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전망대에서 본 메리파화산
전망대에서 본 메리파화산
메라피박물관 화산용암으로 뼈만 남은 소
메라피박물관 화산용암으로 뼈만 남은 소
메라피화산 투어 지프
메라피화산 투어 지프
프롬바난사원
프롬바난사원
보도부드로사원 전경
보도부드로사원 전경
호텔 옥상에서 본 메라피산
호텔 옥상에서 본 메라피산
호텔 옥상에서 본 족자
호텔 옥상에서 본 족자

[금강일보] 족자카르타(Yogyakarta)는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의 중남부에 있는 고대도시다. 족자카르타를 현지인들은 욕야카르타라고 하는데, 욕야카르타란 인도네시아어로 '평화의 마을'을 뜻한다. 현지인들은 욕야카르타 혹은 ‘족자’라고 말한다.

족자는 행정구역상 인도네시아의 특별 주(州)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지사직이 세습되는 유일한 토후 지역으로서 술탄이 지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8세기에 ‘힌두계’ 마타람 왕국(Mataram)이 발흥했는데, 10세기에 이들 세력이 동부 자와섬으로 세력을 넓혔다. 16세기 후반 ‘이슬람계’ 마타람 왕국이 다시 강성해지면서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에 거점을 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3차례에 걸친 전쟁을 벌이다가 패한 뒤 1755년부터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때 마타람 왕국은 서쪽 욕야카르타 왕국과 동쪽 수라카르타 왕국으로 나뉘었다. 양 가문은 그 후에도 갈등이 계속되었으나, 1825~30년의 자바전쟁 이후 네덜란드 총독이 경계를 정해서 종지부를 찍었다. 족자의 욕야카르타 왕국은 2차 세계대전까지 유지되다가 2차 대전 후 독립하면서 멸망했으나, 술탄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것이다.

즉, 족자는 네덜란드와 독립전쟁을 벌이던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인도네시아의 임시 수도였으며, 술탄 하멩쿠부워노 9세(1912~1988)는 독립운동에 협력한 공로로 술탄의 직위를 인정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부통령으로 선출되고, 재무장관, 국방장관에도 취임하였다. 1998년 당시 수하르토 대통령이 민주화 시위에 쫓겨 족자에 피난했는데, 족자의 왕이자 시장이 나서서 혼란을 수습했다고 했다.

1988년 술탄 하멩쿠부워노 9세가 죽고 아들 하멩쿠부워노 10세가 술탄 직을 계승했는데, 주지사직이 선거제로 바뀌었으나 하멩쿠부워노 10세가 선거에 나서 당선되었다. 인도네시아 국회는 족자의 술탄이 욕야카르타 주지사직을 자동 승계하는 것을 명문화하여 주지사는 토후국 왕의 지위를 겸병하게 되었다. 가장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족자는 우리의 경주와 같은 고대도시로서 이슬람 전통이 강하여 왕의 권위와 영향력은 중앙정부를 능가한다.

족자로 가기 위해서 자카르타 하림 국제공항으로 갔다. 국내에서 족자까지는 직항로가 없어서 자카르타에서 족자까지 가거나 발리에서 족자로 가는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밤 8시, 인도네시아 국적기인 가루다 항공기는 약 200명가량의 승객을 태우고 이륙하여 밤 9시쯤 족자카르타에 도착했다, 게이트를 나서자 시골 기차역 같은 족자 공항 입구에는 가이드인 자그마한 인도네시아 여인이 히잡을 쓰고 있었다.

수마트라 출신으로서 올해 28세라는 그녀의 이름은 수지(SUSI)라고 했는데, 세계에서 제일 먼저 한국어과를 설치한 족자의 가자마다(Gadja Mada)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한국어를 외국의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지만, 한국어 강좌를 처음 개설한 대학이 족자에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녀는 약간 어려운 단어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상적인 대화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족자를 여행하는 동안 그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족자는 25개의 대학과 50여 개의 전문학교가 있는 교육도시이기도 한데, 현재의 조코 위도도 대통령도 가자마다대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족자 전 지역의 인구는 4364만 명이고, 주도 족자시의 인구는 약 60만 명인데, 60만 명 중 약 30%가 학생이라고 했다. 정작 이곳 주민들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몰려온 대학생들에게 집을 빌려주고, 자신들은 시 외곽에 나가서 살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국제도시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민들은 시 외곽에서 살고, 국제기구 종사자와 학생들은 시내에서 살면서 자전거를 주로 이용한다는 것과 아주 비슷한 상황이다.

