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쿠데타를 질타한 빅토르 위고

#. 누군가에게 퍼붓는 욕설, 증오, 원망, 저주 같은 불편한 심기의 표현이 총 6000행이 넘는 한권의 시집이 되었다. 여느 사람 같으면 두어마디 직설적인 욕을 내뱉고 나면 더 이상 던질 후속타가 없을 법도 한데 ‘레 미제라블’, ‘웃는 남자’ 등으로 널리 알려진 빅토르 위고의 경우 타고난 표현력을 바탕으로 입담과 상상, 해박한 지식 그리고 이런 요소들을 시로 만들어주는 리듬감이 더해져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풍자시집 ‘징벌시집’(1853)이 탄생하였다.
모욕과 저주의 대상이 막강한 권력을 지닌 프랑스 황제였음을 감안할 때 위고의 담대함과 저돌성은 대단하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불만도 포함되었겠지만 공박의 주된 이유는 황제 나폴레옹 3세의 민주주의 파괴와 권력찬탈 그리고 국민과의 약속 파기 같은 공적인 측면이었으므로 이 시집의 의미는 남다르다.
1848년 프랑스 제2공화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 지 3년 뒤 무력을 동원, 헌법을 파기하여 공화제를 무너뜨리고 제정을 선포하여 황제가 된 나폴레옹 3세는 그런 연유로 위고로 부터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1870년 프러시아-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여 퇴위할 때 까지 두 사람은 강대강 대치국면을 이루었다.
#. 위고는 1851년 쿠데타가 일어나자 곧바로 벨기에를 거쳐 영국령 저지, 건지 섬에 정착하여 그로부터 18년 동안 신산한 망명생활을 보낸다. 척박한 섬, 아득히 프랑스가 바라보이는 서재에서 작품을 쓸 때 그의 머릿속을 스쳐간 여러 구상과 모티브가 왕성한 집필력에 힘입어 불후의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제1제정을 흉내 내려고 애쓰는 제2제정 구성원을 조롱한다. 상원의원을 돼지, 군인들은 늑대 그리고 나폴레옹 3세를 앵무새, 원숭이로 풍자하면서 신랄한 비판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풍자와 암시, 비유와 상징이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나폴레옹 3세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에 대한 조소와 질타는 점중한다.
프랑스인이여! 이 짐승은 어떤 하수구에서 나왔는가/ 카르투슈의 독수리와 로욜라의 독수리는/ 부리에 피가 묻어 있다./ 프랑스인이여, 그러나 그 독수리가 당신의 것이다./ 나는 산을 다시 정복한다. 나는 오직 독수리와 함께 간다.
시집은 ‘밤’이라는 작품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 ‘빛’으로 끝난다.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제의 도래를 확신하며 일깨우는 위고는 개인적 원한과 분노 표출에만 매달리지 않고, 반항을 부추기지만 보복은 멀리한다. 이런 강력한 역설과 풍자가 가능했던 것은 결국 그의 에너지와 의지, 끈기 같은 개성에 힘입은 바 크다. 굴곡 많은 정치적 문학적 역정에도 불구하고, 자유가 승리하고 제정이 몰락하리라는 진보를 향한 낙관적 믿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어째서 그대는 어둠 속에서 잠자고 있는가?/ 자고 있을 때가 아니다. …/ 그대 현관 앞에 자칼이 들어서고 있다./ 쥐새끼들과 족제비들도. …/ 그들이 그대를 그대의 관속에서 물어뜯고 있다! // 라자로여, 라자로여, 라자로여/ 일어나라.
#. 이즈음 팍팍한 사회정서는 불만과 증오, 서운함을 곧장 과장된 언어폭력이나 행동으로 비약시키곤 한다. 정치권도 자신의 허물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우선 상대 탓으로 돌리기에 바쁘다. 이런 현실 앞에서 인내하기 어려운 분노와 증오가 퇴행적인 앙갚음에 머물지 않고 밝고 건강한 낙관론과 자신감을 상기하며 마침내 ‘빛’이라는 대승적 관조의 경지로 이끌어 가는 지혜와 경륜을 오래된 위고 시집 갈피에서 찾아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