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금강일보] 런던은 도시의 3분의 1이 공원이라고 할 만큼 80개가 넘는 공원이 있는데, 영국식 공원은 자연적으로 우거진 숲으로서 기하학적 배치와 인공적으로 나무를 자르고 가꾼 프랑스식 공원과 다른 특징이 있다.(영국식 정원은 2021.01.06. 영국 개요 참조) 그 중 우리의 국립공원 격인 왕립공원이 도심에 하이드 파크, 세인트제임스파크(St. James Park), 리젠트 파크(Regent’s Park), 그린파크,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 등 다섯 곳이 있고, 시 외곽에도 그리니치(Greenwich Park), 리치먼드(Richmond Park), 부시(Bushy Park) 등 모두 8개의 왕립공원이 있다. 특히 런던 브리지에서 약 9㎞가량 떨어진 그리니치 공원은 18세기 절대주의 시대에 세계를 지배하던 해양 제국 영국의 심장과 같았던 그리니치 항이 국립공원이 된 곳이다.

육상교통보다 해상교통이 더 발달했던 당시 대서양으로 드나들던 템스강의 그리니치 해변(Maritime Greenwich)인 이 곳은 1423년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가 저택 플라센티아(Palace of Placentia)와 북쪽 강기슭 언덕에 전망 탑을 세우면서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 시초였다.
공원에는 그리니치 천문대였던 구 왕립천문대(The Old Royal Observatory Greenwich), 왕립 해군사관학교(The Old Royal Naval College), 세계 최대의 해양박물관인 국립 해양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 퀸스 하우스(Queen’s House) 등이 있는데, 그리니치 해변은 1997년 UNESCO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그리니치 공원을 찾아갔다. 그리니치로 가는 길은 경전철, 시내버스 그리고 페리 등 여러 방법이 있다. 경전철은 런던 타워와 런던 브리지가 있는 지하철 타워힐역(Tower Hill) 길 건너에 있는 타워 게이트웨이 역(Tower Gate Way)에서 승차한 뒤 커티삭역(Cutty Shark)에서 내리면 된다. 또, 188번 시내버스를 타고 워털루역과 타워브리지 역을 지나면 커티삭역이다. 그러나 국회의사당 시계탑인 빅벤 바로 아래인 웨스트민스터 부두에서 출발하는 페리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페리를 타고 그리니치까지 가는 동안 지상에서 바라보는 것과 달리 템스강 좌우로 런던탑, 타워브리지 등 수많은 관광명소를 덤으로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페리로 갔다가 런던으로 돌아올 적에는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타거나 혹은 그 반대로 해도 좋다. 또, 경전철을 탔다면 커티삭역에서 한 정거장 앞인 커티삭/그리니치역에서 내린 뒤 템스강을 산책하며 천문대로 올라가는 것도 좋다. 특히 커티삭역에서 내렸다면 길 건너 빈티지 마켓을 잠시 구경하는 것도 좋다. 그리니치 마켓은 매주 수~일요일 오후 5시까지만 문을 여는 벼룩시장으로서 다양한 식품은 물론 예쁘고 아기자기한 액세서리, 양초 등 수공예품을 사기 좋은 장소로 소문이 난 곳이다.

그리니치 공원까지 가는 도로 좌우는 공원인지 초원인지 모를 넓은 초지가 펼쳐져서 보는 이의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는데, 그리니치 공원은 구 왕립천문대 이외에는 입장료가 없다.
박물관의 오른쪽 부두에 낡은 범선 커티 삭이 네모진 인공연못에 갇혀있는 것처럼 전시되고 있는데, 이 범선은 1869년 영국이 중국과 차 무역을 하던 무역선이었다. 영국에서 인도로 모직물을 수출하고, 귀국할 때는 중국에서 홍차와 향료를 실어 날랐던 커티삭은 당시에는 초고속 무역선으로서 중국에서 영국까지 107일 만에 항해했다고 한다. 커티삭이란 스코틀랜드 출신 시인 로비 번스(Robbie Burns)의 시에서 짧은 치마(커티 삭)를 입은 마녀가 아주 빨리 달린다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무역선 이름이던 것이 이곳의 지명이 된 것이다.

