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시모노세키(下関)는 혼슈의 가장 서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로서 조선통신사 사절단을 비롯하여 대륙의 문물이 교류하는 관문이자, 규슈의 모지코(門司港)와 여객선이 오가는 교통의 중심지다. 시모노세키와 모지코사이의 간몬해협에는 오래전부터 여객선이 운행되었는데, 지금은 페리를 타면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요금은 편도 400엔이다. 간몬해협은 페리 이외에 1942년에 개통된 3600m의 해저터널과 1958년에는 개통된 해저터널, 1972년 간몬해협 위로 개통된 1068m의 현수교 등 여러 도로가 있다. 1942년에 개통된 해저터널은 일본의 최초 해저터널이자 세계 최초의 해저터널로서 규슈까지 열차가 통행하는데, ‘산요 신칸센’이라고 한다. 1958년 개통된 해저터널은 자동차도로이고, 1972년 개통된 현수교는 자동차전용도로로서 ‘산요 본선 혹은 국도 2호선’이라고 한다.(자세히는 2022. 5.11. 모지코 레토르 참조).

또, 중국과 조선에서 일본을 갈 적에는 대마도와 규슈를 거치던 것이 1905년 9월 시모노세키~부산 간 직항노선인 관부연락선(関釜連絡船)이 처음 운항을 시작했다. 이것은 그해 1월 1일부터 부산에서 한양까지 운행을 개시한 경부선 열차와 연결하기 위한 통로였는데, 해방과 함께 중단되었던 관부연락선은 한일 국교 수립 이후인 1970년 운항을 재개했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49.5㎞ 떨어진 대마도 이즈하라항(嚴原)까지 약 70분, 180㎞ 떨어진 후쿠오카까지는 약 3시간, 240㎞ 떨어진 시모노세키까지는 부산과 시모노세키에서 각각 저녁 8시에 출발하면 다음 날 아침 7시에 도착했다. 요금은 2220엔이었으나, 2019년 7월 한일 무역 갈등으로 운항이 중단되었다. 우리는 렌터카로 규슈를 일주한 뒤 모지에서 해저터널을 거쳐 시모노세키에 도착하여 아카마 신궁 길 건너편 무료주차장에 주차했다. 하지만, 가라토시장(唐戶市場)의 고객 주차 빌딩에 주차할 수도 있다.

시모노세키는 7세기 나라 시대에 지방행정기관인 나가토국(長門国)의 치소로서 조슈(長州:ちょうしゅう)라고도 불렀다. 나가토국은 아나토(穴門) 혹은 아나토(穴戸)라고도 했는데, 이것은 혼슈에서 규슈로 통하는 길목이라는 의미이다. 야마구치현(山口県)의 최대도시인 시모노세키는 약 26만 명이 살고 있는데, 시모노세키항 바로 옆에 있는 전망대 유메타워에 올라가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 입장료는 300엔이다. 또, 730엔을 주고 1일 버스 패스를 사면, 하루 동안 몇 번이고 승하차하면서 여행할 수 있다.

