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대 중국학과 교수

여태껏 왕조의 수도였던 도시들만 여행했는데, 이제부터는 비록 수도는 아니었지만 역사가 깊은 도시도 다녀보자. 먼저 ‘위에는 천당이 있고, 아래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고 알려진 소주(蘇州, 쑤저우)를 가보자.
소주는 중국 동부 양자강 삼각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상해(上海, 상하이)에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져 있는 도시이다. 과거 고소(姑蘇), 평강(平江)으로 불린 소주는 이탈리아의 베니스처럼 도시 곳곳에 물길이 나있어 ‘물의 고향(水鄕)’이라는 별칭이 있다. 과거에도 풍요로웠던 이 지역은 현재도 중국 최첨단 과학기술산업의 주요지이자 인구 천만을 넘는 대도시로 번영을 누리고 있다.
소주는 과거 춘추시대의 오(吳)나라의 수도로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긴 역사만큼 수려한 풍광과 함께 볼거리도 매우 많아, ‘인간 세상의 천당’으로 불리며 중국인들이 가장 거주하고 싶어 하는 도시 중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먼저 시내에는 곳곳에 나있는 물길과 함께 그 위에 지은 집, 그리고 거기를 건너는 조그마한 다리를 많이 볼 수 있다. 비가 자주 내리는 기후 때문에 이른 아침에 물안개가 자주 피는데, 그 안개 속에서 물길을 따라 조각배를 젓는 모습은 매우 몽환적이다.
소주는 시내 곳곳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 때문에 ‘정원의 도시’라는 별칭도 있다. 북경의 이화원 등 황가 정원들이 모방할 정도로 중국 정원을 대표한다. 특히 태호(太湖)의 기암괴석을 이용하여 만든 ‘가짜 산(假山)’은 이 지역 정원의 대표적 특징이다. 졸정원(拙政園)·유원(留園)·망사원(網師園) 등은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니 반드시 가보자.
시 중심에는 관전가(觀前街)라는 번화가가 있는데, 그곳에 위치한 도관 현묘관(玄妙觀)의 앞길이라는 의미이다. 예부터 번화가인 이 지역은 현재도 각종 오래된 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으며, 현대식 백화점과 함께 골동품을 파는 곳이 공존하고 있다. 참고로 이곳에서 파는 다양한 간식들은 먹을 만하지만, 다른 음식들은 너무 달아 우리 입맛에는 잘 맞지 않을 것이다.
소주의 아름다운 풍경은 시인의 시로도 남겨져 있다. 6세기 초반에 지어진 한산사(寒山寺)는 강변에 위치하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8세기 중엽, 당(唐)의 명운을 기울게 한 안사의 난(安史之亂, 755-763)이 발생하자, 장계(張繼, ?-?)는 배를 타고 소주로 피난하였다. 짙은 안개가 껴 달조차 보이지 않는 가을의 깊은 밤, 장계가 탄 배는 소주 밖의 풍교(楓橋)에 이르렀다. 전란을 피해 고향을 떠난 장계의 처량한 마음에 들려오는 한산사의 종소리…. 장계는 이러한 복잡한 감회를 절세의 명시 '풍교야박(楓橋夜泊)'으로 남겼다. “달은 지고 까마귀 울며 서리는 가득한데, 강가의 단풍과 고깃배의 불을 보고 걱정하며 잠을 이루네. 고소 성밖의 한산사, 한밤중 종소리가 이방인의 배에까지 이르네.(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到客船.)”
시의 서북쪽에는 약 2500년의 역사를 가진 호구(虎丘)라는 산이 있다. 춘추시대, 오나라 왕이었던 합려(闔閭, BC 537-BC 496)의 별궁이었다가 그가 죽자 그의 무덤이 된 곳이다. 합려는 재상 오자서(伍子胥, BC 559-BC 484)와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孫武, BC 545-BC 470)를 이끌고 춘추시대를 호령했던 ‘춘추오패(春秋五霸)’ 중 하나이다. 월왕 구천(句踐, BC 520-BC 464)과의 싸움에서 죽자 그의 아들 부차(夫差, ?-BC 473)가 복수를 다짐하며 거친 나무 위에서 잤다던 고사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유명한 이기도 하다.
호구의 정상에는 피사의 사탑처럼 살짝 기울어진 호구탑이 있다. 10세기 중후반에 지어진 47m 높이의 벽돌탑으로 소주의 상징물이다. 또 ‘칼 연못’이라는 뜻의 검지(劍池)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합려가 죽을 때 보검 3000개를 묻었고, 진시황제와 손권이 이를 파내며 만들어진 곳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