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꿈꿀수 있도록…‘진짜 교육’ 향한 끊임없는 실험
청소년 진로탐색은 미래교육 기초
초등 돌봄교실부터 발닳도록 누벼
자유학기제 교육정책 디딤돌 삼아
한해에만 60개 학급 200회 가량
기획프로그램으로 진로설계 도와

신택연 페토(pĕto)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청년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사회엔 자신을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꿈을 그려나가는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취직’으로 대표되는 정형화된 청년의 삶을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자신의 업(業)으로 만들어내는 청년들이다. 여기엔 소통과 협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 ‘직업’인 경우도 포함된다. 청년의 삶에 있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도전적인 대전지역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사회 혁신을 이뤄가고 있는지 기록한다. 편집자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한탄이 비록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시대는 우리 교육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새삼 또렷하게 보여준다. 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해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계층의 사다리인 학교가 세습의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인 점이 이를 방증한다. 그렇다고 공교육의 공백을 마냥 뒤로 미룰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는 교육 불평등을 풀어낼 해답으로 제대로 된 진로 찾기를 제시한다. 청소년들의 현재를 함께 고민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는 신택연(30·사진) 페토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났다.

◆ 미래 교육의 기초 ‘진로탐색’

번듯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청년 대다수가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일에 종사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입시 위주로 점철된 오늘날 한국 교육시스템이 가져온 어두운 그늘인 셈이다. 신 이사장이 “안타깝다”는 탄식을 오래도록 그치지 못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저 역시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했는데 지금 하는 일은 전공과 다른 일입니다.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한 저도 물론이거니와 많은 청년들이 사실 사회적 비용을 엄청나게 감당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왜 우린 중·고등학교 때 진로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을 하지 못했을까”예요. 폭넓게 보면 한국 청년들의 공통된 문제인데 이들 세대가 직면한 어려움을 해소한답시고 나오는 대책들을 보면 하나같이 근본적 해결책이 됐었는지 의문입니다.”

그의 시각에서 청소년기 진로에 대한 탐색은 미래 교육의 기초다. 적어도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이룰 수 있는지를 어릴 때 그려봐야 내일을 살아 갈 주체적인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라틴어로 ‘진로를 잡다, 길을 가다’라는 의미의 페토사회적협동조합의 미션은 청소년들의 진로탐색 환경을 구축하고 개선해 장기적으로 이들이 전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방점이 찍혀있다.

“페토사회적협동조합은 교육부 인가를 받은 비영리법인입니다. 지난 2015년 출범하고 이듬해 법인인가를 받을 때만해도 사실 사회적협동조합이 대전에 10개가 채 안 될 때였어요. 당시 대학생 봉사자 몇 분과 활동가 딱 둘이서 출발했는데 지금은 상근 직원 4명에 조합원만 100명이니 감개무량할 정도로 튼실히 성장했죠.”

◆ 페토가 놓은 디딤돌 ‘자유학기제’

페토사회적협동조합은 한 해에만 60여 개 학급에서 200여 회에 걸쳐 500시간 가량을 청소년들이 진로를 설계하도록 돕고 있다. 출범 5년차에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이긴 하나 그 세월동안 신 이사장과 페토사회적협동조합은 정말 발이 닳도록 마을 곳곳을 누볐단다. 초등 돌봄교실부터 안 해본 일 없던 그들이 자유학기제라는 교육정책에 끌림을 받을 때까지 그랬다.

“자유학기제라는 너무나 좋은 정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역에선 인프라가 부족해 학생들이 선택권도 없이 끌려다니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학교 내 교육과정으로 만들어서 보급하고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혀나가기 위한 활동들을 하게 됐어요. 뮤지컬 진로탐색, 세상을 바꾸는 천개의 직업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학교로 찾아가 학생들을 만나기 시작했죠.”

마뜩한 밑천 하나 없던 그와 페토사회적협동조합에겐 교실에 서서 학생들과 마주하는 일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관내 학교라는 학교엔 일일이 전화를 걸어 설명하고 설득을 거듭한 끝에야 한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그들의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었다.

“자유학기제 시범학교를 운영 중인 곳에는 다 연락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대전구봉중에서 첫 프로그램을 하게 됐고 이후 유성구청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활동 반경을 넓혀 나갈 수 있었습니다.”

◆ 청소년을 바라보는 낡은 시선

신 이사장이 청소년 진로 탐색에서 가장 핵심으로 꼽는 건 자치활동과 사회참여, 문화활동이다. 나름의 뜻은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가 바라보는 청소년에 대한 얄팍한 시선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게 아쉽기만 한 그다.

“청소년들과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이들을 향한 시각, 그리고 학교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이었어요. 청소년은 미성숙하다고 생각하는 다수의 인식이나 무조건 보호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대표적이죠. 나중에 청소년들이 사회에 참여하거나 문화활동, 자치활동을 하게 됐을 때 가로막힐 수밖에 없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도 시민이고 지역사회의 주체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합니다.”

이런 편견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발버둥 쳐 온 신 이사장의 노력은 최근 지역사회에서 유의미한 결실로 이어졌다. 주민참여예산제 공모 과정에서 지역 청소년들이 당사자 입장으로 정책을 제안해 예산 반영에 성공하면서다. 재작년만해도 청소년 관련 사업 공모는 물론 예산도 전무했던 대전에 날아든 희보(喜報) 중의 희보다.

“사실 실태를 알곤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분개했어요. 그래서 이걸 교육과정으로 만들어서 학생들 의견을 종합해보기로 했죠. 한 650건 정도 취합했는데 청소년 500명 가까이 참여할 정도였으니 이 자체만으로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올해 관련 예산 10억 원이 반영됐는데 청소년 관련 사업으론 처음이자 당사자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전국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예요.”

그러나 아직 그와 페토사회적협동조합이 꿈꾸는 ‘청소년이 시민으로 존중받는 사회’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당장 갈수록 커져만 가는 교육격차가 그렇다. 순전히 대전만을 놓고 봐도 동서 지역 간 교육격차는 적어도 공교육 범위 안에선 아직 이렇다 할 속 시원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신 이사장은 모험에 나서기로 했다. 페토사회적협동조합의 활동 영역을 중구 대흥동에서 동구 대동으로 옮겨 마을 교육 생태계 확장을 꾀하기로 결심하면서다.

“대전에서 계속 얘기되는 문제가 동서 지역 간 교육격차잖아요. 교육과정을 통한 공교육 혁신을 도모해보려고 합니다. 이 근방에 학교만 6개, 학생 수는 2400여 명 가량인데 이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가려고 해요.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마을의 문제점을 리빙랩을 통해 해결해 보는 것이 첫째, 한 사람이 하나의 진로를 갖고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직업체험소를 만드는 게 둘째 목표입니다. 지역민과 청소년이 마을 생태계 조성 작업에 함께하면서 교육격차를 해소할 구멍을 만들어보자는 거죠.”

민주주의 사회는 교육을 통해 출발선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교육이 가진 오랜 지향점이자 공정한 사회로 가는 밑바탕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 과정에서 성공적인 해답을 찾은 적이 없다. 단 한 번에 완벽하고 좋은 교육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한 탓이다. 어쩌면 신 이사장과 페토사회적협동조합이 작지만 울림만은 무엇보다 큰 교육실험을 포기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으로 스스로 미래를 그리는 청소년을 길러낼 ‘진짜’ 교육이 간절한 이유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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