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대전시 공동기획 : 2020 대전 청년을 말하다] 9. 백종운 ㈜손수레 대표
  • 이준섭 기자
  • 승인 2020.05.24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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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농사로 즐기는 놀이터 꿈꾸며 내일을 일군다
군 생활 중 맛본 농사의 재미에
전자공학도 길 걷다 진로 틀어
단순한 농사짓기에서 벗어나
함께 즐기는 문화 만들고 싶어
백종운 ㈜손수레 대표가 텃밭을 정리하고 있다. 이준섭 기자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청년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사회엔 자신을 자신의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꿈을 그려나가는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취직’으로 대표되는 정형화된 청년의 삶을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자신의 업(業)으로 만들어내는 청년들이다. 여기엔 소통과 협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 ‘직업’인 경우도 포함된다. 청년의 삶에 있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도전적인 대전지역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사회 혁신을 이뤄가고 있는지 기록한다. 편집자

농사는 본디 밤낮이 구별되지 않는다. 타작하랴 말리랴, 한 톨 한 톨 손이 가는 소중한 생명과 진배없다. 그래서 예부터 ‘농자(農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2020년 우리 농업의 현실은 영 불안하기 짝이 없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농촌에선 예순이면 청년, 일흔은 돼야 장년이라고 할 정도이니 젊음이 빠진 오늘날 농업 현장의 그늘이 더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런 현실을 잘 알면서도 땅을 믿고 자신과의 약속을 신뢰하며 농군의 꿈을 키우는 이가 있다. 그것도 보기 드문 30대 새파란 청년이다. 예비사회적기업을 통해 도심 속에서 농업의 내일을 그리고 있는 백종운(33) ㈜손수레 대표를 만났다.

◆ 전자공학도, ‘농부’의 꿈을 그리다
뭇 사람들은 충남 서천 태생인 그에게 ‘농부가 될 만도 했네’라고 하지만 역사 이래 그의 집안은 농사와 하등 관계가 없다. 친척들 역시 자동차공업사 사장, 전자과 대학 교수 등 농사와 연관 없는 삶의 터전에서 생계를 꾸리고 있다. 백 대표가 난생 처음 군대에서 농사를 접하기 전까지 그랬다.

“집안에선 자고로 남자면 ‘전자공학’ 분야로 가야한다는 인식이 커서 저 역시 한밭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어요. 그러다 '험상궂은 인상' 덕분에 헌병대에서 군 생활을 하던 중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한 수사관을 따라 농사를 지어보게 됐죠. 본의 아니게 거기서 농사의 재미를 느꼈는데 제대 후 그 손맛(?)을 잊지 못해 학교 안에 텃밭을 만들고 취미로 계속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그 때까진 그저 씨앗에서 꽃과 잎이, 그리고 열매가 달린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으나 졸업을 앞두고 찾아온 진로 선택의 길 앞에서 그는 퍽 과감한 결단을 했다. 전자공학이라는 자신의 전공이 싫진 않았으나 즐거운 일을 자신의 업(業)으로 삼고자 했던 오랜 생각들을 세상 밖으로 펼치기 시작한 거다.

“전공은 전공대로 하면서 틈이 있을 때마다 저처럼 농사짓는 대학생들을 만나러 다니고 동아리도 만들었는데 진로를 정하려고 4학년 1학기에 휴학을 하게 됐어요. 여러 고민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전자공학이 싫지는 않지만 내게 즐거운 일은 농사짓는 것’이었습니다. 농사가 운명이라 생각했죠.”

