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일보] 시몬, 나뭇잎 떨어진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 그리고 오솔길을 덮고 있구나.
시몬, 낙엽 밟는 소리를 너는 좋아하는가?
낙엽은 부드러운 색깔과 무거운 음조를 지녔지,
이토록 연약한 잔해들의 땅 위에 낙엽이 있구나!
시몬, 낙엽 밟는 소리를 너는 좋아하는가?
(......)
낙엽을 밟으면 영혼들처럼 울음을 운다,
낙엽은 날갯짓 소리, 여인의 옷자락 소리를 내는구나.
시몬, 낙엽 밟는 소리를 너는 좋아하는가?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라
오라: 벌써 밤이 되어 바람이 우리를 휩쓸어 가는구나.
시몬, 낙엽 밟는 소리를 너는 좋아하는가?
- 레미 드 구르몽 ‘낙엽’ 부분
이브 몽탕이 부른 샹송 ‘고엽’과 프랑스어 제목(Les feuilles mortes)은 같은데 이 시에는 ‘낙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맘때면 청소년 시절 이 시를 접했던 추억을 소환하게 된다. 나이 들어 감성에 굳은살이 박혔어도 구비구비 삶의 길목을 지나며 낙엽에 이입되는 감정은 오히려 더 진지해진다.
레미 드 구르몽은 이름에 붙은 ‘드’ 자가 말해주듯 귀족 가문의 후예로 19세기 후반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 평론가, 철학자 그리고 시인을 겸한 다재다능한 작가였다. 프랑스 혁명으로 귀족이라는 계층이 공식적으로는 사라졌지만 그 후예들은 저마다의 자부심을 간직하고 문자 그대로 상전벽해, 극심한 격변의 19세기 프랑스 사회 속에서 남다른 감성, 예민한 정서에 젖어 있었다.
굴곡 많은 시인의 개인사를 딛고 나지막히 읊조리는 ‘낙엽’은 관조의 눈길로 내면에 쌓인 격정과 회한을 부드럽게 녹여내며 소박한 감성을 토로한다. 주로 소리의 감각기능을 중심으로 낙엽과 삶을 동심원에 놓고 가을의 정감, 삶의 허망과 애잔함을 노래하는 이 시를 올해 각별한 느낌으로 읽어본다. 드디어 우리가 기나긴 팬데믹 터널의 끝자락에 이른 것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의 시작인지 아직은 분간하기 어려워 착잡한 심회를 낙엽에게 토로해 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