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젠온천 가는 산길
운젠온천 가는 산길
온천수에 삶은 달걀
온천수에 삶은 달걀

[금강일보] 규슈의 서북쪽에서 불거져 나온 나가사키현(長岐?)은 5개의 반도와 971개의 섬으로 구성된 다도해의 지역이다. 나가사키반도에서 내륙의 구마모토현 쪽으로 주먹처럼 튀어나온 시마바라반도(島原半島)는 나가사키현의 한 지역이지만, 나가사키와는 또다른 풍물이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시마바라반도의 중심인 운젠산(雲仙山·1359m)의 해발 700m 지점에 온천마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젠시가 있다.

운젠은 701년 나라 시대에 유명한 교키(行基) 스님이 이곳 운젠산에 만묘지라는 사찰을 창건하여 개척된 지역인데, 교기 스님은 나라시의 JR 역사 출구에 전신 입상을 세워두고 있을 만큼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승려다.

운젠 시내
운젠 시내

그러나 그때까지 일본인들은 온천수를 이용할 줄 모르다가 1653년 가토 젠자에몽(加藤善佐衛門)이 처음으로 온천시설을 만들고, 지명도 한자로 온천(溫泉)이라 쓰고 음독으로 ‘운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풍류를 즐기는 문인들이 운젠(雲仙)이란 지명으로 고쳐 부른 뒤 그렇게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운젠산은 운젠타케(雲仙岳)와 후겐다케(普賢岳)의 두 봉우리에서 오래전부터 가스가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는 활화산 지대인데, 1690년 나가사키 항을 통하여 무역하던 네덜란드 상관(商館)의 독일인 의사 엥게르벨트 캠벨(Cambell)이 이곳을 유럽에 소개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운젠 온천신사
운젠 온천신사

그 후 1823년 네덜란드 상관의 독일인 의사 시볼트(Siebol)가 그의 저서 ‘일본(Nippon)’에서 소개하여 더욱 유명해졌는데, 시볼트는 의술 이외의 일본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저서 ‘일본’을 발간하여 유럽에 널리 알렸고, 다시 일본에 돌아와서 근대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시볼트에 관하여는 2011.11.17. 우레시노 시볼트 온천 참조)

후겐다케는 1792년 화산폭발로 최대 10m에 이르는 쓰나미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약 1만 5000명이나 발생해 지금까지 일본 최악의 화산재해로 기록되고 있는데, 당시 화산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시마바라 해변에 히고 메에와쿠(島原大?肥後迷惑)라고 불리는 흙더미가 99개의 섬을 이루어 구십구도(九十九島)라는 서해국립공원을 만들어지기도 했다.

운젠온천 정보관
운젠온천 정보관

1990년 후겐다케가 198년 만에 분화하여 용암돔인 헤이세이신잔산(平成新山·1482m)을 형성했는데, 지금도 분화구에서 뜨거운 수증기가 분출되고 있다. 이처럼 언제 활화산이 폭발할지 알 수 없는 운젠시에서는 용암이 바다로 흐르도록 산 아래까지 깊은 계곡처럼 용암 유도 길도 만들어 놓았다.

운젠 마을은 1934년 일본 최초로 온천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역으로서 2005년 10월 인근의 구니미정(町) 등 7개 마을을 합쳐서 운젠시가 되었다. 그러나 주민은 4만여 명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천휴양지여서 운젠까지는 버스와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도로변의 세시치 지옥
도로변의 세시치 지옥

나가사키의 이사하야시(諫早市)에서 JR열차가 약 30분이면 갈 수 있고, 시간마다 한 대꼴로 운행하는 직행버스는 약 1시간 가량 걸린다. 또 운젠시 동쪽 시마바라시, 서쪽의 오바마시(小浜), 구치노쓰(口之津)에서도 갈 수 있지만, 시마바라와 구치노쓰는 상대적으로 반도에서 멀어서 여행자 대부분은 오바마에서 올라간다. 오바마 버스터미널에서는 버스로 약 40분 정도 지그재그로 올라가면 운젠 마을이 나타나고, 운젠의 겡카광장 옆에 버스터미널이 있다.

우리 가족은 후쿠오카에서부터 렌터카로 여행을 나섰기에 나가사키에서 사흘을 묵으며 시내 주변을 돌아본 뒤, 시마바라반도로 진입하여 운젠산의 비탈길을 빙글빙글 돌아 운젠시에 도착했지만, 일본 최초의 개항지 나가사키나 운젠온천만을 여행한다면, 국내 공항에서 나가사키까지 직항노선도 많다.

