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졸정원
졸정원 호수

쑤저우박물관 바로 옆에 졸정원과 사자림이 있는데, 사자림은 박물관에서 남쪽으로 약 150m쯤 떨어져 있다. 졸정원에서도 도보로 약 3분 정도 거리이다.

사자림은 쑤저우의 다른 원림과 달리 원 말기인 1342년 혜종(惠宗) 때 고승 유칙(惟則)이 사자림보리정종사(獅子林菩提正宗寺)라는 이름으로 조성한 사찰 원림이었다가 명·청 시대를 거치면서 민간에 넘어갔다. 청 말~중화민국 초기에는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을 1917년 쑤저우의 부호 베이런위안(貝仁元)이 매수하여 9년 동안 고쳐서 살다가 1953년 중국 정부에 의해 관리권이 넘어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유원 입구

사자림의 입장료는 40위안(한화 약 6800원)인데, 입구에 걸린 사자림이란 편액은 청 강희제의 친필이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연예당(燕譽堂)은 겉모습은 보통의 기와집이지만, 내부는 두 개의 방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서 한 쌍의 원앙과 같다고 하여 원앙청(鴛鴦廳)이라고도 한다. 원앙청은 얼핏 보면 비슷한 모양이지만, 자세히 보면 천장에 노출된 서까래의 형태,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대들보, 반은 원형이고 반은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기둥, 병풍, 문, 창, 배열한 가구, 벽의 그림, 바닥, 등까지 모두 열 군데가 다르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이런 양식은 졸정원과 사자림에만 있는데, 1876년 쑤저우의 여러 원림의 장점을 모아서 청을 대표하는 정원으로 만든 유원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원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는 여행자가 아니라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쑤저우 4대 정원을 모두 관람할 실익은 거의 없다.

중국에서는 원림을 조성할 때에는 쑤저우의 타이후(太湖)에서 출토되는 태호석을 최고로 여겨서 베이징 자금성, 이화원은 물론 대만 등 전국으로 팔려갔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쑤저우의 사자림에서 첩석가산(疊石假山), 유원의 관운봉(冠云峰)은 가장 웅장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졸정원 문창

졸정원을 ‘물의 정원’이라고 한다면, 사자림은 ‘돌의 정원’이라고 할 만큼 우뚝우뚝 솟은 석가산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사자림에서 가장 유명한 석가산은 구멍이 숭숭 뚫린 기묘한 돌로 산의 형상을 연출한 첩석가산이다. 첩석가산은 사자림을 처음 조성할 때의 모습 그대로라고 하는데, 석가산의 위아래로 세 갈래 길이 이어지고 또 동굴을 통과하는 것도 21곳이나 된다. 좁은 통로를 따라 한 바퀴를 돌면 2~3m 높이의 바위 위에 올라서기도 하는데, 바위 위에 올라서면 연못과 정자가 다른 풍경으로 보인다. 청나라 강희제가 이곳에 와서 두 시간 동안이나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고도 하고, 건륭제는 이곳을 둘러보고 ‘정말로 재미있었다’며 진취(眞趣)라는 친필과 인장까지 찍은 편액을 하사하여 그 편액이 지금도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청나라 황제들은 베이징의 원명원, 청도의 피서산장에도 사자림을 본떠 원림을 조성했다. 연예당에서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태호석으로 쌓은 구사봉(九獅峰)은 총명한 사람만이 9마리의 사자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오하명원

또, 사자림 내부에는 외벽이 아닌 담장도 두세 개 있는데, 이 담을 통과하는 문에는 문짝이 없이 문동(門洞)만 있다. 문동은 원형, 반원형, 타원형에서부터 도자기와 같이 잘록한 모양도 있는데, 문동을 통해서 건너편 풍경을 바라보면 문동이 액자가 되고, 건너편 풍경은 그림으로 보이는 멋이 있다. 또, 담에 창을 내고 창살로 각종 화려한 문양을 만든 화창(花窓)과 창살 이외에 안팎이 트인 구조인 누창(漏窓)도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문양의 화창과 누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풍경은 무한한 영감을 느끼게 해준다.

