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소설 ‘페스트’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 (1913-1960)의 첫 장편소설 '페스트' (1947)?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 (1913-1960)의 첫 장편소설 '페스트' (1947)

[금강일보] 지중해에 면한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3국’은 알제리, 모로코 그리고 튀니지를 포함한다. 모두 프랑스의 통치를 받았고 1950~60년대에 독립을 쟁취했다. 아랍어가 공용어지만 프랑스어도 통용되고 이슬람 세력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 알제리는 다른 두 나라와 여러 면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특히 독립과정에서 프랑스와 치열한 유혈투쟁을 거쳐 주권을 찾았고 모로코, 튀니지에 비하여 식민 지배국 프랑스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이 강한 편이다. 우리나라도 참관국으로 가입한 ‘프랑스어권 국제기구(O.I.F.)’에도 참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 명칭인 알제리인민민주공화국이 시사하듯 좌경중립을 기조로 그동안 제3세계에서 나름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 그러나 근래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온건, 실용주의로 실리추구의 다변화를 모색 중이라 한다.

알제리 제2도시 오랑이 무대가 되었던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나온 이후 오랑 시민과 알제리의 반응은 대체로 무덤덤했다는데 최근 코로나 창궐로 소설 ‘페스트’가 새롭게 주목을 받자 오랑 사람들도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읽는 사람이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소설 ‘페스트’가 발표된 지 70여 년이 지난 이즈음 코로나의 위협 속에서 자신들의 도시 오랑을 페스트가 휩쓰는 픽션을 읽는 현지인들의 심회는 복잡미묘하리라 짐작된다. 오늘날 무대는 소설 속 오랑이라는 특정 공간을 벗어나 전 세계로 확산일로에 있다.

‘페스트는 결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대목처럼 위기에 처한 가운데 도시 구성원들이 보였던 다양한 반응과 대응 자세가 지금 코로나 시국의 현실을 축약하는 듯하다. ‘페스트’의 주인공 의사 리외는 연대감 아래 악에 대항하여 싸우는 정의의 사람들을 표상한다.

오랑시에서의 의인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지금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 공무원, 군 장병 그리고 자원봉사자 등 21세기에는 그런 리외들이 많음에 감사한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재앙에 공포와 위협을 느끼고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은 더없이 부조리하다. 페스트와 코로나 그리고 수년 전의 메르스,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호시탐탐 위협하는 이런 유·무형의 ‘악’에 맞서 물리치는 지혜를 찾으며 카뮈의 ‘페스트’를 찬찬히 읽어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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