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신사에서 내려다 본 도리이
신사에서 내려다 본 도리이

[금강일보] 일본에서 신사(神社)는 우리네 토템처럼 신화로 믿는 고유의 토속신은 물론 국가나 지역에 큰 공적을 세운 인물들을 신으로 추앙하여 만들어진 공간이다. 보통은 속세와 떨어진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짓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찰에서 불상을 봉안하듯 공공연하게 대규모로 짓고 있다. 이것은 가람배치라는 일정한 격식을 갖는 불교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신사의 건축양식도 에도시대(江戶時代)에 지금처럼 정형화되었는데, 신사는 크게 도리이(鳥居), 본전(本錢), 배전(拜殿)으로 구분한다. 도리이는 우리네 사찰의 일주문처럼 속세와 신의 구역을 구분하는 공간이지만, 일주문이 한 개인 것에 반하여 신사의 도리이는 수십 개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본전은 신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고, 배전은 참배하는 공간이다.

신사 본전 길
신사 본전 길

또, 신사의 관리와 의식 진행을 맡는 사람을 신쇼쿠 또는 가누시(神職: 神主)라고 하는데, 한 신사에 신쇼쿠가 여럿인 경우도 있다. 이때 그중 최고 책임자를 구지(宮司)라 하고, 그 아래로 네기(禰宜), 곤네기(権禰宜) 등 직책이 있으나, 신사의 규모에 따라서 구지 이외의 신쇼쿠가 없는 신사도 있고, 구지 아래에 곤구지(権宮司)라는 직책을 두는 신사도 있다.

나가사키에 도착한 이틀째 되는 날, 나가사키역 앞에서 노면전차 3호선(빨간색)을 타고 평화공원과 원폭 자료전시관, 피폭지를 둘러본 우리는 나가사키 현립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에 있는 스와신사(諏訪神社)를 찾아갔다. 스와신사 역 앞에서 내리면 오른쪽 산 중턱으로 굵은 돌기둥으로 세운 수십 개의 도리이와 193개의 가파른 계단이 있는 스와신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신사 본전
신사 본전

스와신사는 1625년 히젠국 가라쓰((肥前国 唐津: 지금의 사가현 가라쓰 지방)에서 온 승려 아오키 겐세이(青木賢清)가 나가사키의 행정과 사법 책임자인 하세가와 게로쿠에게 청원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히젠국은 도요토미가 조선 정벌을 주도한 히젠 나고야성과 도자기의 아리타마을이 있는 사가현의 옛 행정구역 명칭이다.(가라쓰성에 관하여는 2021.10.27. 참조)

일본은 우리와 달리 사찰이나 신사에서 입장료를 받지 않고, 특정 장소에 입장할 때만 받는다. 나가사키의 스와신사는 일본 전역에 있는 1만여 개 스와신사의 총본사인데, 원래의 신사는 1857년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의 신사는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72년부터 10년에 걸쳐 복원되었다. 스와신사는 개항 후 서양 건축술을 받아들인 나가사키 유일의 순 일본식 건축양식이어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스와신사에서 모시는 인물은 스와 요리미즈(諏訪頼水: 1570~1641)다. 그는 나가노 스와 지방의 명문 출신으로서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부터 에도 시대까지 스와 지방의 번주(藩主)였으나, 오닌의 난 이후 쇠약해져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때에는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에비스 신(남)
에비스 신(남)

그러나 1601년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공을 세우고, 옛 영지였던 스와 지방을 다스리게 되었다.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그는 이전의 번주가 임진왜란 때 농민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거두어서 황폐해진 번(藩)을 재건하는 임무와 1603년 오사카 전투에서 공을 세워 5천 석의 영지를 가증 받고, 1841년 72세로 죽었다.

일본의 신사에는 우리의 해태상과 비슷한 코마이누(高麗犬)가 있는데, 고구려는 장수왕의 평양 천도 이후 국호를 고려라고 고쳤다. 고구려의 개와 일본인들에게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고마를 고려(高麗)가 아닌 고마(こま)라는 일본어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스와신사에는 유독 코마이누가 많다.