◆ 공부하는 농부가 되는 길
농업현장이 어려운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백 대표는 이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진 까닭을 단숨에, 그리고 나름 명쾌하게 짚어낸다. 농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부하는 농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무일푼으로 농사에 뛰어든 그가 그 나름대로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건 결국 배움을 위한 끊임없는 발버둥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농부가 되기로 맘먹은 뒤로 끊임없이 돌아다녔어요. 농사 관련 교육도 받고 농업 분야 취업박람회, 농자재 유통 현장을 찾아 배우려고 노력했죠. 우연한 기회에 생활협동조합에서 도시텃밭, 주말농장 업무를 하면서 농사를 더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경험은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백 대표가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현장으로 나아갈 때가 온 것이다. 대체로 농사라 함은 시골 땅 구수한 흙내음 맡으며 하기 마련인데 그는 이번에도 의외의 선택을 했다. 도시 안에서도 시골스럽고, 더 느린 농사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농사를 지을 것인지를 놓고 ‘도시냐, 시골이냐’를 고민했는데 아무리 철학적으로 농사에 전념해도 소비자 선택을 받긴 힘들겠더라고요. 그래서 도시 안에서, 도시의 소비자를 만나기로 했죠. 도시 속에서 더 시골스럽고 느리게 농사지으며 지역민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갈등과 화해, 그리고 ‘손수레’
가진 땅도, 돈도 없었던 백 대표는 주변 농민들을 찾아다니며 “벌어서 갚을 테니 남는 땅 좀 빌려달라”고 공수표를 날린 끝에 한참 만에야 성북동에 600평, 세동에 농지 일부와 하우스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땅 문제를 해결하니 이번엔 사람과의 갈등이 무섭게 다가왔다. 오랜 설득 끝에 다소 허무한 결말을 맺었지만 그 때만 해도 그에겐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농지를 얻어 농사도 짓고 로컬푸드 출하도 하면서 자리를 잡는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내 땅이 아니다보니 투자나 계약 문제가 연달아 터지더라고요. 특히 외지인이다 보니 마을 사람들과도 원치 않는 마찰을 겪었죠. 결정적인 건 부모님의 반대였습니다. 아들 농사짓는 걸 좋아하는 부모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은 만고불변의 법칙인 모양이다. 자식과 연도 끊을 태세였던 부모님은 우연찮은 기회에 출연한 TV 프로그램에서 진심을 담은 아들의 영상편지 하나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백 대표에게 가족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셈이다.

“그렇게 설득을 해도 안 된다고 하시던 부모님이 영상편지를 보곤 직접 농장으로 오셨어요. 어머니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죠. 무거운 얼굴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던 아버지가 “이왕이면 진짜 네 터전에서 공간을 만들어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우회적인 승낙을 하시던 그날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 이후 집에서 일부 도움을 받고 대출 받아서 농사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 농사로 즐기는 놀이터
손으로 직접 짓는 농사, 간디의 물레라는 의미가 담긴 손수레에선 제법 많은 활동이 펼쳐진다. 감자·옥수수·대추·방울토마토 등 체험 농장부터 지역민을 위한 주말 농장 운영은 물론이고 농림부 도시농업전문인력양성기관으로 선정된 뒤부터는 이 분야 활동가들을 키워내는 산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 중이다.

“손수레는 기본적으로 체험농장과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곳이자 농림부 도시농업전문인력 양성기관이기도 합니다. 도시농업부터 환경, 생태, 식생활 분야 강사를 교육하기도 하고 최근에 도시농업관리사라는 국가자격도 생겨서 해당 교육과정도 열고 있고요.”

하지만 백 대표와 손수레의 미래가 마냥 창창한 건 아니다. 안개 자욱하게 낀 오늘날 농업 현장의 현실이 여간 걱정스러워서다. 그가 농업 현장에 그래도 내일이 있으려면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적인 인식이 조금은 변해야 한다고 소망하는 연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도심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 구상을 세우고 있다. 시민 누구나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게 목표다. 단순히 농사를 넘어서 사람들이 이 곳에서 음식도 만들고, 영화제도 하고, 문화예술공연도 즐기는 놀이터가 그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농사에 별로 큰 매력을 느끼지 않지만 그래도 경험은 해봤으면 좋겠어요. 다 농사를 져야한다는 게 아니라 교육적 차원에서 초등학교까지라도 농사를 조금 해본다든지, 노동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농작물이 어떻게 생산되고 어떤 과정 거쳐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지 정도는 경험할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거죠. 농사를 통해 마을, 그리고 사람과 함께하는 게 그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은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사람만이 이룰 수 있다. 단순히 꿈의 크기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내적 동기의 크기가 중요해서다. 그가 어떤 꿈을 꾸느냐를, 꿈에 대해 얼마나 뜨거운 진정성을 가졌는지를 늘 고민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덕분에 청년농부 백 대표의 지금 이 순간이 찬란히 빛나는 건 아닐까.

글=이준섭 기자 ljs@ggilbo.com·사진=함형서 기자 foodwork2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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