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에 도전…희망과 웃음 주는 마술의 힘
아트먼트 주요 관객은 어린이들
일상 적용 가능한 교육내용 반영
준비기간 6개월서 1년까지 걸려
사업과 예술 경계사이에서 방황
코로나19까지 겹쳐 힘겨움에도
예비적사회기업과 연계 모색 중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청년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우리 사회엔 자신을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꿈을 그려나가는 청년들도 많다. 이들은 ‘취직’으로 대표되는 정형화된 청년의 삶을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자신의 업(業)으로 만들어내는 청년들이다. 여기엔 소통과 협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 ‘직업’인 경우도 포함된다. 청년의 삶에 있어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도전적인 대전지역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사회 혁신을 이뤄가고 있는지 기록한다. 편집자

모름지기 단조로운 삶에 지친 소시민 중 살면서 작은 기적 하나 꿈꿔보지 않은 이가 없겠냐만 마술 세계에 뛰어든 그들에겐 기적이 일상이다. 감각의 촉수를 곤두세운 사람들과 벌이는 1초간의 짧은 승부, 그 속에서 승리는 언제나 이들의 몫이지만 무대 뒤에선 순간의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피나는 고통의 연속이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 동경했을 법한 마술 세계로의 초대장을 거절할 사람 과연 몇이나 될까.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현실에 살려내고 뭇 사람들에게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주는 마술사를 평생의 업으로 택한 ㈜아트먼트 이단비(32) 대표와 주수향(32) 부대표를 만났다.

㈜아트먼트 이단비 대표(오른쪽)과 주수향 부대표. ㈜아트먼트 제공

◆ 마술로 맺은 우정

동갑내기 절친이 뭉쳤다. 뼛속부터 대전 토박이는 아니지만 십수 년 지역 곳곳을 누비며 마술로 세상과 만나온 그들이다. 학창시절 누구보다 조심스럽고 나서기 싫어하던 이 대표와 주 부대표. 이들의 삶도 마술과의 만남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구분될 정도이니 이쯤이면 가히 천생연분에 걸맞은 찰떡궁합이라 할 만하다.

“사실 서로 나서는 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어요. 그러다가 학교다닐 때 ‘뭔가 나만의 무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마술을 공부해서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너무 재밌어하더라고요. 그 뒤로 무대도 서보고 점점 마술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마술은 그 자체로 이들의 성장에 있어 줄곧 비밀스러운 힘의 원천이었다. 특히 대학 마술학과를 졸업하고 홀로 마술사의 길을 걷던 이 대표에겐 친구 주 부대표와의 재회는 지금 생각하면 결코 가벼이 잊어선 안 될 기억 속 소중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대학 진학 후 소속사에서 활동하다가 산전수전 다 겪었어요. 그냥 모든 게 힘들 때였죠. 그때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보겠다는 심산으로 청춘공간 청춘다락에 입주해 청년예술인들을 만나며 마술로 예비사회적기업을 만들기로 결심했는데 문득 학창시절 함께 마술 동아리에서 동고동락했던 주 부대표가 생각났어요. 손재주가 좋다 보니 제가 '똥'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금'으로 뚝딱 만들어냈거든요.”

전적으로 마술은 그들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잔뜩이었어도 마술 이야기만으로 이 대표와 주 부대표 만면(滿面)에 화색이 감돈 까닭이다. 아트먼트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건 얼마되지 않은 탓에 갈 길은 멀지만 무궁무진하게 머리 위로 피어오르는 마술을 떠올릴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이 펄펄 솟는단다.

“아트먼트의 주 관객은 어린이들입니다. 저희는 주로 공연과 교육콘텐츠를 제작해 무대에서 선보이고 있죠. 주 부대표는 공연에 쓸 키트와 소품을 만들고 있고 무대에서 마술을 보여주는 건 제 역할이에요. 아무래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쇼에 치우치기보단 마술에 교육을 접목해서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이단비 ㈜아트먼트 대표가 주수향 부대표가 제작한 장난감 기차를 타고 마술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아트먼트 제공

◆ 마법을 연기하는 배우 ‘마술사’

아무리 좋아서 마술을 한다곤 하나 새로움에 대한 고민은 이들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과 마찬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술을 두 번 이상 보여주지 말라’는 마술사들의 철칙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벌써 적잖은 가지의 마술을 선보여 온 두 사람이지만 늘 새로운 비법을 개발하기 위한 과정에 허투루는 없다.

