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나가쓰성 도리이
나가쓰성 도리이

[금강일보] 일본 열도 중 가장 남쪽 섬인 규슈(九州)는 794년 나라(奈良)에서 헤이안(平安京: 교토)으로 천도할 때까지 사이카이도(西海道)라고 불렀다. 사이카이도에는 지쿠젠국(筑前国: 현재의 후쿠오카현 서부)·지쿠고국(筑後国: 현재의 후쿠오카현 남부)·히젠국(肥前国: 현재의 사가현과 쓰시마 현)·히고국(肥後国: 현재의 구마모토현)·부젠국(豊前国: 현재의 후쿠오카현 동부와 오이타현 북부)· 분고국(豊後国: 현재의 오이타현의 남부)·휴가국(日向国; 현재의 미야자키현)·오스미국(大隅国; 현재의 가고시마현 동부)·사쓰마국(薩摩国: 현 가고시마현 서부) 등 9국이 있어서 규슈라고도 했다. 지금의 후쿠오카시 지역에 도요국(豊国)을 부젠국과 분고국으로 나뉘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두 지역을 통틀어서 도요국 혹은 호슈(豊州), 니호(二豊)라고 불렀다.(자세히는 2022.2.23. 가고시마 개요 참조)

나가쓰 공원
나가쓰 공원

규슈의 동부 산악지대인 오이타현은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천이 많아서 매년 4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도시로 유명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도 오이타 공항까지 대한항공, 티웨이, 이스타항공 등이 취항하고, 국내 여러 도시에서도 저가 항공이 정기취항했다. 그러나 160만 명이 사는 일본 제6위의 도시 후쿠오카의 공항까지 1시간 20분이면 갈 수 있고, 또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뱃길로 180㎞에 불과해서 매일 페리가 5~6회 왕복하여 직접 오이타 공항으로 가는 여행객은 그다지 많지 않다. 후쿠오카에서 오이타까지 열차도 JR 큐슈의 본선, 닛포 본선, 큐다이 본선이 있으며, 약 2시간 걸린다.

오쿠다이라 신궁 입구
오쿠다이라 신궁 입구

나가쓰시(中津市)는 오이타현에서 오이타·벳푸에 이어 인구가 3번째로 많은 도시이지만, 인구는 8만 명이다. 나가쓰시는 야마쿠니강(山国川)을 사이로 후쿠오카현과 나뉘는데, 야마쿠니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후쿠오카의 기타큐슈(北九州) 지역이어서 후쿠오카현이 생활권이다.

나가쓰성 연지
나가쓰성 연지

나가쓰시는 고속도로와 철로가 잘 연결되어 있지만, 온천 관광지가 아니어서 일부러 찾아가는 관광객은 거의 없고 벳푸나 유후인을 가거나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르는 정도다. JR 나가쓰역(JR中津駅)에서 내린 뒤 나가쓰 성까지는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걸리는데, 우리는 렌터카로 유후인과 벳푸온천을 돌아본 뒤 나가쓰에 도착했다.(자세히는 2021.9.29. 일본 규슈 참조) 나가쓰의 상징인 나가쓰 성은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규슈를 정벌한 뒤 구로다 요시타카(黒田孝高)를 부젠국의 번주로 임명하자, 구로다가 야마쿠니 강하구에 축성한 평지성이다. 구로다 요시타카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할 때 세 사람의 선봉장 중 한 사람이던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1568~1623)의 아버지이다.

오쿠다이라 신궁 본전
오쿠다이라 신궁 본전

구로다가 쌓은 나가쓰성은 1871년 메이지유신으로 폐성될 때까지 호소카와(細川), 오가사와라(小笠原), 오쿠다이라(奥平)씨 등 번주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 성의 전체 모습은 마치 접부채를 펼쳐놓은 삼각형과 비슷해서 '부채성(扇城)'이라고도 한다. 밀물 때는 바닷물이 성의 안쪽 해자에 가득 차는 나가쓰 성은 이마바리성(今治城), 다카마츠성(高松城)과 함께 ‘일본의 3대 수성(水城)’ 중 하나다. 하지만, 바닷물이 빠져나간 썰물 때는 해자(垓子)가 작은 개울 같은 수성이 과연 적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할 수 있었을지는 약간 의문이다.

