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나가사키항
나가사키항

[금강일보] 일본의 첫 개항장이자 2차대전 당시 원폭 투하지인 나가사키(長崎)는 지리적으로 매우 독특한 도시다. 일본의 4대 섬 중 하나인 규슈(九州)는 9개 국(?=州)이라는 의미인데, 오늘날 규슈는 후쿠오카(福岡)·사가(佐賀)·나가사키·오이타(大分)·구마모토(熊本)·미야자키(宮崎)·가고시마(鹿兒島)·오키나와(沖?) 등 8개 현(?)에서 주민 1420만 명이 살고 있다.

그 중 규슈의 가장 북서쪽에 있는 나가사키현은 쓰시마 섬, 이키섬(壹岐島), 히라도섬(平戶島), 고토 열도(五島列島)를 포함하고, 남동쪽에는 구마모토를 향하여 혹처럼 툭 불거진 시마바라반도(島原半島)에 시민 40만 명이 살고 있다.

나가사키 전차
나가사키 전차

특히 쓰시마와 이키섬은 후쿠오카에서 연락선이 다니고, 특히 마쓰우라(松浦)는 조선 시대 내내 우리를 괴롭히던 왜구들의 근거지였다.(자세히는 2020.5.13.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참조)

일본열도의 해저는, 남부는 해류가 태평양과 밀접하고 북쪽은 한반도와 가까워서 한반도 남쪽 해안에서 표류하거나 난파하면 나가사키나 사가현 해안에 닿는다고 한다. 지금도 한반도의 쓰레기 봉지가 이들 해안에 산더미처럼 밀려온다고 하는데, 이런 해류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아시아에 진출한 유럽 국가의 선박들은 무난하게 나가사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

즉 1543년 포르투갈 상인들이 나가사키 항에 처음 기착하여 조총 2자루를 주고 환심을 산 뒤 일본과 교역을 시작했는데, 히라도항에 이어 두 번째로 개항된 나가사키 항은 남부 사쓰마국(薩摩國:さつま)에 상륙한 에스파냐 출신 신부 프란체스코 자비에르(Frantzisko Xavier: 1506~1552)가 천주교를 전파했다. 그는 마카오에 동양 선교본부를 둔 로마교황청의 예수회 소속이었다.

이어서 영국과 네덜란드 무역선도 나타났지만, 그때까지 서양인과 기독교에 경계심이 없던 에도 막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기독교를 앞세워 남미에서 식민지 개척 만행 소식을 듣고, 1641년 포교금지와 함께 통상 거부를 선포했다.

나가사키항
나가사키항

에도 막부는 포르투갈과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히라도항도 폐쇄했지만, 네덜란드와 무역은 허용했다. 그것은 네덜란드인은 포르투갈인과 달리 천주교를 포교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나가사키 항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무역선이 수시로 드나들고, 외국인 집단 지 데지마(出島)에는 네덜란드 상관(商館)도 설치되었다. 에도시대에는 서양 학문을 란가쿠(蘭學)라 불렀는데, 이것은 홀랜드(Holland)를 한자로 화란(和蘭)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즉 화란은 서양을 대표했고, 란가쿠는 곧 서양 문물을 의미했다.(데지마와 의사 시볼트에 관하여는 2021.11.17. 시볼트 온천 참조)

일찍부터 외국 문화를 수입한 나가사키는 일본의 다른 도시와 다르게 번창하여 중국 명나라의 건축양식인 소후쿠사(崇福寺),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Madama Butterfly) 무대가 된 스코틀랜드 출신 무역상 토마스 글로버(Thomas Blake Glover: 1838~1911) 저택, 1597년에 순교한 26명의 포르투갈인 선교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864년에 지은 고딕양식의 오우라 천주당(大浦天主堂) 등이 있다.

데지마 모형
데지마 모형

그밖에도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음식 문화도 발달하여 나가사끼짬뽕, 카스텔라, 도루코 라이스 등은 나가사키의 명물인데, 이것은 우리네 제물포와 강화도에 다양한 서양식 건물과 조계(租界), 차이나타운 등이 형성된 것과 비슷하다.