“공연 하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쑥 나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보통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기간이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갈 때가 많아요. 어린이들이 보기 때문에 연출적인 부분에서 재미도 필요하지만 일상에 적용가능한 교육적 내용이 반영돼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무엇이든 첫 단추가 중요한 법이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공연이 처음 무대에 오르는 순간은 이 대표나 주 부대표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온 신경이 곤두선다고 했다. 그로 인해 입이 헐고 배가 쓰려오는 등 잦은 잔병치레에 맘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객석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은 이 모든 아픈 기억을 한 방에 해소시키는 만병통치약이다.

“첫 무대에 설 때면 우리가 공연을 제작하며 느꼈던 메시지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지에 신경을 집중하게 됩니다. 마술 공연의 특성상 실수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니 심리적 부담감은 말할 것도 없죠. 물론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지만 노력하다보면 결국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마술 공연이란 한번 시작되면 무대 위 마술사의 실수도 연기처럼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하는 기지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유독 어쩔 수 없이 허용되는 허점도 있다. 주 부대표가 담당하고 있는 음향, 조명 등 무대를 떠받치는 외적 요소가 그것인데 이 대표는 이를 공연 성패를 좌우하는 잣대로 삼고 있다.

“부대표가 공연을 한 두 번 본 게 아닙니다. 어느 날은 너무 재밌었는지 음향이 나와야 할 타이밍인데 정적이 흐르더라고요. 본인도 놀라서 헐레벌떡 움직이긴 했지만 어쨌든 문제가 발생했으니 말 그대로 아찔한 순간이었죠. 그런데 그날 이후 이상하게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내심 ‘아, 내가 오늘은 음악이 안 나오는 거보니 내가 잘했나 보다’하고 안심을 하게 되더라고요.”

주수향 ㈜아트먼트 부대표. ㈜아트먼트 제공

◆ 새로운 도전 “코로나19를 딛고”

마술은 단순히 기술을 익혀 보여주는 게 아니다. 순간의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선 아름답고 신비한 연출이 뒷받침돼야만 한다. 이 때문에 수면시간도 줄여가며 연습하고 아이디어를 가다듬었지만 코로나19가 온 사회를 덮은 요즘은 그마저도 제때 써 먹어볼 기회가 없어 마술에 빠진 두 청년의 가슴은 퍽 쓰리고 아리기만 하다.

“가끔 사업과 마술이라는 예술 사이에서 우리가 그냥 껴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완전히 마술에 심취해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사업가처럼 CEO 기질을 온전하게 발휘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여기에다 코로나19까지 겹치니 여러모로 어렵기만 합니다. 사업비 받아서 자체 공연 등을 통해 얻는 수입이 줄었고 지금 당장 설 수 있는 무대도 많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존재 앞에서 마냥 멈춰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본래 고통 앞에서 포기한 사람보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마련이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일어나면 된다. 어쩌면 코로나19는 아트먼트의 뿌리를 더 단단히하고 마술로 일상에 지친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온 그들 마음가짐을 굳건히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예비사회적기업 중 마술과 연계할 만한 분야를 찾고 있어요. 문화예술 계통의 예비사회적기업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서 그런 분야를 연결하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구상 중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만큼 발전 가능성은 높지 않겠어요?”

마술의 가장 큰 매력은 남에게 뭔가를 보여줄 수 있다는 데 있다. 마술엔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고 서먹했던 분위기를 금세 열기로 바꿔주는 묘한 에너지가 있다. 그래서 아트먼트의 두 청년에겐 마술 그 자체가 꿈이요, 희망이다. 힘들면 잠시 멈춰도 되고 아닌 것 같으면 돌아가면 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예측하긴 힘든 세상이긴 하나 이 대표와 주 부대표의 한결같은 발걸음이 이어지는 한 그들은 언젠가 그토록 바랐던 ‘그 어딘가’에 마침내 서 있을 것이리라.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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