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금강일보]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의 중부지방인 족자카르타(Yogyakarta)는 우리의 경주와 같은 고대도시인데, 현지인들은 ‘욕야카르타’라고 말한다. 욕야카르타는 인도네시아어로 '평화의 마을'을 뜻하며, 이곳에는 세계 최대의 불교사원이자 미얀마의 바간,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와 함께 세계 3대 불교 성지로 꼽히는 보로부두르 사원(Borobudur Temple)이 있다.
역사적으로 5세기경 수마트라섬과 가까운 서부 자바에 다르마 왕국이, 6세기에는 중부 자바에 칼링가 국이 나타났는데, 수마트라섬의 팔렘방에서 불교계의 스리비자야 왕국이 번영하여 8세기에는 중부 자바에까지 미쳐서 사일렌드라 왕국이 세워졌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사실 언제, 누가 조성하였는지에 관한 기록이 없으나, 750~86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조사되어 8세기부터 10세기까지 존재했던 사일렌드라 왕국 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 기간에도 욕야카르타 왕국은 존속하였고,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시기에 욕야카르타 지역은 임시수도가 되었다. 인도네시아에는 30개가량의 토후국이 존재하고 있지만, 욕야카르타의 술탄 하멩쿠부워노 9세가 독립운동에 협력한 공로로 술탄의 직위를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2012년 8월 국회에서 유일하게 술탄의 지위를 부여받아 욕야카르타 술탄이 욕야카르타 주지사직을 자동 승계하는 것이 명문화된 도시다.(자세히는 2021. 6. 16. 족자카르타 참조)
족자 시내에서 약 70㎞ 떨어진 세계 최대의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 사원은 사일렌드라 왕국에 이어 9세기경 힌두교 유적인 프람바난 사원(Prambanan Temple)과 함께 중부 자바는 동남아시아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사원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혔다가 1709년에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그것도 승려나 고고학자들이 아닌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섰던 반란군 키 마스다나(Ki Mas Dana)에 의해서였다고 하는데, 정부군에 쫓긴 반군이 보로부두르 산으로 도망하여 이곳에 숨자, 프링가 라야(Pringga Laya) 왕자가 이끄는 정부군이 산을 포위하고 키 마스다나를 체포했다. 그 후 1758년 족자카르타의 왕권 다툼에 밀린 왕자도 이곳으로 도망하였지만, 그도 체포되어 키 마스다나에 못잖은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그런데, 1814년 네덜란드의 자바 총독 토마스 스탬포드 래플스(Thomas Stamford Raffles)가 이곳에 왔을 때 화산재에 덮인 채 버려진 사원을 발견하고, 힌두교 유적을 탐구하는 매켄지(MacKenzie)에게 의뢰하여 12년에 걸친 조사 끝에 세상에 밝혀졌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UNESCO의 지원을 받아 1982년 10월부터 복구를 하고 있는데, 그 옛날 무더운 도시에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이처럼 웅대한 사원을 세운 불심을 짐작하기 어렵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미얀마의 바간,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와 함께 세계 3대 불교 성지로 꼽히는데, 1991년 UNESCO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원은 우리네 사찰처럼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해탈문 등의 산문을 거쳐 가장 깊숙한 수미산 위에 부처가 사는 대웅전 등의 본전을 배치하는 구조와 달리 나지막한 언덕에 한 변의 길이가 124m로 9층으로 만들어진 석탑이 전부이다.
고대 인도불교 특유의 건조물인 불탑과 토착민들이 조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누각 모양의 사당 건축양식이 가미된 사원은 겉은 석탑이지만, 그 내부는 우리네 사찰 법당처럼 사람 크기의 결가부좌한 불상 432기의 감실(龕室)이 있다. 비교적 재질이 좋지 못한 200만 여개의 화산석으로서 사원은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와 비슷한데, 사방에 1층에서부터 9층까지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다. 한 층을 올라갈 때마다 전체를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회랑과 함께 층마다 사원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는데, 시계바늘 방향으로 부처의 탄생을 비롯한 그의 일생과 행적, 가르침이 정교히 그려진 회랑의 총연장은 약 5㎞에 이른다고 한다.
사원은 원래 42m 높이였지만 화산과 지진으로 기단부가 매몰되어 발굴된 현재는 31.5m라고 하는데, 제일 아래쪽 기단에는 미래를 예언하는 부조가 새겨 있다고 한다. 1~2층은 인과응보를, 3~7층은 속세를, 8~10층은 속세를 극복해야 도달하는 극락세계를 상징하는데, 특히 3~7층의 돌벽에 부조된 부처의 생로병사 이야기가 압권이다. 세밀한 기술로 1500개가 넘는 돌에 하나하나 부처의 삶이 조각돼 있다. 앙코르 와트의 회랑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았지만, 마치 오랜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 빠져들게 만든다. 사원의 맨 꼭대기의 건물 옥상처럼 넓은 공간을 10층이라고도 하는데, 이곳 중앙에는 거대한 종 모양의 탑이 있고 그 주위를 3중으로 에워싼 형태로 격자 모양의 작은 탑 72기가 배치되어 있다. 그중 목이 없는 불상도 있는데, 식민 통치 시기에 네덜란드인들이 훼손해 간 것이라고 한다.
보로부두르 사원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 변이 124m인 정사각형의 만다라 문양이 1층씩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좁아지다가 9층 정점에 와서 중앙에 종을 중심으로 세 겹의 둥근 원안에 부처를 세운 만다라(慢茶羅)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종교적인 상징성과 함께 예술적인 설계가 한결 돋보이는 건축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불상과 부조의 세련된 작풍은 불교의 이상을 조형화한 불교미술의 걸작인 보로부두르 사원은 일출이 아름답고 일몰은 프람바난 사원이라고 한다. 극락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심신이 치유된다고 믿는 현지인들은 이른 새벽에 손전등 하나를 들고 사원의 계단을 더듬으며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전기시설도 없던 그 옛날 사원에서 야간에 조명은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