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신사 요사채
신사 요사채

[금강일보] 규슈의 서북쪽에 있는 후쿠오카현(福岡)은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왼쪽에 있는 사가현(佐賀)·나가사키현(長崎)과 함께 오래 전부터 한반도와 중국 등의 문물을 받아들여 일찍부터 발전한 지역이다.

학자들은 규슈의 해저 지형이 후쿠오카와 사가현 지역은 한반도와 이어지고, 후쿠오카의 남쪽인 나가사키현·미야자키현·가고시마현 지역은 태평양으로 이어져서 이 지역은 태평양을 건너온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 등 서양인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스가와라노 기념관
스가와라노 기념관

아무튼 후쿠오카현은 3만 6782km²에 인구 약 1300만 명(2016년)이고, 현청 소재지는 후쿠오카시이다. 후쿠오카시는 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나카가와(那珂川)를 중심으로 바닷가인 동쪽은 상업지역인 하카타시, 서쪽은 후쿠오카시가 각각 별개의 도시로 발전해오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89년 후쿠오카시로 통합되었다.

현재 510만 명(2017년)이 거주하는 후쿠오카시는 새로운 ‘규슈의 수도’이지만, 7세기 후반부터 규슈 전역을 통치하던 도시는 다자이후(太宰府)다. 지쿠젠국(筑前)이 규슈 전 지방을 다스렸다고 하지만, 사실 다자이후시와 지쿠시노시(筑紫野市) 지역에만 통치권이 미쳤다. 그 관청이 다자이후에 있다.

보물관
보물관

다자이후에는 도부(都府跡 또는 大宰府政跡)의 문지(門址), 회랑(回廊)과 미즈키성, 오노조성의 유적지와 절 간저온지, 지쿠젠고쿠분지 등이 있지만,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유명한 학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를 모신 다자이후에 있는 덴만구 신사(天滿宮 神祠)다. 

텐만구 본전
텐만구 본전

후쿠오카에서부터 렌터카를 타고 다자이후에 도착한 우리는 규슈국립박물관을 돌아보고, 다자이후 덴만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버스는 후쿠오카 하카타역 버스터미널 11번 정류장에서 다자이후행 직행버스를 타면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또 기차는 니시테츠 후쿠오카 텐진역(西福岡)에서 다자이후행 열차를 타거나 하카다역 앞 정류장에서 톈진까지 가는 버스를 탄 뒤 톈진의 니시테츠 후쿠오카역에서 니시테츠 다자이후(西太宰府線)행 사철(私鐵)을 갈아타면 30분 정도 걸린다. 

도비우메(매화나무)
도비우메(매화나무)

다자이후역에서 덴만구 신사까지는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걸리는데, 다자이후역 앞 네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텐만구 신사로 가는 골목이다. 신사까지 약 200m쯤 되는 골목 양쪽에는 일본 어느 신사나 유적지로 가는 골목처럼 잘 다듬은 돌로 포장한 골목인데, 길 양쪽에는 기념품 가게와 카페, 맛집이 즐비하다.

이곳에서는 매화꽃 모양의 ‘우메가에노 모찌(うめかえの もち)’이 특히 인기인데,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골목의 끝부분에는 도리이(鳥尾)가 잇달아 있어서 신사 입구에 도달했음을 알게 한다. 

하사쿠
하사쿠

도리이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전령사라고 믿는 일본의 전통 신앙으로서 우리 조상들이 삼한시대부터 전통 신앙이던 솟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조상들은 가족의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기원하면서 마을 입구에 솟대를 세웠는데, 솟대는 점점 성스러운 곳에도 세우게 되었다. 이런 지역을 소도(蘇塗)라고 하는데, 범죄자들이 신성한 소도로 달아나면 관아에서도 붙잡지 못할 정도로 성역이었다는 기록이 중국 후한서·진수의 삼국지 위지 조선전·진서(晉書)·두우의 통전 등에 기록되어 있다. 또, 도리이는 고구려인들의 신앙이던 태양에 사는 발 셋이 달린 삼족오(三足烏)의 변형이라는 설도 있다.(일본 신사에 관해서는 2020. 5.20. 아사쿠사 센소지 참조)

899년 유명한 학자인 스가와라노는 교토 조정의 우대신이 되었지만, 고지식한 그에게는 정적이 많았다. 특히 좌대신 후지와라노 도키히라 등은 미치자네가 천황을 폐위시키려고 한다고 모함하자, 평소 스가와라노를 껄끄러워했던 다이고 천황은 그를 규슈 치쿠젠국의 다자이후로 좌천시켰다. 다자이후에 유배나 다를 바 없이 살던 스가와라노는 4년 만인 903년 이곳에서 죽었다. 

누문
누문

그런데, 스가와라노가 오늘날 일본에서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으며 신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그의 사후 재앙을 가져오는 원혼으로 위력을 떨쳤기 때문이다. 즉, 그가 죽은 이듬해 교토에서 홍수와 역병이 발생했고, 그 이듬해에는 혜성이 출연하는 등 잇달아 재앙이 일어났다.