시모노세키에는 1185년 단노우라(壇ノ浦) 해전에서 참패한 8살 난 안토쿠 천황이 외할머니인 니이노아마(二位尼)가 용궁으로 가서 살자며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을 기리는 아카마신궁(赤間神宮)과 그 왼편에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의 이홍장을 불러 일청(日淸) 강화조약(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한 요정 순판로(春帆樓), 그 길 건너 시모노세키의 옛 선창에 조선통신사상륙비가 있다. 조선통신사 기념비는 2001년 당시 한일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 김종필 자민당 명예총재의 친필이 새겨진 기념비로서 정확한 명칭은 ‘조선통신사상륙엄류지지(朝鮮通信使上陸淹留之地)’이다. '엄류(淹留)'란 머물렀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이후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 동안 12회에 걸쳐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는 정사를 비롯하여 문인·화가 등 300~500여 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행차로서 한양에서 출발하여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에 상륙했다가 다시 바다를 건너 시모노세키에 상륙하여 오사카를 거쳐 지금의 도쿄인 에도(江戶)까지 왕복 4000km나 되는 먼 길이었다. 통신사 일행이 왕복하는 데는 6개월~1년 걸렸으며, 당시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통신사 일행을 한 번 접대하는데 바쿠후 1년 예산에 해당하는 거금을 썼다고 한다. 조선과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대마도의 역사자료관에는 16.58m의 두루마리 형태의 조선통신사 행차도가 당시 행렬 규모가 얼마나 장대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지만, 대마도 역사자료관은 한국 관련 유물을 거의 공개하지 않고 있다. 또, 대마도 이즈하라(嚴原) 역사 민속자료관에서도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데, 자료관 입구에도 대마도가 선린의 뱃길을 연 '조선통신사의 섬'임을 알려주는 '조선통신사의 비'가 있다. 옛 선착장인 이곳은 굵은 철제 와이어로 출입 금지하고, 정박하는 배를 걸었던 녹슨 쇠 갈고리가 역사를 말해준다.

이곳에서 약 400m 떨어진 곳에 현대식 항구와 거대한 어시장이 조성되었는데, 이곳에서 가라토 시장까지 400m가량의 해안은 1976년 부산과 시모노세키가 자매결연을 기념하는 ‘자매공원 공원’을 조성했다. 매년 자매결연일에는 이곳에서 조선통신사 행렬을 벌이고 축제를 벌였지만, 한일 무역 갈등 이후에는 조선에 출병하고 청나라와 싸웠던 왜군들이 주둔했다는 표지석만 을씨년스럽다. 산책로인 해안도로는 인공테크로 만들어서 매우 안락하다.

시모노세키의 랜드 마크는 시모노세키항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수산물 시장인 가라토시장이다. 시장은 1909년에 채소와 과일 시장으로 개장했다가 수산시장으로 탈바꿈했는데, 시모노세키항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걸어서도 약 10분쯤 떨어졌다. 풍부한 해산물과 먹거리로 유명하여 외국 관광객의 필수코스가 된 시장은 평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말인 토·일요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장사를 한다. 바다가 지척이어서 노량진수산시장처럼 큰 수족관에 고기를 넣었다가 팔지 않고 바로 바다의 가두리에서 꺼내오는 것이 특징이다.

시모노세키 연안에서는 일본 전체 복어 어획량의 80%가 넘을 만큼 복어(鰒魚: ふぐ)가 유명해서 복어를 시(市)의 심볼로 삼았다. 복어는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지만, ‘복(福)’자와 발음이 같아서 복어를 먹으면 복이 들어온다는 믿음으로 일찍부터 복요리가 발달했다. 복어는 하돈(河豚)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복어가 적을 만나면 배를 크게 부풀려서 겁을 주는 모습이 뚱뚱한 돼지를 닮았고, 또 부풀어 오른 배에서 돼지 우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시모노세키에서는 가라토 시장은 물론 하치만 신을 모신 하치만구신사(龜山八幡宮)에 세계 최대인 복어 상을 세웠고, 간몬해협의 해저터널 입구에도 커다란 복어를 그리는 등 시내 곳곳에 복어 조형물이 많다.

가라토 시장에서는 복어회 한 접시에 1000엔이면 맛볼 수 있고, 다른 생선들의 값도 무척 저렴하다. 일본어를 알지 못하는 여행객을 위하여 가격표를 붙여두어서 먹고 싶은 생선을 고를 수 있다. 1층에서 먹고 싶은 생선을 사서 2층의 식당으로 가서 먹거나 요리를 부탁할 수 있는 것은 노량진수산시장이나 별 차이가 없다. 또, 시장을 나오면 바닷가의 넓은 해안도로 곳곳에 놓인 벤치나 잔디밭에서 먹기도 한다. 가라토 시장의 옥상이나 고객 전용 주차장 옥상에서 간몬해협의 출렁이는 검푸른 파도를 바라보자면,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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