다이코구 신(여)
다이코구 신(여)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오른쪽에 큼지막한 배전(拝殿)이 있는데, 배전 앞에는 ‘사랑의 점을 치는 뽑기(?)’가 있다. 다이코쿠사마(大黒様)와 에비스사마(恵比寿様) 두 신은 참배자의 연애를 점쳐준다는 전설이 있는데, 남자는 다이코쿠사마에게, 여성은 안쪽에 있는 에비스사마에게 돈을 내고 참배한 뒤에 두 사마 앞으로 걸어가서 만나게 되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한다.

교토의 청수사(淸水寺) 본당 뒤편에 있는 지슈 신사(地主神社)에도 젊은 남녀에게 인연을 맺게 해준다는 속설로 많은 젊은이가 참배하는데, 청수사의 지슈신사는 우리네 사찰의 뒤편에 두는 삼성각이나 칠성각의 신들처럼 토속신인 점이 스와신사와 다르다. 또, 스와신사에서는 각 사마의 머리 부분에 돈을 넣는 구멍을 만든 것이 마치 우리 문방구 주변에 있는 뽑기 투입구 같아서 약간 우습다. 사실 이런 점은 대만의 종합사찰인 용산사(龍山寺) 등에서도 보았다.(대만 용산사에 대하여는 2019.01.28. 대만 용산사 참조)

신사 부속건물들
신사 부속건물들

또, 본전 왼쪽으로 돌아가면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홈통으로 받는 곳을 코마이누의 우물(井戶) 또는 ‘제니아라이 이도(銭洗い井戸)’라고 한다. 코마이누 입에서 나오는 물로 돈을 씻으면 돈이 배로 불어난다는 전설이 있고, 또 코마이누의 머리가 접시처럼 볼록 나와 있는 곳에 물을 넣으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도 한다. 또, 임산부는 그 물을 마시면 아기를 순산한다고도 한다. 그런데, 코마이누 석상 위에는 분명히 ‘고려개의 우물(高麗犬井)’이라고 새겨있으나, 그 왼편의 안내판에는 한자 고려(高麗)가 아닌 일본어 고마(こま)라고 소개하는 것은 고려라는 국명을 감추려는 의도인 것 같다.

또, 그 오른쪽에는 다리에 흰 실을 칭칭 감은 코마이누 석상이 있는데, 다리에 실을 묶으면서 소원을 빌면 가출, 낭비, 낙방의 불운 등을 막아준다고 한다. 코마이누의 발에 종이를 가늘게 꼰 긴 끈은 금주나 금연 등 자기가 절제하고자 하는 소원을 빌면서 코마이누가 놓인 맷돌 받침대를 돌리면 소원을 이루어진다고 한다. 스와신사에서 가장 특이한 코마이누는 하라이도 신사(祓戸神社)에 있는 ‘서 있는 코마이누’와 ‘물구나무서기 중인 코마이누’다.

수신
수신

스와신사 본전 앞의 넓은 공터에서는 매년 10월 7부터 사흘 동안 나가사키 쿤치(長崎くんち)라는 축제가 열린다. 나가사키 군치는 1626년 ‘유다테 카구라(湯立神楽)’라는 깨끗한 물을 신에게 바치는 봉납 행사로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일본의 대표적인 지역 축제로서 국가 지정 중요 무형민속문화재가 되었다.

물구나무 이누
물구나무 이누

나가사키 쿤치 행사는 11개 마을이 7년을 주기로 행사를 주관하기 때문에 모두 77개 마을이 참여하는데, 행사를 주관하는 마을을 ‘춤추는 마을’, ‘오도리초(踊り町)’라고 부른다. 나가사키 군치가 벌어지면 각 마을의 무용수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각자 개성을 살린 전통무용과 중국 및 네덜란드의 국제적 색깔이 짙은 무용을 펼친다.

소원 기원 이누
소원 기원 이누

첫날 봉납 무용 후 신을 모신 가마가 경사진 언덕을 내려가서 별궁·오타비쇼까지 행렬하고, 축제 마지막 날에 원래의 스와신사에 다시 되돌려 놓는다. 이 기간에 나가사키의 거리와 인근 마을을 돌면서 성대한 지역 축제에는 수십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와 즐기는 등 일본의 대표적인 축제이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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