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금강일보] 세계적인 휴양도시 발리섬에서 덴파사르 시내를 벗어나면, 전통적인 농촌 풍경을 볼 수 있다. 야자나무와 어울린 농촌 들판이 서구인들에게는 낯선 풍경이겠지만, 우리 농촌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계단식 논(다랑논), 소가 쟁기질하고, 이앙기가 아닌 여인네들이 모내기하는 풍경은 우리네 젊은이들에게도 과거를 회상하게 해주는 좋은 추억 장소라고 생각한다.
발리는 열대기후여서 1년 3모작을 할 수 있어서 한쪽에서는 벼를 베고, 그 옆의 논에서는 모를 심는 풍경도 흔히 볼 수 있다. 발리에서는 쌀이 주식이어서 음식점에서도 백반을 먹을 수 있지만, 쌀의 질은 매우 떨어져서 한국산이나 일본산은 1㎏당 5만 루피아 정도인 데 반해서 발리 산은 1만 루피아 정도라고 한다.
또, 발리의 농촌은 오래 전부터 마을주민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고, 공동으로 농사짓는 촌락공동체인 수박(Subak)의 영향력이 크다. 수박은 우리 농촌에서는 거의 사라진 두레와 매우 비슷하지만, 두레보다 마을 공동체의 결속력이 더욱더 강하다.
인도네시아는 7세기경부터 중국, 인도인들과 교류하면서 힌두교가 전래했는데, 힌두교 국가 마자파힛 왕국(Majapahit: 1293~1520)이 자바 동부에서 현재의 인도네시아 전 지역과 말레이시아 일부를 지배하면서 중국·참파·캄보디아·안남·시암 등과 교류했다. 그러나 1527년 마자파힛 왕국이 이슬람 세력에 쫓겨 발리로 온 영향으로 발리섬은 힌두교 신앙이 중심지가 되었다.

약 1만 8000개나 되는 섬나라에서 300 부족 이상이 250여 종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다인종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국민 85% 이상이 이슬람을 믿고 있지만, 발리는 유일하게 힌두교를 믿는 지역이다. 그만큼 발리섬은 자바섬과는 민족과 문화가 다른 별개의 나라로 존재해온 것을 보여주는데, 마을의 공동장소마다 힌두교 사원 같은 사당이 있다.
힌두신앙(Hinduism)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힌두교는 수천 년 동안 전승되어온 '인도 전통 신앙‘이 종교로 형성된 물신숭배(物神崇拜). 애니미즘(Animism)의 다신교이다. 즉, 브라만(Brahman), 비슈누(Vishnu), 시바(Siva) 등 3대 신을 가장 중요시하는데, 브라만은 창조의 신, 비슈누는 경영의 신, 시바는 파괴의 신이라고 한다.
비슈누 신의 배꼽에서 연꽃 줄기가 솟아나더니 연꽃 속에서 브라만이 태어나고. 비슈누 신의 이마에서 시바가 태어났다고 한다. 시바 신은 원래 부와 행복·길조를 의미했으나, 창조와 파괴의 신이 되어서 지상에 인간으로 나타난 것이 왕(王)이며, 왕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라고 믿고 있다. 시바란 산스크리트어로 ‘상서로운 존재’라고 한다. 또, 힌두교의 전설에 둘가(Durga)는 브라만·비슈누·시바 신의 입에서 나오는 불꽃에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여인인데, 적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서 그림이나 조각에서는 보통 사자(때로는 호랑이처럼 보임)에 올라탄 모습이다. 악마들과 싸울 때는 신들로부터 받은 무기를 8~10개의 팔에 들고 싸우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힌두교에 관하여는 2021. 6. 30. 족자 프람바난 사원 참조)

덴파사르에서 동쪽으로 약 15㎞ 떨어진 바투불란(Batubulan)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발리의 전통무용을 관람할 수 있는 민속 마을이다. 발리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바투블란에는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호텔과 리조트, 음식점도 많아서 여행객들은 복잡한 덴파사르 시내가 아닌 이곳에 숙소를 정하는 경우도 많아져서 점점 민속 마을의 특징이 사라지고 있다.