졸정원 현판

또, 원림에는 지붕과 기둥만 있는 작은 정자도 있고, 팔작지붕 형태로 지은 수려한 건물도 있는데, 어느 정자든 정면 상단에 당호(堂號)를 붙인 편액이 걸려 있고, 정면의 기둥에는 원림의 풍경과 정취를 적은 주련(柱聯)이 붙어 있다. 특히 정자 문매각(問梅閣)에 기창춘신(綺窓春訊)이란 편액은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689~759)의 시에서 '고향에서 오셨으니, 고향 소식을 알겠구려. 고향을 떠나던 날, 우리 집 창가에 겨울매화가 피었던가요?(君自故鄕來 應知故鄕事 來日綺窓前 寒梅著花未)'라는 시구이다. 또, 쑤저우 출신 화가 자오런룽(曺仁容)이 사자림의 설경을 그린 사림답설(獅林踏雪)은 사실 쑤저우에는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데도 상상화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졸정원 행랑

졸정원과 함께 ‘중국 4대 정원’ 중 하나인 유원(留園)은 여문(閭門) 밖에 있다. 여문이란 중국의 전통적인 마을 입구의 출입문이다. 1525년 명 가정(嘉靖) 연간에 서태시(徐泰時: 1548~ 1598)의 개인 정원으로 처음 조성했는데, 그 옆에 있는 서원에 대응하여 동원(東園)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명이 망하고 청대인 1794년 류슈(劉恕)가 고쳐서 한벽장(寒碧莊)이라고 했다가 1876년 성강(盛彊)이 쑤저우에 있는 여러 원림의 장점을 모아서 청을 대표하는 정원으로 만들어서 유원이라고 고쳤다. 유원이란 '천지간에 오래 머물게 만드는(長留天地間) 정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유원의 입장료는 40위안(한화 약 6800원)인데, 면적은 약 2만㎡(약 7000평)로 졸정원의 절반 정도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사당을 지나 문청(門廳)~대청으로 통하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오나라 최고의 명원이라는 오하명원(吳下名園) 편액 아래에는 유원의 풍경을 그린 옛 그림이 있다.

문화유산 5A 표지

유원은 중앙의 연못을 중심으로 산수, 회랑, 정원 등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의 연못 부분이 한벽장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약 700m에 이르는 긴 회랑이 원림의 동·서·남· 북을 연결해주는데, 특히 회랑에 누창과 화창을 많이 만들어서 산책하는 동안 바라보이는 바깥 풍경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변하도록 꾸민 것이 유원만의 특징이다. 누창과 화창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은 구역마다 담과 돌들이 저마다 기하학적으로 솟아 있어 넓게 펼쳐진 정원의 아름다움에 독특한 볼거리를 더해 준다. 유원의 회랑은 북경 이화원이나 다른 정원처럼 지붕을 만들어서 청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회랑에 관하여는 1월 29일 자 북경 이화원 참조)

유원은 저택의 규모가 크기 때문인지 진입하는 곳마다 중정(中庭: 가운데 정원)을 만들어서 찾아오는 손님을 잠시 머물게 했는데, 그중 주인이 손님을 맞는 오봉선관(五峰禪館)이 가장 아름답다. 오봉선관은 유원의 석가산이 장시성 노산(魯山)의 다섯 봉우리를 닮았다고 하여 오봉선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오봉선관 편액 양쪽에 각각 다섯 봉오리를 그렸다.

석가산

유원의 석가산 중 관운봉(冠云峰), 좌병(座屛), 어화석(?化石)을 ‘유원 삼보(留?三?)’라고 하는데, 그중 6.5m 높이에 무게가 5t이나 되는 관운봉은 태호석 중에서 최고의 돌로 평가를 받는다. 오봉선관에서 정면으로 관운봉이 바라보인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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