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신익규 기자] 디자인은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들은 저마다의 쓰임새에 따라 실용적인 디자인 요소가 가미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나 환경에 책임을 지는 제품 디자인을 강력히 주장했던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 일부 디자이너들은 단순한 디자인을 거부한다. 파파넥은 보기에만 좋거나 쓸모없이 사치를 위한 제품 생산을 비난했고 그 대신 제대로 된 통신장비를 갖추지 못 한 개발도상국 원주민들을 위해 9센트짜리 깡통 쓰레기를 라디오로 디자인해 도움을 줬다.

단순한 돈벌이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무언가를 디자인하겠다는 그의 가치관은 이후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오환종(29) Tab 대표 또한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통해 혁신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자 한다. 개발도상국의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의 길에 도전장을 내민 오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세상을 바꾸는 디자인

연세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오 대표의 꿈은 다른 디자이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졸업 후 남들처럼 디자이너로 일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먼 미래에 요트 디자이너라는 꿈을 안고 대학을 다녔다.

“요트는 그야말로 사내들의 로망이잖아요. 저의 로망과도 같은 요트를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대학교 입학때만 하더라도 창업이라는 단어는 저에겐 그저 생소하고 낯설었죠.”

그의 인생이 급변하기 시작한 건 대학 4학년 때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라면 필수적으로 거쳐야할 졸업 전시회를 앞두고 유튜브를 통해 한 교수의 강연을 접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했다.

“졸업 전시회에 선보일 졸업작품 방향을 정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 강연에서 강연자가 현직 디자이너들에게 강력한 비판을 제기했어요. 전세계 인구 중 하루에 1만 원 이상의 금액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단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겨우 1000원 내지 2000원의 금액을 소비한다고 하더라구요. 이들 90%의 소비는 사실상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금액인 것인데 상위 10%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소비가 주를 이룬다는 내용이었죠.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디자이너들은 상위 10%를 위한 디자인을 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물이나 신발 등이 없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웃을 외면한 채 상위 10%의 사치품만을 디자인했다는 얘기예요.”

이 같은 강연 내용에 충격을 받은 오 대표는 하위 90%를 위한 디자인을 하겠노라 마음먹고 졸업 전시회 작품의 방향을 다시 고민했다.

취약계층에게 모자란 필수품들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오 대표의 시선을 끈 건 바로 ‘물’이었다. 현재까지도 저개발국 국민들은 흙탕물을 마셔 각종 질병에 신음하고 있는 만큼 음용수 문제는 가장 절실하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 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 식수 문제 해결할 ‘LADIS’

오 대표는 즉시 제품 개발에 나섰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LADIS 마개형 UV 살균기를 디자인했다. 일반 페트병 마개에 자외선 램프를 부착한 제품인데 자외선을 통해 물을 자동 소독하는 방식이다. 페트병 마개는 전세계 어디서도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발명한 거다. LADIS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직 명확한 성능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졸업 전시회에서 LADIS를 접한 대학 교수들이 사업을 건의할 정도였다.

“교수님들의 관심 덕분에 디자인과 경영, 국제개발 관련 교수님들과 사업을 같이 하게 됐습니다. 자외선 소독을 활용한 발명품들은 많았으나 페트병 마개에 자외선 램프를 부착한 제품은 없었거든요.”

이후 ROTC로 2년 4개월간 군 복무를 한 오 대표는 군대에서도 제품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발적인 반응을 이어나가 이곳저곳에서 가능성을 입증받았다.

“국방부가 주관하는 스타트업 챌린지에서 상위팀으로 뽑혀 육군참모총장 표창을 받았어요. 덕분에 자신감이 생겨 휴가 나와 제품 개발 및 공모전 등에 꾸준히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고용노동부장관상과 삼성투모로우 솔루션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2개국이 참여하는 다이슨 어워드에서 국내 최초로 우승하면서 오 대표의 사업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군 전역 후 본격적인 비즈니스에 나선 오 대표는 LADIS 성능 검사 및 제품 양산을 진행했다. 이제껏 시제품 단계에 머물러있던 LADIS의 성능은 다행스럽게도 성공적이었다. 성능검사를 위해 필리핀과 라오스에 2000대를 기부했고 그 결과 수인성 질병균이 60% 가량 감소하는 성과를 보였다.

사용자들이 오염된 물을 마셔 발생하는 배탈도 크게 줄었다. 각종 수상으로 인정받은 LADIS의 잠재력이 실제로 입증된 순간이었다. 

◆ “제 꿈은 노벨상입니다”

오 대표는 본격적으로 LADIS 상용화를 준비 중에 있다. 물론 제품 디자인 및 개발과는 다르게 판매는 또 다른 영역인 만큼 어려움도 많다.

“LADIS에 대한 투자 제의가 엄청나게 들어왔어요. 처음엔 투자를 받는 것이 부정적이었지만 제품 판매와 상용화를 위해선 협업 내지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했고 이후 적극적인 투자 유치를 시도했죠. 현재 코카콜라, 아마존 등과의 협업을 구상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제품 상용화를 위해 오 대표는 LADIS를 캠핑이나 주방용품 등으로 개발해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다. 제품 상용화가 이뤄져 사업이 몸집을 키워야 오 대표가 꿈꾸는 저개발국 식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어서다.

LADIS의 가능성을 굳게 믿고있는 만큼 오 대표의 목표는 더욱 커졌다.“사실 제 목표는 노벨상입니다.(웃음) 남들은 허황된 꿈이라고 말하기도 하겠지만 전 세계 인구 중 약 10억 명이 안전한 물을 마시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이 중 5억 명 정도라도 LADIS를 통해 안전한 물을 마시게 된다면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꿈 아닐까요?”

뜻하지 않게 창업을 접하게 되면서 LADIS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오 대표는 확실한 아이템을 지닌 청년에게 창업을 적극 권한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창업가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쏟고 있는 만큼 창업에 대한 안전망이 구축되면서 창업에 대한 리스크도 크게 줄었습니다. 때문에 설령 창업에서 실패하더라도 오히려 남는 게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창업 아이템이죠.

각종 공모전 등을 통해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값진 창업 아이템이라는 가능성을 입증받고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이 있다면 창업은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익규 기자 sig26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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