특히 러일전쟁 직전까지 러시아의 극동 함대가 이용하던 부동항이었고, 또 이곳 개항지에 최초로 해운회사를 설립하여 철강, 보험, 해운, 조선 등으로 큰 부를 축적한 미쓰비시 회사는 1920년대 말 일본 제2위의 재벌로 성장했으며, 나가사키는 ‘미쓰비시의 기업 도시’로도 불렸다. 나가사키항 건너편에는 지금도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는데,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근로정신대가 끌려와서 강제노역을 한 곳이다.

오우라천주당
오우라천주당

이런 중공업 도시여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廣島)에 원폭을 투하한 데 이어 사흘 뒤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로 원폭 투하로 도시의 40%가량이 파괴되었다. 당시 24만 명 시민 중 사망 7만 9000명, 부상 2만 5000명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자, 일본은 1주일 뒤인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하여 전쟁은 끝나게 되었다.

그 후 일본은 나가사키에서 원폭 투하중심지와 그 북쪽 언덕 일대에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공원을 만들었지만, 전쟁을 도발한 데 대한 진솔한 반성이 아니라 원폭으로 피해를 본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자세가 달갑지 않다. 또, 나가사키 항에서 18㎞ 떨어진 무인도 히사마섬과 다카시마 섬은 군함도(軍艦島)라고도 하는데, 일본은 이곳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여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있다.

글로버 저택
글로버 저택

우리 가족은 후쿠오카에서 렌터카를 타고 사가현을 거쳐 나가사키에 도착했지만,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까지는 ‘갈매기’를 뜻하는 하얀색 열차인 가모메(かもめ)가 운행되고 있다. 또, 유후인(由布院), 구마모토 등 규슈의 다른 지역에서는 도스역(鳥栖驛)에서 환승해야 나가사키로 갈 수 있다.

그런데, 후쿠오카에서 하우스텐보스까지 왕복 열차 비용이 북규슈 레일 패스 3일권보다 비싸므로 되도록 북규슈 레일 패스를 사는 것이 좋다. 또 나가사키에서는 외국인 여행자를 위해 판매하는 할인 쿠폰은 사흘간 이용할 수 있는데, 가령 나가사키 로프웨이(왕복) 1230엔→610엔 / 글로버 정원 610엔→460엔 / 데지마 510엔→250엔 /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200엔→100엔 등 시설 입장시에 할인도 가능하다. 나가사키시 관광 공식 홈페이지(http://travel.at-nagasaki.jp/ko)에서도 살 수 있다.

구라바엔에서 바라본 나가사키항
구라바엔에서 바라본 나가사키항

계곡을 따라 두 개의 강이 나가사키 시내를 지나 바다로 빠져나가는데, 시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가는 우라카미강(浦上川)과 북동쪽에서 나가사키 항에 흘러 들어가는 나카지마 강(中島川) 강가에는 평지와 매립지가 있어서 상업지구나 공공시설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나가사키는 우리에게 원폭 투하지와 나비부인, 카스텔라, 짬뽕 등으로 잘 알려진 나가사키이지만, 유명한 온천휴양지 운젠(雲仙)을 비롯하여 나가사키의 명소는 대부분 시마바라반도에 있다. 나가사키현과 구마모토현과의 사이에 시마바라 만(灣)을 향하여 볼록 튀어나온 시마바라반도의 동쪽에는 시마바라시가 있고, 남쪽에는 미나시마바라시(南島原市), 시마바라반도의 중심지인 운젠산 고지대에는 운젠시가 있다.

평화공원
평화공원

나가사키에서 운젠시까지는 시마테쓰의 직행버스와 JR 열차로 30분 거리의 이사하야에서 연결되는데, 운젠 타케(雲仙岳)와 후겐다케(普賢岳)는 오래전부터 가스가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는 활화산 지대다. 뜨거운 온천을 지옥이라고 했는데, 에도 막부는 천주교신자들을 뜨거운 온천수에 던져 죽였다.

운젠 지옥온천
운젠 지옥온천

특히 후겐다케는 1792년 강진으로 마유야마 동사면이 무너져 1만 5000명이 희생되어 지금까지 일본 최대의 화산재해로 기록되고 있고, 1990년 198년 만에 다시 폭발하여 용암은 헤이세이신잔산(平成新山: 1482m)을 형성했다. 아직도 산꼭대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고, 시마바라반도 앞바다인 유명해(有名海) 연안에는 당시 쏟아져 흘러내린 흙더미가 99개 섬을 이뤄 구십구도(九十九島)라는 서해 국립공원을 만들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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