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은 재료, 조리법, 가격, 풍미, 고객의 취향과 호불호 등 여러 면에서 편차가 심한 음식의 하나로 꼽힌다.
냉면은 재료, 조리법, 가격, 풍미, 고객의 취향과 호불호 등 여러 면에서 편차가 심한 음식의 하나로 꼽힌다.

[금강일보] 예전에 비해 약간 줄어 들었지만 방송에서 음식 관련 프로그램 비중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특히 TV에서 지상파, 케이블 가리지 않고 음식점과 별미 시식, 조리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나날이 다양해진다. 화면에는 업소명칭을 가리지만 방송이 끝난 즉시 인터넷에 상세한 정보가 올라오고 있어 소개된 식당은 그로부터 일정 기간 몰려오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생활 정보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된 식당 소개는 그런대로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 비중과 빈도가 과다할 경우 적정한 균형이 필요할텐데 음식 관련 콘텐츠는 일단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어 이런 프로그램의 생명력은 긴 편이다.

나날이 첨단화하는 촬영, 편집기술에 힘입어 음식, 식당 소개는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아낸다. 뇌를 자극하여 심리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영상이나 음성을 지칭하는 용어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의 첫 글자)는 특히 음식소개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클로즈업 시킨 음식 사진과 조리과정 그리고 먹는 모습과 소리는 오감을 자극하여 본능의 세계로 이끌기 때문에 음식 관련 프로그램에 관심이 쏠리고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음식관련 방송, SNS에서의 포스팅을 이제는 조금 줄여나갈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출연자들이 어마어마한 분량의 음식을 먹어치우는 폭식 영상은 잠시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이윽고 자못 복잡한 형태의 거부감과 부정적 인식이 뒤따르곤 한다. 삶을 유지하기 위한 식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는 과정을 통한 일상의 향유는 소중하고 불가결한 행위겠지만 폭식을 미화하거나 과소비를 조장하는 매스컴의 지나친 맛집, 별미 소개는 이제 전반적인 절제와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맛집 탐방 르포의 시조로 꼽히는 소설가 백파 홍성유 선생(1928~2002)의 별미여행 칼럼을 기억한다. 맛집이라는 개념조차 희박하였던 시절, 짤막한 분량으로 펼쳐놓은 맛 기행의 영향력은 대단하였다. 사진도 실리지 않았고 유려하고 걸쭉한 문장만으로 풀어나가는 음식과 식당 소개는 상상력의 힘에 실려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듯 그 이상의 호기심과 풍취를 이끌어 냈다. 얼핏 읽으면 찬사 일색의 주관적인 기행문 같지만 선생 나름의 확고한 기준 아래 미식가의 안목을 거친 리포트였기에 당초 문학잡지 연재를 시작으로 월간지, 일간지로 지면을 넓히면서 대중에게 맛에 대한 식견과 기준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며 설명하는 이즈음의 맛집, 별미 소개를 접하면서 당시 촘촘한 칼럼 행간에서 펼쳐지던 풍류식객 홍성유 선생의 발품에 힘입은 맛 기행의 소박한 위력을 회상한다.

새해에는 우리 몸에 대하여 기울이는 관심과 정성, 맛집을 찾아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려는 노력의 일부를 덜어내어 정신과 영혼, 감성과 정서를 보살피고 윤택하게 하는 일에 더 할애했으면 한다. 독서와 글쓰기, 음악, 연극, 영화 감상, 대화와 토론, 명상과 산책 같은 익숙하고 소박한 메뉴로 짜여진 정신과 영혼을 위한 맛집 탐방이 아쉽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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