또, 909년에는 그를 축출한 후지와라노 도키히라가 죽고, 912년 교토 대화재, 913년 가뭄과 폭우, 915년 마마의 창궐, 917년 대기근, 923년 도키히라의 여동생 소생인 야스아키라 황태자의 급사 등 재난이 잇달아 일어나자, 사람들은 이것이 억울하게 죽은 미치자네의 보복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결국 다이고 천황은 야스아키라 황태자가 죽은 지 한 달 만에 스가와라노의 관작을 회복시켰지만, 그 후에도 가뭄과 낙뢰, 다이고 천황의 병환 등 재앙이 계속되자 스가와라노가 죽은 지 16년 뒤인 919년에 그를 기리는 신사를 세웠다. 

연못과 다이코바시
연못과 다이코바시

텐만구 신사는 입장료가 없다. 그러나 일본 국보 등을 전시하고 있는 호모쓰덴(寶物 館)과 본전 뒤에 스가와라노의 일생을 하카타 인형으로 전시하고 있는 스가와라노 기념관을 입장하려면 각각 300엔, 200엔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또, 마지막 도리이가 있는 지점에는 큼지막한 황소가 앉아있는 고신규(御神牛) 조각상이 있다.

고신규는 스가와라노가 죽은 후 그의 시체를 옮기던 소가 이곳에서 꼼짝하지 않고 멈추자, 그곳에 신사를 지었다고 하는 전설을 갖고 있다. 여행객 대부분은 신사 입구에 세워진 신으로 받드는 고신규와 본전 앞에 있는 고신규만을 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텐만구 신사에는 모두 11개의 고신규가 있다. 그러고 보면 스가와라노의 시체를 옮기다가 주저앉았다는 황소의 위치가 어느 곳인지 약간 애매하지만, 아마도 본전 앞 우측 고신규 조각상이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고신규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황소의 머리는 참배객들의 손길로 반질반질하게 빛이 난다. 

다이코바시에서 본 누문
다이코바시에서 본 누문

고신규 동상 앞에서 왼쪽이 신사로 가는 길인데, 연못 심우지(心宇池) 위에 놓은 아치형 다리는 붉은색으로 칠했다. 다리를 아리랑 고개처럼 완만한 경사를 세 번 굽어져 지나도록 설계된 것이 매우 낭만적이다. 이 다리를 다이코바시(太鼓橋)라고 하는데, 다리 위에서 돌아보는 연못과 신사, 도리이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이곳이 텐만구 신사의 포토존이다.

다이코바시
다이코바시

다리를 건너면 정면에 본전 입구임을 알리는 돌로 만든 큼지막한 도리이가 우뚝 서 있고, 주변은 온통 수백 년을 살아왔음직 한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 도리이를 지나면 왼편에는 신사마다 참배하기 전에 손을 깨끗하게 씻는 히사쿠(久キュ)가 있고, 도리이 오른쪽에는 교토에서 다자이후로 좌천되어 온 스가와라노를 찾아서 ‘날아왔다’고 하는 커다란 매화나무 도비우메(飛梅)가 있다.

다자이후의 경내에는 약 6000그루의 홍백, 매화가 있어서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마치 매화밭에 온 착각을 느끼게 한다. 그 밖에도 약 40종 3만 포기의 창포 등 계절마다 다양한 꽃을 즐길 수 있다. 신사에서는 본전 오른쪽의 매화나무 ‘도비우메’가 가장 인기이다. 도비우메는 스가와라노가 교토에서 다자이후로 좌천되어 올 때,

‘봄바람이 불거든 향기를 보내다오.
매화여!
주인이 없다 해도 봄을 잊지 말게나’

시를 읊었는데, 그 매화나무가 하루아침에 교토에서 다자이후까지 날아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텐만구의 도비우메는 일본 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매화가 피는 것으로도 유명하고, 또 매년 2~3월에 6000여 그루의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마치 순천 선암사 매화나 구례 화엄사의 흑매(黑梅)를 보러 가는 사람들처럼. 

신사골목의 맛집
신사골목의 맛집

일본 신사에서 도리이가 우리네 사찰의 일주문 격이라고 한다면, 도리이를 지나 붉은 칠을 한 2층 누문은 신사 본전으로 들어가는 사찰의 금강문쯤 된다. 스가와라노를 모신 신전은 그 안쪽에 있는 본전(本殿)인데, 텐만구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본전은 1591년 세워졌으며,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본전 오른쪽에는 위패를 모신 여섯 개의 자그마한 목조 비각이 고즈넉하다. 본전 담장 왼편으로 고목이 있는 바깥 건물은 신사의 사무소인데, 향전(香殿) 건물이 상당히 길게 지어졌다. 

입구 도리이
입구 도리이

신사 오른쪽 약간 높은 위치에 국보 등을 전시하고 있는 보물전이 있고, 연못을 건너기 전에 오른쪽 길로 질펀한 음식점들이 밀집한 공간을 지나면 규슈국립박물관으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 입구가 있다.

다자이후 텐만구는 관청 유적이 아니라 스가와라노를 모신 신사로서 매년 입시 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합격을 기원하거나 취업을 바라는 참배자들이 모여들어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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