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부터 옷, 껌, 약까지 생필품 점령
대체에너지 개발과 함께 생필품 대체도 시급

픽사베이

[금강일보 유상영 기자]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주변이 엉망진창이다. 침대도, 벽지도, 장판도 사라진 채 잿빛 시멘트만 차가운 맨살을 드러냈다. 집을 치장하던 자재라곤 나무와 시멘트가 전부다. 대관절 무슨 조화인가 싶기도 잠시, 빨리 씻고 이 악몽에서 벗어나려 해봐도 화장실 스위치가 감쪽같이 없어져 암흑천지인 욕실은 무용지물이다. 기가 막힌 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스마트폰을 쥐어보니 구리선과 회로만 덩그러니 잡힌다. 화장품도, 옷도 거의 사라졌다. 아끼는 내 승용차는 타이어를 잃은 채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다.

공상과학 영화 같은 장면이지만 ‘석유가 없다’는 가정 아래에선 현실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신비로운 검은 물’이라 불리는 석유는 현대의 삶에서 없어선 안 되는 존재가 됐다. 환경을 파괴하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임에는 틀림없지만 좋은 싫든 화학제품의 밑바탕엔 석유가 깔려 있다. 석유를 에너지 자원으로만 생각한다면 100% 오산이다. ‘탈탄소’는 미룰 수 없는 시대 과제고 이를 위해 대체에너지 개발에 한창인데 대체에너지 개발과 함께 석유에 의존한 현대인의 삶의 패턴에 변화를 주지않으면 대혼란이 불가피할 만큼 석유가 열 일을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석유제품은 원유를 분별증류(혼합물을 가열해 끓는점이 낮은 물질부터 분리하는 방법)를 통해 정제한 것으로 뷰테인,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윤활유, 나프타 등을 말한다. 이중 휘발유와 경유, 등유는 자동차와 비행기, 선박의 연료, 가정용 연료, 공장가동용 연료로 쓰인다. 우리가 석유하면 떠올리는 그 용도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석유화학산업용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납사)로부터 현대인의 삶이 영위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석유로부터 생성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게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원유를 증류해 얻은 고분자 화합 물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즐겨 입는 아웃도어 제품도 석유에서 나오는 나일론, 아크릴, 폴리에스테르 등 합성섬유가 원료다. 생활용품에서도 바세린과 립밤, 보습기능화장품, 향수, 샴푸, 치약은 물론 냉장고·전자레인지 등에도 사용된다. 샴푸 등에는 세정력과 용해성을 위한 계면활성제가, 바세린과 립밤 등에 포함된 미네랄 오일은 석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젤리 형태의 석유 찌꺼기로 만든다. 특히 바세린은 석유시추 과정에서 끈적한 석유 찌꺼기인 로드왁스(Rod wax)가 작업자들의 몸에난 상처를 빠르게 낫게하는 것을 계기로 탄생했다. 얇지만 질겨 요긴하게 쓰이는 비닐 역시 고향이 석유다.

어디 이 뿐인가. 범퍼, 시트, 타이어 등 자동차 부품과 심지어 먹는 껌의 주베이스도 석유다. 1860년대 사포딜라나무의 수액인 치클을 껌베이스로 활용해 인기를 끌면서 수요가 늘어 천연치클의 수요를 충족하기 힘들자 석유에서 추출된 화합물인 초산비닐수지가 대체물질로 사용되고 있다. 소염진통제로 널리 쓰이는 최초의 합성의약품 아스피린도 석유와 뗄 수 없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주변을 둘러보면 석유를 사용하지 않은 용품이 없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며 “전기차 보급 확대 등으로 당장은 석유가 부족해지는 일은 없겠지만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유상영 기자 you@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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