예약한 호텔 멜리아(Melia Purosani Hotel)는 별 5개짜리 고급호텔로서 바닥과 실내 모두가 깨끗한 대리석으로 꾸며졌다. 유럽의 어느 호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아담한 것은 그만큼 외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도시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다만,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와 달리 1층을 로비 층이라 하고 2층부터 1층이라고 불렀고, 열대지방의 특성상 배관이나 온돌 같은 것이 없어서 객실은 약간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건물의 섬세함은 매우 부러웠다.

족자 시내는 베트남 하노이처럼 인력거, 마차, 택시, 버스, 인파로 매우 혼잡했는데, 걸어서 구경할 수 있지만 자전거 택시 베짝(becak)을 타고 돌아볼 수도 있다. 북경의 인력거나 하노이의 인력거처럼 즐길 수 있는 베짝의 이용요금은 3만~5만 루피아(약 2500~4200원) 정도다. 시내 남쪽에 마타람 왕국의 술탄 왕궁이 있는데, 왕궁을 중심으로 옛날 도읍지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술탄이 사는 왕궁은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왕궁 앞 광장의 북서쪽에 있는 소노부도요 박물관은 중부 자바의 문화적 유산을 전시하고, 왕궁의 서편에 수중 왕궁(타만사리)의 유적이 있다. 남쪽의 이모기리에는 마타람 왕국 역대 왕의 사당이 있다.

족자에서 가장 번화한 말리오보로 거리는 한국의 신촌이나 홍대 입구처럼 젊은 대학생들이 가득하여 활기가 넘친다. 밤이 되면 길 주변에 늘어선 포장마차는 여행객들의 새로운 즐거움이 되고 있는데, 숯불에 구운 닭고기꼬치, 나시고랭(볶음밥), 미고랭(볶음면), 사태아얌(닭 요리), 구라메(넙치과 생선) 등 인도네시아 요리를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특히 족자에서는 구덱이라고 하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과일 요리가 인기인데, 크고 동그랗게 생긴 과일의 무게가 무려 10~30㎏에 달한다. 향긋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인 구덱은 각종 향신료와 코코넛밀크를 넣고 졸여서 여러 가지 요리와 곁들여서 먹는데, 짭짤하고 달짝지근해서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가격은 2만~5만 루피아(약 1700~ 420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환태평양조산대 가운데서도 '불의 고리(Ring of Fire)'에 있는 인도네시아는 곳곳에 활화산이 많은데, 족자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30㎞ 떨어진 메라피 산(Mount Merapi·2930m)은 ‘불의 산’이란 뜻이다. 화산은 대개 최고봉에서 분출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산 중턱에서도 분출하고 있어서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위험한 화산인데, 1년 내내 희뿌연 열 구름을 뿜어낸다. 밤에는 분화구에서 치솟는 불꽃도 보인다.

이곳까지 지프를 타고 올라가는 관광 상품이 인기인데, 4명이 탑승하는 지프의 요금은 두 시간에 50만 루피아(약 4만 3000원)이다. 비포장 산길을 약 30분가량 올라가면 작은 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2006년 메라피 화산 폭발 때 마을을 덮친 흔적들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서 박물관에는 동물 뼈, 열기에 녹아서 휘어버린 오토바이, 산산조각이 난 각종 집기가 당시 끔찍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처음 인도네시아 여행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가이드 수지가 2006년 5월 화산 폭발로 집이 무너지고 남편을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현지에서 1년 집세라고 하는 200만 원을 보내준 적도 있다. 이곳에서 지프를 타고 산 중턱에 올라가면 가파르고 깊은 협곡이 보이는데, 이곳은 원래 큰 물줄기가 흐르던 겐 돌 강(Gendol River)이 화산 폭발 호 용암이 덮쳐서 지금은 깊은 협곡으로 변했다. 그래도 화산재 점토를 이용하여 만든 도자기가 이 지역의 대표 상품이 되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자기 마을 카송안이 있다.

족자에 보도부드로 사원으로 가는 도중에 들른 음식점은 마치 우리의 시 외곽에 널찍한 가든 같은 곳인데, 난방시설이 없는 열대지방 특징으로 목재로 사방의 벽과 지붕만 가렸다고 할 정도였다. 특이한 것은 식당 한가운데에 손님 테이블과 달리 약간 높은 평상에서 전통 복장을 한 원주민 너덧 명이 앉아서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점이었다. 음악의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인도네시아의 풍물을 이해하는 데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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