오쿠다이라신궁 배전
오쿠다이라신궁 배전

나가쓰성의 정문은 지금은 나카스공원이 된 북쪽 신사(神社)와 도리이(鳥尾)가 세워진 곳이다. 일본의 전통신앙처인 신사 입구는 중국의 패루(牌樓)나 우리네 홍살문(紅箭門), 또 사찰의 일주문(一柱門)과 같은 도리이는 우리네 고대인들이 하늘의 신을 향한 솟대(蘇塗)와 같은 역할을 했다. 도리이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재정비할 때 튼튼한 석재로 교체하면서 도리이 기둥 안쪽에는 도리이를 새로 세운 연도를 음각으로 표시하고 있다.

나가쓰성 천수각
나가쓰성 천수각

대리석으로 만든 도리이 오른쪽 공터에는 나가쓰 출신으로서 도쿄 게이오의숙(慶應義塾:지금의 게이오대학)을 세운 후쿠자와 유키지(福澤諭吉:1835~1901)의 입상이 있다. 부젠국 나가쓰에서 가난한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당시 유일한 개항장이 있던 나가사키에서 난학(蘭學)을 공부했다. 1854년 페리 제독에 의해 개항되기 전까지 네덜란드인들의 학문인 난학은 서양학문 그 자체였다. 그는 일본에서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면허 제1호’로서 1868년 메이지 유신 때 민간인으로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계몽사상가였다.

장수 복장
장수 복장

나가쓰성 입장료는 무료인데, 성의 중심 누각인 천수각을 올라가려면 입장료 400엔을 내야 한다. 도리이를 지나서 성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연못과 정원이 있고, 중앙에는 혼마루(本丸)를 중심으로 북쪽에 니노마루(二の丸), 남쪽에 산노마루(三の丸)가 있다. 본래 일본의 성곽 내부는 중심이 되는 혼마루와 이를 보조하는 니노마루, 산노마루 등 3구역으로 나누고, 니노마루 어전에는 다이묘가 살고, 산노마루에는 가신들의 저택이었다. 그런데, 니노마루와 혼마루 사이에 다시 해자를 만드는 것은 다이묘가 심복들도 전적으로 믿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나가쓰성 해자
나가쓰성 해자

나가쓰성은 혼마루 왼편에 1871년 폐번치현 될 때 번주였던 오쿠다이라(奥平)를 모신 신사의 본전과 배전 건물이 오밀조밀하게 있어서 성곽이라는 느낌보다는 신사라는 느낌이 더 강한데, 성은 1964년 오쿠다이라 가의 17대 당주가 지금의 모습으로 복구했다. 높이 23m의 5층 천수각을 올라가면 구로다가(家) 사용했던 의장, 도검, 고문서 등을 비롯하여 오쿠다이라가 소장 물품을 전시하고 있다. 나가쓰 성은 구로다 요시다가 이외에 많은 번주가 거쳐갔음에도 유독 구로다의 주군이던 도쿠가와의 무기들을 많이 전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구로다 본처 좌상
구로다 본처 좌상

성 밖의 북쪽 공터에는 성답지 않게 구로다의 본처(本妻)라는 여성 석상 등 두 개의 불상을 세웠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나가쓰강의 제방을 올라가면 나가쓰성의 포토존이라는 친절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지만, 해자에 썰물처럼 물이 빠져나가고 강조차 물이 없어서 조금은 을씨년스럽다. 강 건너가 후쿠오카현의 기타규슈(北九州) 지역이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뷰포인트에서 본 나가쓰성
뷰포인트에서 본 나가쓰성
뷰포인트에서 본 나가쓰 강
뷰포인트에서 본 나가쓰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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