커티삭은 19세기 말 증기선이 등장하면서 이용 가치가 떨어지자 1895년 포르투갈의 해운업자에게 팔렸는데, 그 배가 미국 뉴올리언스 항에서 발견되자 1922년 영국이 다시 인수하여 전시했다. 그러던 중 2007년 5월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원하여 2012년 4월부터 다시 전시되고 있으며, 영국의 유명한 위스키 ‘커티 삭’도 이 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커티삭 옆에 있는 작은 요트 집시 4호(Gypsy moth Ⅳ)는 1960년대 프랜시스 치체스터 경이 단독 세계 일주했던 요트로써 영국인의 항해술을 과시하기 위하여 전시하고 있다.

커티삭이 있는 부두에서 그리니치 왕립천문대 안내판을 따라 걷다 보면, 왼쪽으로 국립해양박물관이 있다. 세계 최대의 해양박물관인 국립해양박물관에는 17세기 자료부터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국립해양박물관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 위에는 그리니치 구 왕립천문대가 있는데, 1675년 찰스 2세가 항해술을 연구하기 위해 만든 천문대의 남쪽 정면에는 해시계가 있다. 이곳은 험프리 공작이 템스강 언저리에 지은 저택 플라센티아는 튜더 왕조의 군주들에 의해서 왕궁으로 개조되었으며, 또 장미전쟁 후 랭커스터가의 헨리 7세가 요크 가의 엘리자베스와 혼인하면서 튜더 왕조가 출범한 왕궁이었다.

헨리 7세의 아들 헨리 8세(Henry Ⅷ: 1509~47)는 이곳에서 태어나 여섯 번의 결혼 중 이곳에서 형수였던 캐서린, 캐서린 왕비의 시종이었던 앤 불린, 그리고 제인 왕비 등 세 차례의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그는 캐서린 왕비가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구실로 이혼하고 젊고 예쁜 왕비의 시녀 앤 불린과 혼인하려고 했으나 로마교황 클리멘스 7세가 승인하지 않자, 1527년 로마 가톨릭을 버리고 영국 국교를 세운 인물이다.(헨리 8세에 관하여는 2021. 3. 17. 런던 타워 참조) 아무튼 왕궁이 너무 낡아서 수리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크롬웰의 공화정 붕괴 후 왕정복고로 즉위한 찰스 2세(1630~1685)는 새 왕궁을 지어 옮겨가고 이 건물은 해군병원으로 사용하다가 1873년에 왕립 해군사관학교가 되었다. 왕비전(王妃殿; Queen’s House)도 1937년 국립해양박물관으로 되었다. 이들 건물 위로 험프리 공작이 강 언덕에 전망 탑을 세웠던 곳에 있던 왕립천문대도 스모그와 먼지, 고층빌딩 등으로 정상적인 관측이 어려워지자 1949년 천문대를 이스트 서섹스 주에 있는 허스트먼수 성(Herstminceux)로 이전하고, 현재는 영국 최초의 왕립천문대장의 이름을 딴 플램스티드 관(館)으로 불린다.

천문대 박물관의 입장료는 £10(한화 약 18,000원)인데, 박물관에 들어가면 경도(經度) 0도를 표시한 시설물을 볼 수 있다. 박물관 전망대에서 언덕 아래의 국립해양박물관, 왕립 해군사관학교, 멀리 밀레니엄 돔(Millenium Dome) 등을 조망할 수 있다.

그런데, 천문대 박물관 정문 오른쪽 담장에는 오래전 시골 간이역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24시간이 표시된 커다란 괘종시계 한 개가 걸려 있다. 이 시계가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절대주의 시대인 1851년 그리니치 천문대를 통과하는 자오선을 본초 자오선으로 정하고, 또 1884년 워싱턴 국제회의에서 세계표준시(GMT)가 된 것이다.

GMT는 오늘날 세계표준시(Greenwich Mean Time)의 약자로서 전자시계가 출현할 때까지 120년 동안 세계의 표준시였다. 또, 정문의 표준시계가 걸려 있는 담벼락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벽에 키를 측정하는 것처럼 T자로 줄을 새겨 놓은 것이 자오선 기준점인데, 오른쪽이 동경(東經)이고, 왼쪽이 서경(西經)의 기준점이다. 현재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지오이드(Geoid)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본초 자오선을 정했지만, 여전히 GMT를 세계표준시로 쓰고 있는 것은 새로이 자오선으로 맞춰진 협정 세계시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한 곳에서 GMT 표준시계와 자오선을 보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는 GMT 시계와 자오선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하나씩 찍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