속도로 식당 전경

최근에는 고속열차도 개통되어서 약 30분 만에 갈 수 있고, 일반 열차는 1시간가량 걸린다. 하지만, 상하이 홍차오역(上海虹桥站)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는 쑤저우 외곽인 쑤저우 북역(苏州北站)에서 내리고, 상하이역(上海火车站)에서 출발하는 일반 열차는 쑤저우 구도심인 쑤저우역(苏州站)에서 내리므로 구태여 비싼 요금을 내고 고속열차를 탈 실익은 없다. 

나는 상하이에 도착한 이후 줄곧 A 사장과 함께 그의 회사 직원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였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보고 들은 체험을 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반면에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상하이~쑤저우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러시아워가 따로 없다고 할 만큼 정체되는 모습과 고속도로휴게소의 음식과 차를 맛본 색다른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고속도로휴게소의 주차장과 휴게소의 규모나 내부는 우리의 1970년대 어느 시골 국도변의 음식점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조잡하고 낡은 시설에 쓴웃음을 지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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