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금강일보]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약 60㎞쯤 떨어진 보고르(Bogor)는 게데산(Gede Mt.)과 살라크 산(Salak Mt.) 기슭에 있는 인구 110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보고르란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춘 걱정 없는 땅’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이곳은 네덜란드 식민 통치 이전에 순다 왕국이 있던 도시로서 순다 왕궁과 네덜란드 총독이 살던 관저가 있다.
총독관저는 오늘날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별장으로 이용하고 있고, 그 밖에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 농대가 된 보고르 농업연구소를 비롯하여 삼림·고무 연구소 등과 1817년 네덜란드 총독 래플스((Sir Stamford Raffles)가 세운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고르식물원(Kebun Raya)도 있다. 보고르에서 게데산 쪽으로 약 20㎞쯤 들어간 찌사루아(Cisarua)의 해발 1000m 일대에 타만 사파리 동물원(Taman Safari Indonesia Cisarua)이 있다. 타만이란 순다어로 공원이란 의미인데, 숲과 계곡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270여 종 2500마리의 야생동물을 자연 상태로 방사하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보고르까지는 열차와 고속도로가 있지만, 인도네시아는 늘어난 차량에 비해서 고속도로나 시내 간선도로가 비좁아서 종일 정체가 심하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도 보고르에서 찌사루아로 가는 길은 울창한 숲 사이로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이어서 약 2시간가량 걸린다. 타만 사파리는 일반 동물원에서 볼 수 없는 야생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과 자가용을 타고 직접 운전하면서 차 안에서 맹수 등 많은 동물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동물들을 최대한 자연 상태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이외에 코끼리, 돌고래 등이 보여주는 각종 쇼가 시간대로 열리고, 여러 놀이기구를 타고 즐기거나 직접 동물을 타거나 만질 수 있는 종합 유원지로서 국내외 여행객이 많이 찾는 관광코스가 되었다.
타만 사파리의 입장료는 외국인 25만 루피아(한화 1만 7000원), 내국인 23만 루피아로 차별하지만, 타만 사파리에 입장하기 전에 동물들에게 먹이를 직접 주면서 동물들을 가까이서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당근이나 바나나를 사는 것이 좋다. 타만 사파리로 들어가는 긴 골목에는 행상들이 떼를 지어 흙이 그대로 묻어있는 당근 묶음과 바나나 등을 팔고 있는데, 한 묶음에 우리 돈으로 약 1000원 정도로 저렴하다. 동물들에게 조금씩 먹이를 나눠주다 보면 금방 바닥이 나서 서너 묶음씩 사는 것이 보통이다.
코끼리 상아 같은 커다란 조형물이 아치를 이루는 사파리 입구에서 왼편 길로 들어가면 야생동물들이 있는 사파리인데, 차를 탄 채 정글에 방사한 동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얼룩말을 비롯하여 하마, 코뿔소, 호랑이, 사자, 표범 등 맹수는 물론 코끼리, 악어, 부엉이, 올빼미, 뱀, 원숭이 등등 온갖 동물들이 있다. 얼룩말, 기린, 사슴들은 관광객들이 탄 차장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먹이를 달라고 했다. 사파리 안에서도 호랑이, 사자, 표범 같은 맹수들은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간 깊은 곳에 있는데, 관람객이 탄 차가 철제 대문 앞에 다가가면 자동감지기가 문을 개폐해준다.
관리인이 높은 망루 위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이런 상황을 일일이 지켜보고 있고, 사파리 안에는 관광객들은 차에서 내리지 말 것을 알리는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지만, 맹수들은 관람객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차창 안에서 창문을 반쯤 내린 뒤 사진을 찍는 것에 그쳤을 뿐 도로에 내려서지 않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관광객들의 차량이 다니는 도로와 맹수들 사이에는 전기를 통하도록 만들어 둔 철선이 울타리처럼 서너 줄이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맹수들은 몇 번씩 이런 전기에 감전되어서 도로 밖으로 뛰쳐나올 생각을 하지 않도록 길들여진 것 같았다.
넓은 산림 속에서 일정한 구획을 만들어 두긴 하였지만, 거의 자연 상태로 방사되는 동물들을 보면서 국내 여러 도시에 있는 동물원에서 좁은 창살에 갇혀 사는 동물들이 운동 부족과 스트레스로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것 같아서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야생동물들이 있는 사파리를 지나면 여러 동물 쇼가 시간대로 열리고, 놀이기구와 동물을 직접 타거나 만져볼 수 있는 유원지가 있다. 방사된 동물들을 둘러보는 것이 두렵거나 곧장 유원지로 가려면, 사파리 입구에서 곧장 오른편으로 난 길을 올라가면 된다. 유원지로 가는 오른쪽에는 어린이 동물원(BABY ZOO)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조랑말을 타거나 잘 사육된 호랑이. 표범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그 맹수들은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길들여 두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목에 줄을 매달아 두어서 멀리 달려들지 못하게 했다. 사실 이런 맹수들은 외형만 맹수일 뿐 이미 야성을 상실한 애완용이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관광객들과 기념사진을 한번 찍는데, 2만 루피아(한화 약 2000원)를 받는다.
유원지에는 물개 쇼, 코끼리 쇼를 하는 시설과 레스토랑, 카페 등 휴게소가 있어서 즐겁게 보고, 즐기고 먹을 수 있다. 커다란 코끼리들이 조그만 여자 조련사의 채찍 하나와 종소리 신호에 맞춰서 둥근 철제의자 위로 올라서는 묘기를 보이기도 하고, 또 돌고래 쇼 등 여러 가지 동물 쇼를 보여준다. 또, 주차장과 간이매점 등 휴게소가 길게 늘어선 꼭대기 부근에는 온갖 뱀 등 파충류관이 우리의 동물원처럼 유리창 안에 있어서 새로운 눈으로 파충류들을 관람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타만 사파리의 경영주는 화교라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화교들의 상술을 빼놓을 수 없지만, 넓은 지역에 많은 동물을 자연 상태로 관리하는 자연 친화적인 사파리 운영이라는 상술은 칭찬받아야 할 것 같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