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교토 주변의 수많은 사찰 중 기요미즈테라(淸水寺), 킨가쿠지(金閣寺), 긴카구지(銀閣寺)와 더불어 교토 4대 사찰 중 하나인 료안지(龍安寺)는 교토 서북쪽에 있다. 료안지 오른쪽에 금각사, 왼편에 니나지(仁和寺)와 연화사(蓮花寺), 고산사, 서방사, 천룡사 등 유명 사찰이 많은데, 교토역에서 용안사행 시내버스 50번을 타고 리츠메이칸다이카구(立命館大學) 앞에서 내려서 약 7분 정도 골목길을 걸어가면 료안지다. 교토에서 여행객은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자유롭게 여행하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1일 패스권으로 교토 시내를 여행할 수 있다. 료안지는 금각사에서 버스로 두 번째 정거장이어서 산책하듯 걸어가도 좋다.

불교 선종 사찰인 료안지는 원래 헤이안 시대에 천황의 외척으로 오랫동안 정권 실세였던 후지와라(藤原氏)의 일족인 도쿠다이지(德大寺) 가문의 별장이었으나, 1450년 호소카와 카스모토(細川勝元)가 선종 사찰 료안지를 세웠다. 료안지는 ‘용이 편안하게 잠든 곳’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1467년부터 1477년까지 쇼군의 후계자 선정을 놓고 벌어진 오닌의 난(應仁之亂) 때 소실되었다가 1488년 카스모토의 아들 마사모토(細川政元)가 재건했다.

료안지의 정원과 방장은 1499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1797년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었다가 복원하면서 방장 건물을 지금의 석정 앞으로 옮겼다. 일본인들에게 평생에 한번은 와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의 고향인 교토에서도 특히 료안지는 혼잡한 인간생활에서 마음의 고요와 안정을 주는 사찰로 인식되고 있으며, 1975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가 일본 방문 시에도 참배한 사찰이고, 1994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료안지 입장권은 500엔이며,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들어가는 정문을 산문(山門)이라고 한다. 일본의 사찰은 우리네 사찰 일주문처럼 요란하지 않고 평범한 가정집 대문같다.

료안지에서는 방장(方丈), 석정(石庭: Stone Garden), 그리고 타원형 호수 교요치(鏡容池) 등 셋이 가장 볼거리인데, 자연 숲속에 있는 인공호수 교요치의 복호도(伏虎島)․변천도(辨天島) 등 세 개의 인공섬은 신선 사상을 의미한다. 얼핏 금각사의 호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교요치의 오른쪽으로 참배 길을 따라가면, 주지 스님이 거처하는 방장과 그 왼편으로 대웅전 격인 불전이 같은 큼지막한 규모에다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것도 우리네 사찰과 다른 특징이다. 주지 스님이 거처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다다미방인 방장은 신발을 벗고 사찰에서 제공하는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는데, 넓은 다다미방의 벽면에 대형 글씨와 그림을 그린 병풍들을 전시하듯 일렬로 가득 채운 것이 눈에 띈다.

일본에서는 평소에 다다미방을 미닫이문으로 막아두었다가 필요에 따라서 칸막이를 알맞게 조절하는 것을 후스마(襖)라고 하는데, 방장에는 후스마에 걸어두었던 그림과 글씨들을 아예 벽면에 전시하듯 걸어두어서 넓은 홀(hall) 같다. 우리네 사찰의 요사채나 주지 스님이 거처하는 공간을 외부인에게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료안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무로마치 바쿠후 말기인 1500년경 토쿠호오 젠켄츠를 중심으로 선승(禪僧)들이 만든 석정인데, 방장의 앞마당에 동서 25m, 남북 10m인 직사각형이다. 굵은 모래인지 깬돌(碎石)인지를 두껍게 깔고 쇠갈퀴로 긁어서 일정한 간격의 파도 문양을 파도가 찰랑거리는 바다를 연상하게 한 것은 은각사의 긴사단(銀沙灘)과 비슷하지만, 모래더미가 없이 15개의 작은 암석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5개, 2개, 3개, 2개, 3개 등 5곳에 나눠서 배치한 점이 다르다. 석정은 ‘마른 정원’ 즉 가레산스미(枯山水)라고도 하는데,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암석 한 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눈으로 직접 바라본다고 해도 우주 만물은 불확실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훈으로써 나머지 하나는 깨달음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15개의 암석을 다섯 군데로 나눠서 배치한 것은 숫자 15개를 완벽한 수라고 여긴 것이며, 5곳으로 나눠서 배열한 것은 일본 설화에서 호랑이 새끼가 물을 건너가는 것에 맞춘 것이라고도 한다.

선종은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교리를 가르치는 종파이지만, 은각사의 관음전 앞에 무덤만큼 높이 쌓은 모래더미는 후지산을 모방하고, 쇠갈퀴로 모래밭에 일정한 간격의 골을 만든 것은 무한한 바다의 파도를 상징하여 개여울 탄(灘)을 붙인 긴사단(銀沙灘)이라고 하는 것과 달리 료안지의 석정은 토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으로서 방장에서만 볼 수 있다. 다만, 불경을 통한 가르침과 달리 마당에 나무나 풀 한 포기도 심지 않고, 돌과 하얀 모래로만 만든 선종의 가르침 방식은 똑같다. 이렇게 모래를 갈퀴로 긁어서 생긴 일정한 물결모양을 바라보는 것도 일본인들 나름대로 자연을 관조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자세히는 2022.10.26. 교토 은각사 참조)
한편, 석정을 에워싼 토담은 흙에 유채 기름을 버무려서 쌓았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서 검은 수묵이 배어 나와 마치 오래된 동양화 같은 모습인데, 방장의 툇마루에 앉아서 석정과 토담을 바라보면 명상에 절로 빠져들 것 같다.
방장 뒤를 돌아가면 료안지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사각형의 물받이가 있다. 물받이의 네 면에는 ‘나는 오로지 족함을 알게 되었다’라는 뜻의 오유지족(吾唯知足) 네 글자가 한 글자씩 새겨있는데, 이끼가 끼어있고 계속 물이 흘러넘쳐서 글자를 사진에 담을 수가 없다.

방장 건물 뒤편에는 여러 채의 전각이 있는데, 종무소 옆의 창고건물인 고리(庫裡)의 외관이 사무라이 투구 모양인 것이 바쿠후 시대에 건축된 것을 알게 해준다. 료안지는 숲의 산책길 전체를 깬돌을 깔아서 운치있게 해주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