오이토 지옥
오이토 지옥

운젠시는 버스터미널이 있는 삼거리를 중심으로 왼편에 운젠 온천마을이 있고, 운젠산 정보관(雲仙お山の情報館)이 있는 오른쪽 온천지대를 ‘운젠 지옥(地獄)’이라고 한다. 뜨거운 온천수가 용출하고 멀리서도 진한 유황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온천을 ‘지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땅속의 지옥을 연상했기 때문이겠지만, 운젠온천은 최고 섭씨 120도, 주성분은 철이온, 알루미늄이온, 황산이온으로서 류마티스, 당뇨병,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뿜어져 올라오는 하얀 수증기를 보면, 운젠 화산이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일본에는 이렇게 뜨거운 온천이 10여 곳이 되지만, 운젠 지옥은 하코네의 오와쿠다니, 북해도의 노보리베쓰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온천마을이다.

천주교신자 순교 표지석
천주교신자 순교 표지석

시내 간선도로 양쪽에 설치된 ‘운젠산 정보관’과 별관은 운젠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다. 이곳에서는 초기의 운젠마을 풍경을 비롯하여 용암이 분출될 때 집이 떠내려가던 모습, 화산 폭발할 때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하던 아이들 뒤로 화산재가 덮치는 장면을 찍은 사진 등 희귀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운젠산 정보관 별관과 족탕 광장이 있는 오른쪽 산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운젠온천 지대인데, 이곳은 후루유(옛 온천], 신유(신 온천), 소지옥(小地獄) 등 3개 지구로 나뉘며, 30여 개의 열천(熱泉)이 있다. 후루유지구와 신유지구 사이의 하얀 흙(?泉余土)에 덮인 일대가 운젠지옥 지대으로서 곳곳의 뜨거운 온천에서 세차게 분출되는 유황 냄새가 가득한 수증기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은 무서운 지옥의 풍경 그 자체이다.

청칠지옥
청칠지옥

가파른 산 중턱에 산책길 형태로 인공 데크를 따라서 다양한 온천수의 모습을 돌아보는 데는 약 2시간쯤 걸리는데, 운젠 지옥을 돌아보는 것도 무료다. 여행객들은 유황 냄새와 비명 같은 가스분출 소리 그리고 하얗게 변한 흙을 보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리지만, 일본 환경성에서 붙인 ‘지옥 안은 위험합니다(地獄?は危險です)라는 경고판이 더 위협적이다.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 오이토지옥(お?地獄), 참새지옥, 세시치지옥, 팔만지옥, 청칠지옥(靑七地獄) 등과 같은 30여 개의 명칭이 붙어 있는데, 간선 도로변에서 짙은 가스가 연기처럼 피어올라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세시치 지옥은 에도시대에 천주교 신자인 나가사키 출신 세시치가 이곳에서 순교한 것을 기려서 붙인 명칭이다.

휴게소 앞의 아비규환 지옥
휴게소 앞의 아비규환 지옥

또, 가장 꼭대기에 엄청난 유황 냄새와 함께 가스분출 소리가 마치 지옥에 떨어진 인간들이 부르짖는 아우성 같다고 해서 붙여진 대규환 지옥, 가스가 분출되는 소리가 마치 참새가 짹짹거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인 참새 지옥도 있다.

대규환지옥 바로 아래는 메이지 시대에 시마바라에 사는 불륜녀 이토(伊藤)가 정부(情夫)와 함께 남편을 죽인 죄로 처형당한 ‘오이토 지옥’은 에도시대인 1627년 천주교 금지정책에도 불구하고 개종하지 않은 서양인 신부들과 일본인 신자 등 30여 명을 온천에 수장시킨 장소로서 오이토 지옥 위편에 ‘기리시탄(キリツタソ)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온천 순환 산책로 전경
온천 순환 산책로 전경

기리시탄이란 천주교도를 의미하는 크리스천(Christian)의 일본어 표기로서 매년 5월 셋째 주 일요일에 순교기념제가 개최되는 성지순례 코스가 되었다.(천주교도 처형은 2021.12.22. 오우라성당과 니시자판 참조) 한말 천주교 금지명령을 위반해서 수장시킨 당진시 해미의 여숫골 성지는 약과처럼 생각되었다.

운젠온천지대의 중심인 오이토 지옥 앞에는 온천수로 익힌 달걀과 음료수를 파는 간이 휴게소가 있는데, 매캐한 유황 냄새가 가득한 곳에서 뜨거운 온천수로 익힌 달걀을 먹는 것도 별미이다.

온천 산책로
온천 산책로
휴게소
휴게소

인도네시아 반둥의 땅꾸반 쁘라후(Tangkuban Perahu: 2096m) 화산에서는 주민들이 위험한 화산 분화구 주변까지 내려가서 유황이 함유된 진흙을 짊어지고 올라와서 팔고 있고, 계곡에서는 온천수에 익힌 달걀을 비싼 값으로 파는 것과 비슷하고, 타이베이에서 가까운 베이더우(北投) 온천이 평지에 있는 것과는 다르다.(땅꾸반 쁘라후 활화산에 관하여는 2021. 5. 26. 참조)

일본뿐만 아니라 외국의 여행객들에게도 인기 코스가 되는 운젠 지옥을 돌아본 뒤, 온천마을의 대중탕이나 족탕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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