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상대동 해당 단지 공사현장서
고려시대 대규모 시설 흔적 발견돼
문화재심의위 보존결정에 공사 취소

지난 2008년 대전 유성구 서남부지구 택지개발사업 중 발견된 고려시대 대규모 시설 흔적. 연합뉴스
지난 2008년 대전 유성구 서남부지구 택지개발사업 중 발견된 고려시대 대규모 시설 흔적. 연합뉴스

[금강일보 이준섭 기자] 원골·중동골·양촌 등 작은 마을로 이뤄진 대전 유성구 상대동.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도시화 흐름에서 비껴서 있던 이곳은 2006년 이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사가 시작되며 일순간 역사의 현장으로 변모했다. 수백 년 전 고려사의 숨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2008년 상대동 65-9번지 일대에 스포트라이트 세례가 쏟아졌다. 대전 서남부지구 택지개발사업이 한창이던 와중에 고려시대 유구(遺構)가 발견되면서다. 대관절 얼마나 대단하기에 아파트 공사만큼 중요한 대사(大事)를 멈추느냐는 핀잔은 마시라. 규모부터 남달랐다. 2011년 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던 서남부지구 9블록 트리풀시티 아파트 건설지 내에 공원이 들어설 장소와 902동 예정지 인근에서 동서 96m, 남북 110~120m에 이르는 대규모 시설의 흔적이 확인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택지개발 예정지에서도 동서 44m, 남북 71m에 이르는 2.1m 너비의 담을 두른 대형 시설이 드러났다. 상대동의 약자를 따 각각 ‘SD 1·2호’라 이름 붙여진 이 두 곳에선 60여 곳의 건물지와 연못, 기와 가마, 우물, 도로 등이 출토됐다. 크기만 따져도 축구장 국제 규격에 버금갈 정도였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교수와 학자 등 고려시대 전공자들이 몰려들 정도였으니 그 중대성을 더 말해 무엇하랴. ‘웃프게’도 대발견의 직격탄은 엉뚱하게 트리풀시티 902동이 맞았다. 문화재심의위원회가 이듬해인 2009년 902동 부지 등에서 발견된 유구의 보전을 결정, 공사가 취소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손실이 300억 원대에 달한다는 소문은 오늘까지도 비밀 아닌 비밀이다.

대체 이 거대한 유적의 정체는 뭘까. 사실 수백 년 전 상대동에 남은 이 터에 무엇이 존재했는지는 아직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구전되고 있는 이야기나 지명 등을 고려할 때 유성현(縣) 관아 혹은 원(院 : 주요교통로에 국가가 운영하던 일종의 여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유성현 동쪽 4리 광도원 옆 고유성(古儒城)에 객사·향고·창고 등 옛터가 아직 남아있다’는 기록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다.

유성온천과의 연관성도 주목받는다. ‘고려사’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를 자랑하는 유성온천은 평안도 온천을 애용했던 왕을 제외하곤 지방 호족과 백성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휴양지였다. 이들이 유성을 찾을 때면 쉴 만한 공간이 필요했을테고 상대동은 자연스레 이를 충족시켜주는 곳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인근에 태조 왕건 어진을 봉안하고 왕이 파견한 관리들이 제사를 지내던 개태사가 있었던 점도 예사롭지 않다. 고려 때 조치원에서 개태사가 있는 연산(충남 논산)으로 가는 길목엔 묵을 시설이 마땅찮았다는 점에서 이 일대가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을 거라는 판단이다.

문경호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역사 속 대전은 다른 지역과 연결되는 길목이 아니었지만 선사시대와 고려시대 중요 유적을 가지고 있을 만큼 의미가 깊은 곳”이라며 “그 중 고려시대 사람들이 남긴 타임캡슐이 잘 보전된 사례가 상대동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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