바투불란 민속 마을에서는 힌두신앙에 바탕을 둔 전통 민속무용인 바롱 댄스(The Barong & Kris dance)를 매일 여러 번 공연하는데, 바롱(Barong)이란 사자(獅子), 크리스(Kris)는 칼을 의미한다. 무대는 뜨거운 햇볕을 가리는 지붕과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은 긴 의자가 전부인데, 모두 5막으로 구성된 전통무용은 요란한 음악과 함께 호랑이가 친구인 원숭이를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때 가면을 쓴 3명의 무희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사와 데와 왕자(Sawa Dewa Prince)가 죽음의 신(Betari Durga)에게 제물로 바쳐질 운명이 되자, 왕자의 어머니와 두 명의 하녀가 고민하다가 사와 데와의 수상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런데, 마녀가 사와 데와 수상이 나타나자 저주를 걸고 왕자를 죽이려고 할 때,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인 시바 여신이 왕자를 불쌍하게 여기고 불사신으로 만든다.
마녀의 저주로 시작된 전쟁에 바롱의 지원군이 나타나서 악령 난다와 싸우는데, 지원군들은 난다의 마법에 걸려서 단검으로 자신들의 가슴을 찌르고 죽는다. 바롱은 난다의 마법을 풀지만, 난다와 바롱의 싸움은 끝없이 이어진다. 사실 우리의 전통 설화는 대부분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바롱 댄스에서는 그러한 결론을 관객에게 평가를 맡기는 여운이 있었다.
발리는 힌두교 영향으로 인도만큼 엄격하지는 않지만, 카스트제 영향으로 일부다처제 사회다. 주민의 10분의 9 이상이 신분이 낮은 수드라(Brahman- Ksatriya-Vaisya-Sudra) 계층이고, 마을마다 힌두교 특유의 여러 신을 모시는 3개의 사원 푸라(Pura)가 있다. 푸라에서는 힌두신 이외에 조상신에 대한 제사도 지내고, 그 밖에 전통 민간신앙까지 숭배하는 것은 중국이나 대만의 사찰이 부처만이 아닌 유비나 관운장 등을 재물의 신으로 함께 모시고 추앙하는 점과 비슷하다. 많은 사람이 발리를 ‘신들의 섬’이라고 하지만, 실상 ‘우상들의 섬’이라는 표현이 제격 같다.
푸라에서 첨탑 모양의 바깥문 켄디 베타르 탑(Candi Bentar)을 들어서면, 그 안에 코리 아궁(Kori Agung)이라고 하는 안문이 있다. 즉, 켄디 벤타르 탑을 사이로 코리 아궁이 두 개로 나뉜 모양인데, 마치 우리네 향교나 서원의 외삼문과 내삼문의 형식과 비슷하다.

사당 입구 양쪽에는 우리의 해태상과 비슷한 힌두교 3대 신 중 하나인 시바 신을 왼편에, 시바 신의 아내로 알려진 둘가 여신(Durga)을 오른쪽에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사당의 모습은 근래에 점점 단순화되고 있다. 또, 매일 아침 큰 나무나 커다란 바위 앞에서 공양을 드리는 여인들을 자주 볼 수 있고, 집집마다 대문 오른편에 힌두신을 모신 성소가 있다. 집 가장 안쪽에 가족 사당인 상가(Sanggah)를 설치하여 조상을 추모하는 구조는 가게 심지어 호텔의 한쪽 구석에도 다양한 힌두 신들의 신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발리인들은 하루 세 번 꽃과 작은 음식을 공물로 바치며 기도를 하는데, 더욱 놀란 것은 시내 곳곳의 수많은 석조공장에서 독특하고 신비한 모습의 신상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어서 발리인들은 이런 신상을 수호신으로 삼고 있다고 하니, 발리가 더욱 ‘우상들의 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바닷가에는 오랫동안 고기를 잡으며 살다가 각종 해난사고로 죽은 원혼들을 기리는 힌두사원이 많고, 특히 먼 바닷길을 왕래하며 장사하던 화교들의 무덤이 바닷가에 조형물처럼 세워져 있기도 하다. 발리의 대표적인 항구 짐바란 해안은 해산물이 유명한데, 우리의 포장마차 같은 해산물 대부분은 일본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