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황혜미 놀만 대표
어려운 사람들 위해 기술 개발
전국 각지서 동료 모아 꿈 키워
"지속가능한 기술로 세상 구하겠다"

[금강일보 신성재 기자]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스타크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잡혀 황폐한 사막 한복판에 갇힌 절박한 상황에서도 조악한 도구를 이용해 첨단기술이 집약된 철갑슈트를 만들어낸다.
철갑슈트를 착용한 토니스타크가 아이언맨으로 변신해 인류를 위협하는 악당들을 물리치며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SF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물론 먼 미래의 다소 거창한 꿈이지만, 적어도 인류를 위해 헌신한 토니스타크를 닮아가고 싶다는 거다.
현신적인 과학정신으로 무장한 채 황무지와 오지 그리고 저개발국 등 기술(Technology)적인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 바로 메이커(Maker)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과학도시 대전, 중구 선화동에서 ‘메이커’ 황혜미(28) 놀만 대표를 만났다.

◆아이언우먼(Iron Woman)의 탄생
안내를 받고 작업실로 들어간 순간 널부러진 기계들과 함께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그곳에서 황 대표는 납땜질에 한창이었다. 불꽃을 튀기는 작업을 하는 황 대표의 이마에선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는 그제야 인두기를 놓고 말문을 열었다. “어릴 적 집안 물건 고장 많이 냈죠. 말썽꾸러기였어요. 언젠가는 TV를 태워먹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고장난 물건을 고쳐야겠다고요.”
‘앞으론 더 이상 고장 내지 않겠다’고 용서를 구하는 뭇 동심과 결이 달랐던 황 대표의 다짐은 메이커로의 사명감을 다지는 첫출발이 됐다. 아버지의 가르침과 '도전정신'도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KT 공중전화 부서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는 늘 어떻게하면 사양산업을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황 대표에게도 고민을 공유하고 의견을 묻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강조했다. 어떠한 분야에서든 용기를 잃지 말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그래서인지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는 기술창업의 길을 걷는다고 했을 때 흔쾌히 승낙하고 응원했단다.
이미 과학기술에 흥미가 많았던 황 대표는 중·고교 시절부터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이후 공대에 진학해 메이커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군도 피할 수 없는 슬럼프가 찾아온 황 대표는 휴식 차 봉사기관을 통해 해외로 떠난다. 그리고 기술난민들과 마주한다. 저개발국 주민들이 마땅한 기술이 없어 큰 불편에 시달리고 있었던 거다. 이 경험이 계기가 돼 황 대표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과 리빙랩(Living Lab) 사업에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투신한다.
"어려운 사람들을 목격하고, ‘이분들을 위해 기술을 개발하는 게 나의 사명이구나’ 직감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종교적 가르침도 한몫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또, 목사님께서는 항상 지역문제에 눈을 돌리라고 말씀하셨죠. 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지속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게 꿈입니다."

◆적정기술과 리빙랩 그리고 동료
그 무렵 황 대표의 듬직한 동료이자 말 많은 조언자, 자·타가 공인하는 ‘4차 혁명의 전도사’ 유효석(34) 메이킹협동조합 대표를 만났다. 메이커 동아리에서 딱 한차례 마주친 유 대표로부터 “적정기술과 리빙랩 사업을 함께 추진할 수 없냐”는 뜬금없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엔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한 상황에서 무려 3시간이 넘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통에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초반에는 조금 힘들기도 했다.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가는데 갑작스럽게 퇴근하는 말썽꾸러기 동료 때문에 속상했다고 황 대표는 장난끼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귀띔했다. 이런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 지금 두 사람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찰떡 파트너가 됐다.
이들을 끈끈하게 묶은 것은 적정기술과 리빙랩이었다. 저개발국이나 난개발 지역의 문화·정치·환경적 면들을 고려, 삶의 질 향상과 빈곤 퇴치 등을 위한 적정기술과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민·관이 협업해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인 리빙랩은 이들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모험을 즐기며 수다스럽기까지한 유 대표의 모습에 강한 동료애를 느꼈다고 한다. 이들은 현재 대전 지역 악취문제 연구와 친환경 기술 개발을 비롯해 공공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기술 연구와 함께 더 나은 기술개발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동료들을 모으는 중이다.
“처음엔 미덥지 않은 동료였어요. 사고도 가끔 치기도 했고요.(웃음) 그러나 지금은 꿈을 공유한 동료이자 최고의 조언자입니다. 우리는 적정기술과 리빙랩을 통해 지속가능한 기술을 개발하고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돕고 지역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겁니다.”

◆토니스타크들 대전으로 모인다
황 대표는 산업혁명을 이끌 ‘토니스타크’들이 모이기에 최적의 장소는 대전이라고 단언한다. 교통의 요지이자 산·학 협력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 등 우리나라 과학인재들이 자라날 환경을 갖췄다는 확신에서다. 그리고 대전으로 전국의 인재들을 모으는 게 자신이 이끌고 있는 메이킹협동조합의 비전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이들과 함께 공공을 위한 좋은 기술을 개발하는 게 최근 설립한 놀만의 이념이다. 황 대표에게 대전은 적어도 메이커들에게 공정한 기회와 창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도시다.
황 대표는 공대로 진학해 남성 주류의 문화에 발을 들인 직후 여성으로서 느끼고 겪었던 불편한 선입견과 불합리한 처우들을 대전에선 전혀 느끼지 못 했다고 했다. 이곳 메이킹협동조합의 구성원들도 대다수 여성이다. 이들은 엔지니어와 메이커, 공학자의 주류가 남성이라는 편견을 보란 듯이 깨며 창작열기를 불태우고 있다.
“교통의 요지로 전국의 과학인재들이 모일 수 있는 지리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과학도시로 조성된 대전의 인프라와 인재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지자체의 시스템 역시 이 도시의 매력입니다. 이곳에 동료들을 모으고 싶습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고 싶습니다.” 그의 당찬 포부에 응원을 보낸다.
신성재 기자 ssjreturn1@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